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과 전략부재 넘어야 할 한국 PEF
입력 2014.11.13 07:30|수정 2014.11.13 07:30
    <10년차 맞이한 사모투자펀드>
    1세대 PEF에 대한 과잉기대
    업계 전반에 대한 실망감으로 표출
    블라인드 펀드 찾아보기 힘들고
    기관 수십곳서 '잔돈' 모아 간신히 등록
    • [11월12일 17:01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 국내에 사모펀드가 도입된지 10년째. 그러나 이제 국내에선 '사모투자전문회사'(PEF)란 단어가 '바이아웃(Buyout) 투자'와 분리된 지 오래다. PEF라고 해봤자, 연기금 등에서 사모(私募ㆍPrivate)로 돈을 모아 무언가(주로 주식이나 때론 메자닌)에 투자한다는 개념만 남게 됐다. 한국에서 PEF가 경영권을 취득, 기업가치를 올린 후 되팔아 고수익을 낸 사례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다.

      대신 자금모집과 투자, 그리고 회수라 PEF 운용 사이클에서 몇몇 한국적인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다.

      당장 PEF의 자금모집에서 '십시일반'(十匙一飯)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뭉텅이 자금의 운용을 맡기고 알아서 투자대상을 알아서 찾아 달라는 '블라인드 펀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투자금을 모으려면 수십여곳의 기관을 찾아다니며 100억원씩, 200억원씩 받아 겨우겨우 1000~2000억원 남짓한 PEF들 등록해야 할 상황이 됐다.

      실제로 지난 2012년부터 최근까지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PEF 성격을 분류하면, 3000억원 이상 블라인드 PEF(국민연금 코퍼레이트 파트너십 제외)를 만든 운용사는 MBK파트너스-IMM PE-H&Q AP코리아-스카이레이크 인큐베스트 등 네 곳 정도 그친다. 나머지는 그 이전에 등록됐거나 전부 투자대상이 정해진 프로젝트(Deal by deal) PEF거나, 아니면 코퍼레이트 파트너십처럼 자금용도가 제한된 펀드들이었다.

      해외 투자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런 류의 펀드는 엄밀히 말하면 PEF 범주에 속한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기관들을 위한 단순한 자금운용의 도구(Tool)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정이 발생한데는 이른바 '1세대 PEF'에 씌워진 과잉기대, 그리고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퍼진 PEF업계 전반에 대한 실망감이 원인으로 풀이된다.

      2004년 당시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개정과 함께 정부 주도로 PEF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제 한국 자본도 론스타에 필적할 성과를 낼 수 있다"라는 기대감이 생겨났다. 정부 스스로 기대치를 높였고, 언론도 이에 발맞춰 앞다퉈 '토종자본 육성론'을 양산했다. 시장에서는 당장이라도 연 수십% 고수익을 내는 사모펀드가 한국에도 출현할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PEF업계 한 관계자는 "KKR, 칼라일 같은 글로벌 사모펀드가 현재 같은 명성을 누리기까지 겪었던 시행착오의 경험과 그에 필요한 시간을 우리도 지불해야 한다"며 "투자은행(IB)이나 소규모 벤처캐피탈 혹은 회계법인 출신 등 재무전문가로 주로 구성된 PEF들이 빈티지(Vintage)의 이득이 아니고서는 자력으로 높은 멀티플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기대감에 비해 그간 국내 PEF들의 성적표는 썩 훌륭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기대가 큰만큼 실망도 컸던지라 연기금과 은행, 공제회 등 주력 기관들의 블라인드 PEF대한 시각은 급격히 차가워졌다. 금융회사 관계자는 "제시한 성과를 못냈고 값비싼 수수료만 챙겨갔다는 것 이외에도 일관성 있는 투자전략을 밀어붙인 경우도 드물고 툭하면 수시로 키맨(Key Man)이 바뀐 것도 극히 실망스러웠다"며 "자연스레 블라인드 PEF 투자는 명맥만 유지하거고 기관들은 해외 운용사만 찾게 된다" 고 지적했다.

      이 와중에 '형님'역할을 해온 국민연금이 이사장과 CIO의 신규 부임 이후 PEF 출자를 줄이고 PEF를 '깐깐하게' 평가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PEF의 투자제안을 받아도 리스크 관리를 따지며 규모 있는 딜 상당 수를 검토하다 불참했다. 또 기존에 투자받은 PEF들이 얼마나 리스크 관리를 잘하는지 점검하는 한편, 투자자산(포트폴리오)을 시가평가(Fair Value)로 판단하면 어떻게 될지 등에 대한 고심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다른 공공기관의 PEF 출자 움직임도 더욱 줄어들게 마련. 이러다보니 최근 국내 LP들의 PEF출자는 대부분 500억원, 많아야 1000억원을 집행하면서 3곳~4곳을 뽑아 회사당 200억원 안팎을 주는 게 대부분이다. 블라인드 펀드 구색을 갖추러면 10여곳 이상을 일일이 돌아다니고 자금을 확보해야만 한다.

      동시에 PEF들의 개별 투자 규모는 줄어들었다. 또 공개경쟁 입찰(Auction deal)에 참여하거나 '이벤트 드리븐'(Event Driven) 투자를 찾는 경향도 줄어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대기업 구조조정 매물이 나와도 대부분 산업은행을 위시한 국책은행이나 채권단의 워크아웃 플랜에서 마무리되는 경향이 완전히 정착됐다. 전 단계에서 싼 가격에 구조조정 매물을 살 수 있는 기회도 나오지 않고 있다. 행여 그런 매물이 있다고 해도 블라인드 펀드가 없으니 선뜻 투입할 자금도 없다. 또 다른 PEF 관계자는 "과거보다 더욱 직접 딜을 발굴해야 할 필요성이 늘어났다"며 "대신 거래 규모는 미들 사이즈 이하로 줄어들고 있어서 고민"이라고 설명했다.

      PEF 투자 사이클의 마지막인 '매각' 단계에서는 '병목현상'(Bottleneck Effect)이 심화되고 있다.

      메가박스와 씨앤앰(C&M), 실트론ㆍ동양생명에서 최근의 전진중공업, 그리고 향후 매각해야 할 에버다임 및 전주페이퍼 등 수년전 PEF들이 사들인 굵직굵직한 매물이 매각 대기 중이다.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설립된 동일 빈티지(Vintage) 펀드들이 많다보니 최근 몇년간 같은 해에 펀드 만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 국내 대기업은 신규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 오히려 디레버리징(Deleverage)과 현금확보가 보편화된 상황이다. 이래선 PEF들이 투자한 매물을 사들여 줄 '인수자'를 찾을 방법이 없다. 그나마 환율효과를 25% 가까이 누린 MBK의 테크팩 매각이 가장 최근에 성사된 PEF의 매각 딜이다.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는? 대부분의 업계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투자 전략'을 거론한다. 단순히 사모 자금을 적당히 배분 받아 투자하는 PEF가 아닌, 시장 지수를 능가하고 다른 운용사보다 뛰어난 각 운용사 고유의 투자전략 확보가 필수라는 것. 이는 A운용사와 B운용사를 비교할 때, 누가 단기간에 수익률(Gross IRR)이 좋으냐에 대한 단순비교가 아닌, 업종과 투자대상, 투자시기를 골라내고 그 기업을 한 단계 밸류업 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론을 의미한다.

      은행계 LP 관계자는 "남들이 투자를 꺼리는 업종이라고 해도 적절한 시기를 골라 먼저 투자에 나서고, 때론 리스크도 감내하고, 그 전략이 맞아 떨어져 고수익을 내는 운용사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기관 투자가는 "회사를 무조건 싸게 사는것 보다 회사 운영을 잘하고 수익성을 높여서 수익을 내는 운용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굳이 바이아웃 투자가 아닌, 상장기업에 대한 메자닌 투자라고 해도 남들이 알아채기 전 미리 회사의 밸류를 발견하는 '혜안'이라도 보여달라는 지적도 많다. 그만큼 국내 PEF 투자자들은 운용사들에 대해 높은 업종 이해도와 차별화된 전략이 고프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