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부지 손에 쥔 '현대차', 경영 승계 한발 앞선 '삼성'
입력 2014.10.16 08:00|수정 2014.10.16 08:00
    두 재벌家의 3세 체제 시동
    현대차, 한전부지 10조원 매입으로
    정의선 시대 열기 위한 밑거름 다져
    지분구조 복잡하지 않아 승계 작업 용이

    삼성, 구조조조 등…'이재용 체제' 전환
    자금 확보위해 SDS·제일모직 상장 가속
    • [10월14일 15:07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 삼성과 현대자동차, 두 그룹의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번졌던 한국전력공사 삼성동 부지 입찰에선 현대차그룹이 웃었다. 하지만 마냥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아직 승계 작업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그룹 사업 구조조정에서 삼성에버랜드·삼성SDS 상장까지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 넘어가기 위한 물밑 작업이 진행하면서 한 발 앞서 나가고 있다.

      한전부지 입찰은 '삼성'과 '현대차'라는 한국을 대표하는 두 재벌가(家)의 경쟁, 그리고 10조원이 넘는 입찰가격을 제시한 현대차의 복안으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현대차는 한전부지에 신사옥을 건립해 제2 도약을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중요한 승계 작업에선 더디다. 정의선 부회장 체제가 마련되는 데 있어 여러 아킬레스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이 그룹 핵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차에 대한 지배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정 부회장이 보유한 그룹 지분 중 의미가 있는 것은 현대글로비스 주식(31.88%) 정도다.

      여기에 더해 현대차 승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규제가 올 들어 잇따라 도입됐다. 지난 2월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되면서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 상승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또 지난 7월에는 신규 순환출자 금지 규제가 적용됐다. '모비스→현대차→기아차→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지배구조인 현대차그룹은 신규출자가 불가능한 상태다.

      정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 가치는 최근 가파른 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3조원대로 평가된다. 시가총액 39조원의 현대자동차는 물론, 23조원의 현대모비스에서도 지배적 지분을 확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현대엔지니어링 주식 11.72%도 갖고 있지만 비상장사라 활용에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삼성그룹은 한 발 앞서 나가 있다. 올초부터 일찌감치 '이재용 체제'로 전환이 시작, 승계 작업은 이미 실무 단계에까지 들어간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삼성SDS와 삼성SNS의 합병 결의를 시작으로 사업 재조정 작업이 시작됐다. 삼성에버랜드와 제일모직 합병,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 합병에 이어 지난 9월에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발표됐다. 건설부문의 추가 사업조정 작업도 예상된다.

      삼성SDS과 제일모직(舊 삼성에버랜드)의 상장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SDS와 제일모직 모두 연내 상장을 목표로 잡았다.

      두 회사의 상장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그룹 승계 자금 확보'라는 의미를 갖는다. 제일모직의 현 최대주주는 이재용 부회장(25.1%)으로 시장 전망대로 제일모직이 시가총액 10조원 규모로 상장한다면 이 지분 가치는 2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 부회장은 11월 상장 예정인 삼성SDS 주식도 11.25%를 보유하고 있다. 이 지분의 가치는 공모희망가 밴드 상단 기준 1조6500억원에 달한다.

      두 회사의 상장이 마무리되면 이 부회장은 당장 4조원의 가용 현금이 생긴다. 지분을 매각하거나, 비상장사일 때는 불가능했던 주식담보대출로 현금을 융통할 수 있다. 이를 증여·상속세 재원으로 활용해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3.38%와 삼성생명 지분 20.76%를 물려받으면 경영권 승계가 완료된다.

      현재 삼성전자 지분 3.38%의 가치는 5조6300억여원이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7조원에 달했지만 실적 악화에 따른 주가 하락으로 가치가 떨어졌다. 이 부회장이 승계하기엔 안성맞춤인 환경이다. 삼성생명 지분 20.76%의 가치는 4조4000억여원으로 추산된다.

      이 부회장이 이 지분을 모두 승계 받았을 때 내야 하는 증여·상속세는 최대 5조원으로 평가된다. 이 부회장은 삼성SDS·제일모직 상장을 통해 이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평가다. 부족한 부분은 세금 분납을 활용해 삼성전자·삼성생명 배당으로 충당할 수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당초 8조~9조원으로 언급되던 삼성SDS의 가치가 15조원 이상으로 평가되고, 삼성전자 주가는 떨어지며 승계에 적합한 구도가 됐다"며 "두 기업의 상장만 완료되면 경영권 승계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삼성보다 유리한 면도 분명 있다.

    • 삼성의 경우 지분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주력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오너가와 그룹의 지분율은 17.65%에 불과하다. 이중에서도 금융계열사인 삼성생명이 가장 많은 지분(7.21%)을 쥐고 있어 금산분리 규제에도 취약하다.

      당장 금융회사의 비금융회사 의결권 제한을 목적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으로 인해 2018년부터는 삼성화재 합산 7.33%의 의결권 중 5%를 초과하는 2.33%를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보험사의 계열사 지분보유 한도를 시가 기준으로 바꾸는 내용이 담긴 보험업법이 개정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대부분을 내다 팔아야 할 수도 있다. 이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무난히 마무리된다 해도, 그룹 주력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경영권은 끊임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대차는 그에 비해 지분구조가 덜 복잡하다. 순환출자로 묶여있지만 대부분 계열사 지분율이 주주총회 일반결의 요건 25%는 물론, 특별결의 요건 33%도 충족한다. 이사의 선임과 해임은 물론 사업 추가를 위한 ▲정관 변경 ▲회사간 합병 ▲영업양수도 등을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승계 구도의 밑그림이 그려지면 이를 추진하는 데엔 큰 장벽이 없을 거란 평가가 나온다.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의 빠른 현금화를 위해 현대건설과 전격적인 합병을 추진할 수도 있다.

      현대차도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등 금융사가 있지만 지배구조상 큰 의미는 없다. 금산분리에 따른 지배력 변화 리스크에서 삼성에 비해 자유롭다는 이점이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10조원 투자로 정의선 시대의 포석을 깔아주는 정도에 그쳤지만, 삼성은 삼성SDS와 제일모직이 상장되면 언제든 이재용으로의 승계를 시작할 수 있다"며 "승계 작업 상 현금동원력에선 이재용 부회장이 낫고, 지배구조상으로는 현대차가 유리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