'동부 패키지' 속내 숨긴 포스코…금융당국 책임론 부각
입력 2014.06.16 19:00|수정 2014.06.16 19:00
    협상카드 쥔 포스코, 동부 패키지 인수 입장 불분명
    포스코 인수 무산 시 수의계약 강행한 산은·금융당국 책임론 부상
    일각 "거래 실패, 동부에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아"
    • [06월16일 17:52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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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제철 인천공장 전경(출처=동부제철 홈페이지)

      포스코가 동부그룹 패키지(동부인천스틸 및 동부발전당진) 인수에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매각주관사인 한국산업은행(이하 산은)과 금융당국이 난처한 상황에 몰렸다.

      이번 거래는 금융당국과 산은이 동부그룹에 포기각서를 요구하다시피 하며 진행된 거래이기 때문이다. 동부그룹의 공개 매각 주장에도 불구하고 산은과 금융당국은 포스코 외에는 답이 없다며 밀어붙여 왔다.

      지난주말부터 금융업계에는 포스코가 동부 패키지 인수를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16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주재로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본부장 회의가 열리면서 이 자리에서 동부 패키지 인수 여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결론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포스코 관계자는 "인수가격이나 인수여부 관련해 결정된 바 없다"며 "자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전했다.

      산은 역시 "포스코 측에서 내부 의사 조율 중이라는 답변만 받았을뿐 동부 패키지를 인수하겠다거나 인수가격에 대해서는 아직 통보 받은 바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요청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이미 협상카드를 손에 쥔 포스코가 보다 유리한 인수 조건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한국기업평가의 신용등급 AA+ 강등, 한국신용평가와 NICE신용평가의 부정적 등급전망 조정 등 포스코의 신인도가 악화된 상황을 이용해 인수 여부 자체를 놓고 협상카드를 재차 꺼냈다는 평가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동양파워 인수에 4000억원을 썼으면서 동부 패키지에 5000억원을 제시한 것은 말이 안된다"며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산은과 동부를 압박하기 위한 차원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IB업계 관계자도 "포스코 입장에선 동양파워 인수와 신용등급 강등으로 동부 패키지 인수에 대한 부담이 더 커진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 카드를 통해 산은으로부터 가격을 더 깎으면 좋고, 그렇게 되지 않아 인수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떤 결과가 빚어지든 간에 매각 주관사인 산은의 책임론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산은은 PEF(사모투자펀드)를 조성, 동부패키지 매각가격의 70~80%를 투자하고 나머지 20~30%가량만 포스코가 투자하고 경영을 책임지는 방안을 제시했다. 포스코의 인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 포스코의 가격인하 카드를 받아주게 되면 산은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포스코가 인수 자체를 철회하게 되면 산은은 동부패키지를 100% 인수하거나 재매각에 나서야 한다. 이렇게 되면 동부그룹 구조조정 상 자금조달 계획이 꼬이게 된다.

      동부가 애초에 주장했던 경쟁 입찰을 묵살하고 포스코 측에 수의계약을 제안한 것도 문제를 삼을 수 있다. 경쟁 입찰을 통해 동부그룹이 기대한 동부 패키지 매각가격은 1조5000억원이었지만, 수의계약을 추진한 산은은 9000억원 수준으로 낮춰 잡았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인수 자금 대부분을 지원하겠다는 산은의 제안에도 포스코가 소극적으로 나오는 것은 협상 구조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중국 등 인수에 관심을 보인 후보들을 아예 배제함으로써 포스코에 끌려 다니게 된 꼴"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달 최수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과 극비 회동을 가졌다. 최 원장은 '구조조정이 지연될 경우 그룹 전체의 신인도가 하락해 핵심 계열사인 동부 금융계열사에 대한 그룹의 지배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며 구조조정을 신속히 해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산은은 동부인천스틸과 동부발전당진의 일괄 매각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김 회장은 경쟁 입찰 등을 통한 개별 매각 입장을 주장하고 있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동부의 구조조정 이행 촉구와 함께 사전 압박용으로 금융당국이 회동을 추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금융당국이 포스코에 동부 패키지 매각을 종용한 셈이다.

      동부그룹 입장에선 동부 패키지 인수가 오리무중에 빠지면서 구조조정에 대한 차질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부패키지 매각은 동부그룹 구조조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포스코가 인수를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동부그룹에 부정적인 것일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포스코가 주장하는 가격에 매각할 경우 동부그룹이 쥘 돈은 크지 않다. 반면 기대 이하의 가격에 매각을 하기 보다는 금융당국과 산은의 책임론 부각으로 자연스럽게 산은이 사모펀드(PEF)를 조성해 인수할 경우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산은이 포스코에 인수 요청한 가격에는 산은의 가치평가가 담겨 있다. 향후 동부그룹이 정상화돼 동부패키지를 되찾아올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할 수도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경쟁 입찰마저 성사되지 않으면 무리하게 협상을 진행한 산은이 인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동부 입장에선 우선 자금 지원을 받고 차후 경영이 정상화하면 동부 패키지 재인수에 나설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