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valuation' 부르는 'Deal Fever'
입력 2014.07.17 07:45|수정 2014.07.17 07:45
    • [07월16일 10: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KB금융지주가 인수할 LIG손해보험 지분19.47%의 가격은 6850억원이다. 시가보다 두 배이상 높다. 매각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이같은 수준에 이를 것이란 예상은 많지 않았다. 매각주관사인 골드만삭스의 장기인 인수 후보간의 경쟁을 극대화하는 프로그레시브 딜 효과 탓만은 아니었다.

      LIG손보 매각전에 인수 후보간의 딜 피버(Deal Fever)가 발동했다. 딜 피버는 딜 참여자들 간의 경쟁이 과열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M&A에선 인수금액을 경쟁 후보보다 높게 제시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제2롯데월드에 대한 논란과 재무건전성 우려를 비롯해 유독 금융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롯데그룹과 잇따른 M&A 실패, 개인 정보 유출, 주전산기를 둘러싼 내분으로 돌파구를 찾아야하는 KB금융은 LIG손보 인수를 통해 분위기 전환을 꾀했다.

      경제적인 논리 외에 다른 목적, 즉 국면 타계용 M&A에 나선 것이다. 예정대로 골드만삭스는 가격 경쟁을 붙였다. 불과 며칠 사이에 적정 가치에 대한 고려는 사라지고 궨인수궩만을 향해 달렸다. LIG손보 인수에 참여한 보고펀드와 자베즈파트너스는 적정 가치 이상으로 가격이 치솟자 이탈했다. 투자은행(IB)시장 한 관계자는“막판까지 경쟁을 벌인 KB금융과 롯데그룹은‘반드시 인수해야 한다’는 승부욕에 사로 잡혀 가격경쟁을 벌인 면이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와 LIG손해보험 주주들은 충분히 달아오른 가격에 만족하며 KB금융을 최종 승자로 선택했다.

      KB금융이 인수한 LIG손보 지분
      예상가보다 2000억원 이상 더 받아

      IPO시장에서도 같은 현상 일어나
      제일모직 등 놓고 IB들 ‘고평가 경쟁’

      채권시장에선 우량채권 과열 투자
      2000년대 후분 ‘승자의 저주’ 재현 우려

      매각측은 최소한 기대했던 것보다 2000억원 이상을 더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의 LIG손보 인수가를 바탕으로 LIG손보 가치를 산정해보면 지난 2012년 포기한 ING생명보다 1조원이상 높다.

      올해 3월 국내 2위 보안업체 ADT캡스의 경영권을 외국계 모펀드(PEF) 운용사인 칼라일이인수했다. 인수금액은 19억3000만달러, 우리돈 환산 2조원이 넘었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번번히 헛탕을 친 칼라일은 공격적인 금액으로 인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M&A 과정에서 인수후보들간의 과열과 이에 따른 오버밸류에이션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현대가의 장자와 며느리의 경쟁으로 진행된 현대건설 M&A도 대표적인 예다. 현대가의 적통성 싸움으로 번지면서 현대그룹은 당시 5조5000억원가량을 인수가로 제시했다. 또한 정치 문제로까지 비화하며 현대건설 매각전은 국내 M&A 역사에 가장 큰 오점을 남긴 거래로 기록됐다.

      딜에 대한 과열, 이에 따른 오버밸류에이션은 M&A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기업공개(IPO) 시장에 삼성그룹이 나타났다.

      깊은 딜 가뭄에 시달려 IPO부문의 구조조정을 계획한 한 증권사는 삼성그룹 덕분에 구조조정 시기를 1년 정도 늦췄을 정도로 삼성SDS와 제일모직(구 삼성에버랜드)의 등장은 대형 호재였다. IB들에게 삼성을 잡느냐 여부는 곧 생존의 문제였다.

      삼성그룹을 향한 IB들의 경쟁은 불을 뿜었다. 삼성그룹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기업가치를 제시했다. 주관사를 고용하는 입장에서보면 보다 높은 값을 받고 주식을 팔아주겠다는 곳이 예쁠 수 밖에 없다.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과 부동산, 삼성그룹 지주회사의 가치를 반영하면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는 10조에 달한다고 IB들은 평가했다. 지난해 제일모직의 주당 순이익은 2만1110원으로 주가 순이익비율(PER)이 무려 190배에 달했다. 현재 코스피시장의 평균 PER은 15배 정도다.

      LIG넥스원도 비슷하다. IB들은 넥스원의 기업가치를 1조3000억~1조8000억원 안팎으로 평가했다. 삼성테크윈, 현대로템, KAI 등의 PER을 넥스원에도 적용한 결과였다. 보다 세밀하게 사업 영역과 향후 성장 가능성을 보면 IB들이 내놓은 가치는 오버밸류에이션이란 지적이다. IB업계 관계자는“적정 가치도 중요하지만 일단 주관사 자격을 따내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채권시장이라고 다르지 않다. 우량채권을 향한 경쟁이 과열되면서 신용등급간 신용스프레드격차가 커지거나 좀처럼 좁혀들 기색을 보이지않고 있다. 우량 채권으로는 투자자금이 몰리고, 비우량 채권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채권시장이 왜곡되고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지만 우량채에 대한 투자 과열은 계속되고 있고 우량채 가격은 날이 갈수록 오르고 있다.

      오버밸류에이션의 끝은 좋지 않다. 2000년대 후반 이후 국내 M&A시장은‘승자의 저주’로 압축됐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삼킨 금호그룹은 분해되는 위기를 맞았고, 웅진그룹은 극동건설을 인수한 이후 균열이 생겼다. PEF들도 장밋빛 전망을 앞세우며 경쟁을 거듭해 기업들을 사들였지만 현재는 투자 회수를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제일모직은 IPO 대표주관사로 KDB대우증권을 단독 선정했다. 이삼규 대우증권 IB사업부 대표는“공격적인 밸류에이션이나 수수료 전략을 앞세우기 보다는 제일모직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이 지난해, 2008년 이후 상장한 297개 기업을 전수조사한 결과 IPO 이후, 주관사로 참여한 증권사를 추가 자금조달에 다시 고용한 곳은 49곳에 불과했다. 최소 1년, 길게는 5년간 동고동락했지만 주관 증권사의 오버밸류에이션에 신물이 난 기업이 더 이상 해당 증권사와 거래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