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얻은 건 '사옥' 잃은 건 '신뢰'
입력 2014.09.19 10:46|수정 2014.09.19 10:46
    투자자 "명품 브랜드 인수하거나 배당 늘렸어야"
    현대차그룹 계열사 시가총액 하루 새 8조4000억 날아가
    • [09월18일 16:27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현대차그룹이 통합 사옥을 얻었는 지는 몰라도, 시장의 신뢰는 잃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이 서울 강남 삼성동 한국전력(이하 한전) 본사 부지 입찰에 10조5500억원을 써내 낙찰자로 선정된 것에 대해 한 시장 관계자의 평가다.

      이번 결과를 놓고 금융 시장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보수적인 경영방침으로 알려진 현대차그룹이 제시한 낙찰가로는 믿기 힘들다는 견해다.

      국내 한 증권사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은 공장 신설이나 인수·합병(M&A)에 있어서 보수적인 투자 기조로 유명하다"며 "이번에 현대차그룹이 제시한 가격은 이런 시장의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고 말했다.

      외국계 투자가들 사이에선 격앙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간 적극적인 투자 활동을 통한 연구·개발(R&D)과 브랜드 가치 상승을 주문한 외국계 투자가들로서는 부지 매입에만 10조원을 쓴다는 데 납득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외국계 투자가들 사이에선 10조원이라는 자금을 브랜드 가치 상승에 사용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도 나오고 있다.

      한 외국계 증권사 연구원은 "외국계 투자가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며 "외국계 투자가들은 10조원이라는 자금을 차라리 이탈리아 페라리나 영국 애스톤마틴 같은 고급 브랜드 인수에 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외국계은행 관계자는 "외국계 투자자들은 최경환 부총리가 얘기한대로 배당이 늘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기대를 했는데 10조원을 들여 땅을 사들인 것에 대해 격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의 반응은 주가로 나타나고 있다. 18일 현대자동차의 주가는 전일보다 9.17% 하락한 19만8000원에 마감했다. 기아자동차와 현대모비스도 각각 전일 대비 7.80%, 7.89% 빠진 5만4400원과 25만7000원에 마감했다. 이들 세 회사의 시가총액이 하루 사이에 8조4000억원 날아갔다.

    • 신용평가사들도 이번 현대차그룹의 한전 부지 매입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낙찰가 10조원에 이르는 보기 드문 대형 거래이기 때문이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이번 거래 규모가 10조원에 달하는 대형 거래라 유심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의 재무 여건을 고려했을 때 당장 신용등급 상의 변화가 발생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일부 증권사 연구원들은 현대차그룹의 재입찰 시도 가능성도 제기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개인적으로 현대차그룹이 전략적으로 삼성전자의 입찰가 파악을 위해 일부러 높은 가격을 제시한 후 재입찰을 시도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 시장의 이런 반응과 대조적으로 현대차그룹 직원들은 이번 결과를 반기는 분위기다. 현대차그룹이 사용하고 있는 양재동 사옥의 경우 도심 외곽에 위치해 교통여건 등이 다소 불편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결과를 놓고 미래 100년을 내다본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현대차그룹은 “한전부지 인수는 단순한 중단기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영차원에서 30여개 그룹사가 입주해 영구적으로 사용할 통합 사옥을 건립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금융(IB)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이번 입찰에 최종 낙찰자로 선정됨으로써, 미래를 위한 통합 사옥을 얻었지만, 그에 반대급부로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