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국 자본시장, 삼성과 사모펀드(PEF) 천하
입력 2014.12.10 08:00|수정 2014.12.10 08:00
    삼성SDS·제일모직, 최대 규모 기업공개
    한화에 4개 계열사 매각하는 '빅딜' 발표
    비주력 사업 정리하는 인수합병도 활발

    삼성 외엔 자본조달·매각·투자 모두 조용
    자금력 풍부한 PEF만 M&A 시장서 맹위
    • [12월09일 09:23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 2014년 대한민국 자본시장은 '삼성'으로 시작해 '삼성'으로 끝났다는 말로 정리가 된다. 다른 대기업들이 떠나간 자리는 풍부한 현금유동성을 보유한 대형 사모펀드(PEF)들이 차지했다.

      ◆대규모 상장·사업부 통매각·합병 등…눈코뜰새 없었던 삼성의 한해

      연초부터 계열사들끼리 사업부를 주고 받는 삼성그룹의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상반기가 마무리 될 즈음에는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올해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 작업이 시작됐다.

      하반기에 들어선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추진됐지만 무산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화에 4개 계열사를 매각하는 '깜짝' 빅딜(Big Deal)을 발표하며 금융시장은 물론 재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12월 제일모직의 상장이 마무리되면서 삼성그룹의 2014년 자본시장에서의 활약은 마무리됐다.

      올 한 해 삼성그룹의 자본시장 궤적을 살펴보면 이건희 회장의 부재에 따른 그룹 경영 승계, 주축인 삼성전자의 부진 등 고민과 위기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때문에 삼성의 활약상에서 그룹의 성장 가능성 보다는 단순히 현실 유지와 승계 구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국내 자본시장에서 삼성의 존재감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져보면 삼성그룹이 올해 공모 주식시장을 통해 자금조달은 단 2건뿐이다. 그런데 이 2건이 올해 주식시장 최대 규모 딜이었다. 삼성SDS의 공모 규모는 1조1589억원, 제일모직은 1조5237억원(공모가 상단 기준)으로 각각 올해 규모 기준 1, 2위를 기록했다. 이는 증자와 주식연계채권(ELB) 등 전 주식시장을 통틀어 최대 규모 딜이다.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공모 총액은 2조6826억원으로 올해 IPO 시장 규모(4조7332억원)의 57%를 차지한다. 연간 전체 주식시장 인수 규모(IPO·증자·ELB 합산 8조4693억원) 대비 32%로 올해 전체 시장의 3분의1을 삼성이 차지한 셈이다. 주식시장 전체 인수규모는 지난해 5조252억원에서 올해 3조4440억원 늘었다. 이는 거의 삼성SDS와 제일모직 공모분만큼 증가했다.

      삼성SDS 수요예측엔 역대 최다인 1075곳의 기관투자가가 참여했다. 수요예측 경쟁률은 651대 1, 공모가 기준 수요예측 신청액은 453조원이었다. 일반공모 청약에도 15조5520억원의 청약증거금이 몰려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역대 1위는 2010년 삼성생명의 19조2216억원으로 청약경쟁률 134대 1이었다. 그리고 이달 중순에는 제일모직 공모가 마감된다.

      삼성의 인수합병(M&A)도 연초부터 이어졌다.올 들어 2억달러를 투자해 미국의 사물인터넷 플랫폼 업체 스마트싱스를 인수했고 미국 공조 전문 유통 업체인 콰이어트사이드도 사들였다. 지난 9월에는 캐나다

      모바일 클라우드 솔루션 회사인 프린터온을, 10월에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관련 소프트웨어 업체인 프록시멀데이터를 인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사는 것보다 사업정리가 더 많았다. 삼성의 M&A는 경쟁력 강화보단 비주력 사업의 정리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반기에 주요 사업 정리를 살펴보면 삼성에버랜드(現 제일모직)가 건물 관리 사업을 에스원에 양도하고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코닝정밀소재 지분을 매각했다. 또 삼성전자가 TSST 지분을 전략 매각했고, 삼

      성정밀화학은 SMP 지분을 정리했다. 이어 삼성테크윈은 MDS 사업부를 매각하기도 했다. 또 하반기 들어선 계열사간 합병이 이어졌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이 합병했고, 이어 삼성SDI와 제일모직(소재 부문)이 합병했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도 합병을 발표했지만 투자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11월에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깜짝 빅딜을 발표했다.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 4개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삼성전자는 광소재 사업부문을 미국 코닝에 매각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룹의 성장 목표 vs 승계 위한 사전정지작업

      자본시장에서 삼성그룹의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 돋보였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올해 삼성그룹의 거래는 그룹의 성장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건희 회장의 부재에 따른, 승계작업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의 구조조정 성격이 더 크다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주식시장에서 삼성SDS는 상장 공모 과정에서 계열사 지분만 구주매출하며 거의 최소 규모로 상장했다. 구주매출 주체인 삼성전기는 '헐값매출' 논란에 시달리며 주가가 하락하기도 했다. 제일모직은 5300억원 규모(공모가 상단 기준) 신주발행이 있긴 하지만, 이 대부분을 차입금을 갚거나 이미 예정된 바이오로직스 증자에 활용한다는 계획을 발표,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기대감을 채워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2010년 삼성생명을 비롯해 이번 삼성SDS와 제일모직도 신주 발행이 없거나 최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IPO를 회사의 성장동력 확보 때문이라기 보다는 외부적 이유, 다시 말해 그룹의 목적(삼성생명=삼성자동차 채권단 회수, 삼성SDS·제일모직=승계)에 활용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때문에 SDS와 제일모직은 공모 과정에서 평판에 무엇보다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SDS는 전례 없는 '페널티 수수료' 논란에 진땀을 뺐고, 제일모직은 자산재평가를 내부적으로 진행하고도 이를 공모가에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시장은 '삼성'에 열광했다. 때마침 올해 주식시장의 테마가 지주회사 및 지배구조 수혜로 흐르며 '승계용 자산'이라는 딱지가 붙은 삼성SDS와 제일모직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응을 보였다.

      삼성의 M&A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은 5대 신수종 사업 중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사업의 해외 영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또 다른 신수종 사업인 태양광 사업 비중도 줄이고 있다. 또 주력사 내 비주력 사업부를 전환 배치하거나 해체 수순을 밝게 하고 있다. 무산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그룹 핵심인 삼성전자의 체질 개선, 그리고 비주력 계열사, 또는 주력사 내 비주력 사업부의 정리 등 구조조정의 일상화를 통해 이재용 부회장 체제를 굳건히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평가다.

      삼성의 내부 사정과는 별개로 삼성이 국내 재계의 롤모델이자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차후 다른 그룹들도 뒤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중복 사업을 줄이기 위한 계열사간 합병, 다른 그룹과의 협상을 통해 불필요한 사업부나 계열사를 매각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만큼 올해 삼성이 자본시장에서 보여준 족적은 여러 시장 참여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사모펀드의, 사모펀드에 의한, 사모펀드를 위한 M&A시장

      삼성을 제외한 다른 대기업들은 자본조달이나 사업부 매각, 또는 신사업 투자 등에서 조용한 모습을 보였다. 삼성을 제외하면 그나마 한화그룹이 이런저런 시도를 단행한 정도로 꼽힌다.

      그 와중에 나선것은 역시 PEF들이었다. 한해 시장을 떠들썩하게 한 웬만한 딜은 전부 대형 PEF들이 수조원대 매각을 단행하거나(OB맥주), 아니면 업계 1, 2위 회사를 조단위 규모 돈을 들여 인수하거나(ADT캡스) 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기업들이 비핵심자산 매각에 나설때도 이를 받아줄 곳은 자금력이 풍부한 사모펀드들로 채워졌다. KKR이나 칼라일 같은 글로벌 사모펀드에 이어 어피니티, MBK파트너스 등의 리즈널 펀드들은 한국에 점유율 1위 기업이 나올때마다 집중하고 관심을 보였다. 지금 진행 중인 KT렌탈이, 또 앞으로 예상가능한 홈플러스 매각 등이 대표 사례가 될 전망이다.

      이러다보니 투자시장 전반이 사모펀드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게 됐다. 자문사들 가운데 이들 대형 PEF들을 고객으로 확보한 IB나 회계법인, 로펌 등은 리그테이블 상위권을 차지하게 됐다.

      이렇다 할 먹거리가 없었던 은행권과 증권사들은 PEF들이 투자하는 딜에 참여하느라 바빠졌다. PEF들이 대규모 리캡(자본구조 재조정)에 나설때 앞다퉈 이에 참여했고, 이를 주관한 증권사는 인수금융 상위권을 차지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