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실패 리스크 더 커졌다"…'실권 수수료'의 역설
입력 2014.09.29 08:35|수정 2014.09.29 08:35
    두산건설 CB, 수수료 구조 탓 기관들 참여 저조
    "수수료 녹여서 나올텐데 왜 사나" 오히려 실권 조장하기도
    • [09월28일 12: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두산건설의 전환사채(CB) 공모 흥행이 부진했던 건 수수료의 탓도 있습니다. 인수단 입장에선 실권수수료 등 갖은 명목의 수수료가 없었다면 인수 부담 때문에 거래 수임이 어려웠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인수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실권 물량을 떠안아야 했습니다." (두산건설 CB 인수단 관계자)

      이달 초 마무리된 두산건설 CB 공모는 '실권수수료의 역설'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공모 거래에서 인수단의 인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도입했지만, 이 실권수수료가 오히려 흥행 부진을 조장해 실권을 늘린 것이다.

      실권수수료는 공모 거래에서 청약 미달로 인해 인수단이 실권 물량을 인수할 경우 이에 비례해 회사에서 지급하는 수수료를 뜻한다. 실권수수료율이 10%라고 가정하면, 100억원 규모 거래에서 70억원이 청약 미달됐을 경우 이를 자기계산으로 인수해가는 인수단이 7억원의 수수료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 같은 실권수수료는 공모 거래에서 일반화됐다. 증권사들이 인수 위험을 줄이고, 물량을 떠안았을 경우에도 일부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까닭이다. 특히 비우량기업의 공모 거래에선 인수단 사내 리스크관리위원회를 통과할 때 필수적인 요소로 꼽힌다.

      두산건설도 재무적 상황이 좋지 않던 회사였던만큼 여러 명목의 수수료를 내걸었다. 기본 인수수수료 1.7%를 주기로 했고, 다섯 곳의 대표주관사단엔 1억2000만원씩의 대표주관수수료를 따로 배정했다. 여기에 투자자 모집이 잘 될 경우 최대 2.6%의 성과수수료를 주기로 했고, 미달이 났을 경우 인수단별 개별 인수의무사채에 2.4%의 실권수수료를 지급하기로 했다.

      청약 직전까지 인수단은 경쟁률 1대 1을 조심스럽게 낙관했다. 금리 발행 조건이 투자자들에게 유리해 관심을 갖는 기관투자가들이 많았던 까닭이다.

      결과적으로 두산건설 CB는 2000억원 모집에 815억원의 청약을 받아 1200억여원의 실권이 났다. 청약을 넣으려고 준비하던 기관들이 마지막 순간에 모두 발을 빼버렸다는 후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경쟁률 1대 1이 될 지 안될 지 지켜보다가, 안될 것 같으니 아예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기관 입장에선 합리적인 행동이다. 인수단이 자기계산으로 인수한 실권물량은 조만간 시장에 다시 풀릴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수수료 녹이기'는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실권수수료를 비롯해 각종 명목으로 수억원의 수수료를 받은 인수단이 이를 채권 가격에 반영해 더 싸게 내놓길 기다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표면금리가 4%인 두산건설 CB의 1만원권 채권을 인수단이 9500원에 내놓는다면 이를 매입하는 기관은 더 적은 자금을 들여 이를 매입,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 인수단 입장에서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한정된 북(book)에 계속 채권을 떠안고 있느라 기회비용을 소모하는 것보단 낫다. 손해본 금액은 수수료로 어느정도 감당이 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같이 양극화된 시장 분위기에선 실권수수료가 흥행 실패를 조장하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며 "합리적인 인수 구조 중 하나지만 이런 역설적인 상황 때문에 실무자 입장에선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