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스팩, 지정감사제 도입 '뜨거운 시장에 찬물'
입력 2014.08.18 08:40|수정 2014.08.18 08:40
    [다시 생존 위협받는 스팩①]
    외감법 시행령 도입되면 조속한 합병 불가능
    증권업계, 애써 살린 불씨 다시 꺼질라 '전전긍긍'
    • [08월13일 17:04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가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기업들이 스팩과 합병을 주저할만한 규제 장벽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에서 지정감사인 강제 지정 등 새로운 규제가 도입되고 있는 까닭이다.

      스팩은 2010년 이후 자본시장에서 가장 극적인 질곡을 겪은 상품 중 하나다. 초기 2년 동안에는 비현실적 규제로 허송세월하며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지만, 이후 규제가 상당부분 폐지되며 각광받는 투자 상품으로 다시 떠올랐다. 최근 우리스팩3호의 공모에 1조원이 넘는 시중 자금이 몰리는 등 스팩은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최근 스팩 업계는 달아오른 시장의 열기와는 달리 '다시 신뢰를 잃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차 있다. 정부가 우회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에도 지정감사인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게 계기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 7월 초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이에 대한 세부 시행방안을 검토 중이다. 새 시행령에는 우회상장 시 피합병법인이 지정감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지정감사 제도는 당초 직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에게만 해당했지만, 형식상 우회상장인 스팩을 통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기업들에까지 적용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지정감사인 제도가 스팩에도 도입되면 '빠른 합병을 통한 투자금 회수'라는 투자 매력이 사라지게 된다.

      스팩과 합병을 통해 상장을 계획 중인 비상장법인이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지정감사인을 배정, 감사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 과정이 1~2달가량 걸리는데다 최소한 반기나 연간 감사를 받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지정감사인의 경우 비용도 일반 감사보다 최소 2배 이상 많이 든다. 합병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이 모두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스팩이 합병 과정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해 시장에서는 의문의 목소리를 제기한다. 스팩과 기업이 합병하기 위해서는 스팩 주주들이 주주총회를 열고 의결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련의 자체적인 과정을 통해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는데, 직상장과 같은 수준의 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수·합병(M&A)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시장을 살리기 위해 규제철폐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 같은 규제에 인해 시장은 위축된다"며 "모처럼 주목받는 시장에서 정부가 왜 이런 제도를 도입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제도 개편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금융위원회는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입장이다. 연간·반기 감사보고서 제출시기에 맞춰 지정감사인을 지정하면 크게 일정이 지체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일단 국내 증권사들은 시장이 위축될 것을 고려해 조속한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한국거래소 등을 통해 금융당국에 목소리를 전달하는 동시에 제도 적용 전 빠르게 스팩 상장 및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9~10월에만 KB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5곳 이상의 대형 증권사들이 스팩을 상장시킬 예정이며, 중·소형 증권사들의 스팩결성도 잇따를 전망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장에 쏟아져나온 스팩들이 '임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스팩 합병 성공 사례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며 당초 조명받지 못했던 '손톱 밑 가시'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스팩 활성화를 위해 아직 걷어야 할 규제 장벽이 많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