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곳 잃은 캐피탈…금융시장서 존재감 사라지나
입력 2014.09.18 08:00|수정 2014.09.18 08:00
    [존재감 사라지는 캐피탈社①]
    이익률 갈수록 떨어져 '앞날 깜깜'
    개인대출 제한 등 규제까지 겹쳐
    KT·두산·동부 등 신용도 떨어져
    매물 쏟아지지만 공급 넘쳐 난항

    고기술·저신용 기업엔 아직 큰 역할
    업체 수 감축 등 경쟁력 강화해야
    • [09월17일 09:47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 국내 금융시장에서 한 축을 차지해 온 캐피탈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경기 부진 장기화에 수익성은 날로 악화하고 있는데 각종 규제의 칼날에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특정 상품의 폐지를 두고 벌어진 업계간 반목은 먹거리가 사라지는 업계의 불안감을 반증한다.

      업계 전반의 신용도는 떨어지고 다수의 캐피탈사들이 매물로 쏟아지고 있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 제2금융권에서 캐피탈 대체재들이 등장하면서 '문제만 일으키는 캐피탈이 존재해야 하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캐피탈의 존재감은 사라진 지 오래되자 머지 않아 캐피탈이 금융시장에서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캐피탈업계의 이익률 하락 압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리스할부금융 업계의 2014년 1분기 운용수익률은 9.1%를 기록했다. 직전 분기에 비해 0.2%포인트 낮아졌고, 최근 10분기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반기에는 수수료체계 합리화 등 리스관행개선 조치들이 시행될 예정으로 이익률 추가 하락은 불가피하다.

      자본적정성은 조금씩 개선되는 추세다. 현대커머셜·JB우리캐피탈·NH농협캐피탈 등이 잇따라 자본을 확충하며 레버리지 비율을 규제수준인 10배 이내로 낮췄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성장성 둔화로 가능해졌다. "새로 할 일이 없어지니 관리만 하는 실정"이라는 업계 관계자의 대답처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캐피탈업계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가뜩이나 자기 먹거리도 줄어드는데 '규제'는 업계 전반의 목을 죄고 있다. 캐피탈업계는 국내 금융시장의 주체 중에 규제의 영향을 가장 먼저, 또 크게 받는다. 금융당국 입장에선 제2금융권에 대한 조치가 규제 효과 극대화에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발표된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은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여신전문금융업(여전업)의 기업금융기능 활성화를 위해 리스·할부·신기술금융을 ‘기업여신전문금융업’으로 통합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등록업종 간 통합의 실질적 영향은 없다. 현재 46개 리스·할부금융사 중 44개사가, 14개 신기술사업금융사 중 5개사가 2개 이상의 업을 겸하고 있다. 등록업종 간 구분은 이미 무의미한 만큼 여전업 내 칸막이 제거는 실효성을 고려한 규제정비의 수준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기업금융 중심으로 여전업을 유도하려는 금융당국의 의지는 강하다. 하지만 ▲대주주 등과의 거래제한 강화 ▲개인신용대출을 총자산의 20% 또는 10% 이내로 제한 등은 몇몇 캐피탈사들에 있어 존립 자체를 흔들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전업계 한 관계자는 "가계 빚이 1000조원을 넘었지만 여전업계 자산은 87조원에 그쳐, 말 그대로 '마이너'한 수준"이라며 "각 캐피탈사의 사정이 다르고, 또 특기가 다른데 무조건 기업금융만 본업으로 하라고 하면 신용이 낮은 기업들만 캐피탈사들을 찾게 되고 이는 업계 전반의 부실을 야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가계냐, 기업이냐는 각 캐피탈사들이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지 규제로 정해주는 것은 업계를 고사시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영업환경이 갈수록 나빠지는데 무엇보다 언제 개선될 지가 불투명한 게 더 큰 문제"라고 전했다.

      캐피탈을 대체할 금융기관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

      기업금융이 시중은행의 트렌드가 됐고 최근 들어선 중견·중소 기업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과거 캐피탈 등 제2금융권이 주도를 해 온 기술금융 지원을 이제는 은행권이 주도한다. 여전업계 입장에선 여러모로 은행과의 경쟁에 뒤쳐질 수밖에 없다.

      보폭을 넓히기 어려운 가계금융에선 이미 일본계 대부업체가 값싼 조달비용을 앞세워 빠른 속도로 잠식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기준 일본계 대부업체들의 대부잔액은 총 4조4000억원으로 자산 100억원 이상 92개 업체의 전체 대부잔액(8조1000억원)의 절반이 넘는다.

      일본계 대부업체는 캐피탈의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저축은행에서도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해말 일본계 저축은행의 총자산은 5조6395억원으로 업계 전체(38조9727억원)의 14.5%, 총 대출 규모는 14.4%를 차지했다. 러시앤캐시로 잘 알려진 아프로파이낸셜그룹은 최근 OK저축은행 출범에 이어 아주캐피탈 인수전에도 참여하는 등 제2금융권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유일하게 업권이 보장된 것은 자동차할부금융이지만 이미 시장 포화상태다. 업계 1위 현대캐피탈의 지위가 공고하고 나머지를 두고 캐피탈업계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최근 카드복합할부 상품 폐지를 두고 현대자동차-현대캐피탈과 중소형 캐피탈사들 간의 갈등이 커진 것도 이 시장에서의 생존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자동차할부금융사 관계자는 "그나마 성장하는 시장이 자동차금융이다 보니 캐피탈 외에도 은행, 카드사 등 다수의 금융사들이 시장에 진입했다"며 "수입차 판매 증가로 수입차 할부금융사까지 영업을 늘리면서 국내 자동차할부금융사들의 영업 환경은 레드오션에 들어간 지 오래"라고 말했다.

      경쟁력을 잃어가는 캐피탈사들의 신용도는 떨어지고 있다. 올 들어 KT·두산·동부·효성·씨티캐피탈 등의 등급 및 전망이 떨어졌다. 캐피탈업을 더 이상 영위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기업들을 매물로 내놨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 매각 작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캐피탈'이라는 업종이 머지 않아 국내 금융시장에서 자취를 감추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다만 기술력은 있지만 당장 신용도가 낮아 자금 조달이 어려운 기업에는 캐피탈이 중요한 조력자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기회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업체 수를 크게 줄여 경쟁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업계 내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금융당국도 일괄적 규제 대신 업계의 질적 성장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