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 외감법 개정 틈타 IPO 기업에 폭리 '논란'
입력 2015.01.20 07:00|수정 2015.01.20 07:00
    지난해 하반기 상장 후 감사 업무 수임 금지 이후 감사 보수 급증
    상장 전 연간 감사 보수 1500만원 회사에 1억5000만원 요구
    회계법인 "투자자 보호 위해 필요한 비용…시장 신뢰에 도움"
    • [01월15일 17:39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장면1 지난해 하반기 상장한 A 코스닥 기업은 상장을 준비하며 지정감사인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증권선물위원회에서 배정해 준 지정감사인이 1억5000만원이 넘는 감사 보수를 요구한 까닭이다. 바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간 감사 비용으로 1500만원 가량을 썼던 A사였다. 비용 증가는 예상했지만 10배는 뜻밖이었다.

      #장면2 중견기업 B사 역시 지정감사인 문제로 회계법인과 얼굴을 붉혔다. 자회사 감사 및 분기 검토보고서까지 고려해 1억원대 초반의 감사 보수를 예상했는데, 지정감사인이 2억원 이상으로 가격을 높여 부른 까닭이다. B사는 주관사와 논의 끝에 양쪽 제시 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보수를 타협했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 개정안을 틈타 회계법인이 폭리를 취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기업공개(IPO) 지정감사인의 '상장 후 감사 업무 수임'을 법으로 금지하자, 회계법인들이 보수를 크게 높이며 '한탕 장사'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회계법인들은 그간 감사 보수가 너무 낮았던 것이며,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정밀한 감사를 위해 필요한 비용이라는 입장이다.

    • 새 외감법은 지난해 하반기 시행됐다. 이 개정안엔 상장 과정에서 지정감사인을 맡은 회계법인은 상장 후 해당 회사에 최초로 도래하는 사업연도의 감사인이 될 수 없다(제4조의3 4항)는 내용이 신설됐다. 이해 상충을 방지해 신규 상장 법인의 회계 신뢰도를 높이려는 조치였다.

      회계법인들은 그간 상장 준비 회사의 지정감사인이 되면 상장 후 3년간 감사 업무도 맡을 요량으로 수수료를 낮춰줬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법 개정으로 상장 전까지만 감사 할 수 있게 되자, 회계법인들이 일제히 지정감사 보수를 끌어올렸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지정감사인은 일정 자격을 갖춘 대형 회계법인을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지정해주며, 대부분 삼일회계법인·안진회계법인·삼정회계법인·한영회계법인 등 4대 회계법인이 역할을 맡는다. 상장을 준비할 땐 관련 회계 업무가 많다 보니 비용 증가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상장 준비 기업 입장에서는 가격 인상 폭이 그간 일반적인 사례에 비춰 너무 높다고 주장한다. 보통 1000만~2000만원의 비용으로 외부감사를 받아오던 중소기업은 상장을 준비하며 지정감사인에게 4000만~5000만원을 지급해왔다. 그런데 외감법 개정 이후엔 평균 비용이 1억원대로 2배 이상 늘었다는 게 복수 관계자의 증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회계법인들이 상장을 볼모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현행 한국거래소 상장규정은 기업의 지정감사인 재지정 신청을 1회로 제한한다. 처음 지정받은 지정감사인과 보수 문제로 계약하지 못해 재지정을 받았는데, 재지정받은 감사인과도 마찰이 생기면 상장이 1년 미뤄지는 구조다.

      한 증권사 IPO 실무 담당자는 "회계법인들이 상장을 볼모로 잡고 기업에 높은 보수를 강요하는 모양새"라며 "이전엔 상장 후 관계를 생각해 자제하던 회계법인들이 '다시 안 볼 사이'라며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의 방침인 상장 활성화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계법인들도 할 말은 있다. 이전의 감사 보수가 지나치게 낮았던 것이며,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한 비용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외감법 개정으로 외부감사 법인이 늘어나고 처벌 규정이 강화돼 꼼꼼한 감사가 필요한 만큼 감사 보수를 높이는 건 추세라고 설명한다.

      국내 대형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상장의 경우 이해관계자가 많아지는 거래이기 때문에 감사 범위도 넓고 일도 많아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대형 회계법인에서 제값을 주고 제대로 지정감사를 받았다고 하면 시장의 신뢰도가 높아져 상장이 더 활성화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정감사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대로 아무런 경쟁 없이 증권선물위원회가 회계법인을 배정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자격을 지닌 지정감사인 풀(pool)을 만들어두고 회사가 직접 고르게끔 하자는 것이다. 시장 논리를 도입해 회계법인들의 자율적인 경쟁을 유도하자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