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생명 PEF출자에 관심이 몰린 이유
입력 2014.06.19 09:21|수정 2015.07.22 16:08
    약 600억 내외 출자에 11개 중대형 회사 몰려
    작년 10월 보험사 회계처리 지침완화도 영향
    출자금액 적더라도 생보사 LP 확보 위해
    • [06월10일 18:31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올 상반기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사모펀드(PEF) 출자에서 과학기술공제회ㆍ정책금융공사ㆍ우정사업본부에 이어 한화생명의 위탁운용사 선정이 막바지 진행 중이다. 출자금액은 적은 편이지만 업계의 관심도는 어느 때보다 뜨겁다. 최근 투자시장 환경 변화가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생명은 약 6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 PEF 출자를 결정, 지난 4월29일 주요 PEF 운용사로부터 제안서를 받았다. 바이아웃ㆍ그로쓰 캐피탈ㆍ메자닌 등 투자전략을 세분화해 접수하도록 했다. 분야별로 1~2곳의 운용사를 선정하고 업체당 100억~200억원가량을 출자할 전망이다.

      내로라하는 PEF 운용사 상당수가 이에 호응했다. 스틱인베스트먼트, 큐캐피탈파트너스, KTB PE, H&Q AP코리아, 유니슨캐피탈, UTC인베스트먼트, IBK캐피탈-동양인베스트먼트, 칸서스자산운용, 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 등 약 11곳 정도가 참여했다.

    • 정식으로 1차 후보군(Short List)이 추려지진 않았지만 일부 운용사에는 탈락여부가 전달됐다. 정책금융공사 자금을 받은 PEF운용사들과 스틱인베스트먼트, UTC인베스트먼트 등이 제외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출자는 연기금ㆍ공제회 같은 공공기관의 운용사 선정이 아니라 민간 금융회사의 투자다보니 정해진 일정에 딱 맞추지 않고 천천히 진행되는 모양새다. 최종적으로 운용사가 선정되면 결과를 놓고 업계에서 한바탕 '품평회'가 크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생명이 소액으로 PEF출자에 나섰음에도 불구, 이처럼 큰 관심을 받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이 보험사 지분증권 투자손실 회계처리 지침을 완화한 이후 생보사 출자가 재개됐다는 점이 한 이유다.

      작년 3월 금감원은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으로 지분증권 손상차손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보험사 회계처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새로 제시한 바 있다. 즉, 은행과 마찬가지로 보험사들이 주식ㆍPEF 등의 지분증권에 투자한 후 이를 회계장부에 반영할 때, 결산일 기준 대비 맨 처음 이를 매입한 가격(취득원가)과 비교해 현재 시가(공정가액)가 ▲30% 이상 하락했거나 ▲6개월 이상 하락을 유지했을 경우, 평가손실을 즉시 손익계산서에 반영하도록 했다.

      이 지침이 공문으로 전달되자마자 업계에서는 PEF를 위시한 보험사의 투자가 크게 어려워진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PEF는 주로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고 기업을 매입하다보니 수익곡선이 'J-커브'가 그려지는데 이로 인해 PEF에 출자한 보험사에 곧바로 평가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보험사의 지분증권 투자에 어려움이 많다는 지적에 금감원은 작년 10월께 '6개월 이상 하락'으로 제시한 각 보험사 내부규정에 따라 반영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수정했다. 이 덕분에 작년말 결산보고서가 발표되는 올 3월말 이후부터 보험사가 지분증권에 투자할 여유가 다시 생겼다. 한화생명의 PEF 출자 재개도 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동시에 한화생명은 펀드투자자(LP)로서 평가 받는 가치가 높다.

      단순히 블라인드펀드에 몇백억원을 출자해주느냐, 마느냐 수준이 아니다. 한화생명과 인연을 맺은 PEF 운용사라면 향후 대형 투자건을 발굴해 내어 이에 필요한 프로젝트 펀드를 조성할 때 한화생명에 투자에 참여하라고 초청할 기회가 생긴다. 잠재적인 자금 조달 '창구'가 마련되는 셈이다.

      사실 PEF에 출자한 기관투자가들도 이를 원하는 모양새다. 보험사 뿐만 아니라, 연기금ㆍ공제회 등 전통적인 PEF 출자자들은 요즘 PEF에 출자하면서 향후에 '잠재적인 투자 기회'를 공유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그만큼 개별적인 투자건 발굴이 어려워진 탓이다.

      또 한화생명은 규모와 자질면에서도 손꼽히는 초대형 PEF 투자자다. 80조원에 육박하는 자산규모는 생보사 가운데 삼성생명에 이어 2위다. 삼성생명이 국내 PEF출자에 잘 나서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보험사 가운데 '넘버원' 출자자에 해당된다. 임원진의 PEF 투자에 대한 이해도도 매우 높다. 한화생명 투자를 총괄하는 김희석 투자전략본부장은 국민연금 대체투자실을 수년간 진두지휘해 온 이력을 보유하고 있고, 김용현 대체투자사업부장(상무)는 글로벌 PEF인 칼라일 코리아 대표를 오랫동안 역임해 왔다.

      물론 '한화그룹' 소속이란 점을 감안할 때, 한화생명이 앞으로 여러 투자건에 적극 나설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임원진의 이력을 감안할 때, 운용사들 입장에서 한화생명은 좋은 투자건을 제안ㆍ논의하는 과정에서 '프로들간의 대화'가 쉽게 이뤄질 곳이란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여기에 작년부터 가시화된 펀드레이징 '매칭'의 곤란함도 한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하반기 '국민연금-정책금융공사-교원공제회'라는 빅3 기관의 연타석 PEF 출자가 진행됐으나, 실제 펀드 설립 작업에는 대다수의 운용사들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2010년 무렵까지 이어지던 기관들끼리의 암묵적인 PEF 설립 매칭 움직임이 줄었다. 기관투자가들은 펀드의 투자전략을 세분화해서 따지고 자신을 주력투자자(Anchor LP)로 대접해 주기를 바라는 요구가 커졌다. 수년간 국내 PEF 출자를 해왔던 일부 연기금은 '블라인드 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강해 출자를 크게 줄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과거와 달리 PEF 운용사들이 수백억원 출자 받는데도 상당히 공을 들여야하고, 다른 운용사와 매번 경쟁해야 하는 다소 극단적인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서 한화생명의 PEF출자는 결국 업계에서 주목받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이벤트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