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철 밟고 있지만 일본 부품업체 따라가기엔 역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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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월19일 14: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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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기업들이 부품업 사업을 속속 강화하고 있다. 원화 강세, 중국 업체 성장이라는 변화한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고 핵심기술이 필요한 부품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완성품 시장에서 국내 대기업과 경쟁을 벌이던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는 모습이다.
삼성전자가 일본의 소니를 앞선 지 불과 몇 년 만에 샤오미·하이얼·화웨이 등 중국업체들이 삼성전자 턱밑까지 쫓아왔다. 중국 제조업체들은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외형을 키우며 국내 업체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술력에 바탕을 둔 부품업 강화로 살 길을 모색 중이다. 삼성을 비롯해 현대자동차·LG·SK가 부품업을 신성장동력 중 하나로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의 부진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로 만회하겠다는 전략이다. 작년에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20나노 공정을 내세운 대만의 TSMC에 밀려 애플과 퀄컴의 물량을 뺏겼다. 올해엔 14나노 핀펫(Fin-FET) 공정을 내세워 애플과 퀄컴 물량 확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전자 계열사들은 삼성전자 일변도를 탈피하겠단 구상이다. 전체 매출액 비중의 90% 이상이 삼성전자 등 계열사에 치우쳐 있던 삼성디스플레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중심으로 중국업체로의 공급처를 확대한다. 삼성전자 부진의 직격탄을 맞은 삼성전기와 삼성SDI는 더는 삼성전자만 바라볼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두 회사는 중국업체로의 납품 확대,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진출 등을 통해 활로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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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관계자는 "전자부문 계열사들이 부품업 강화를 위해 신사업팀을 꾸리는 등, 기존 스마트폰 중심에서 탈피해 사물인터넷(IoT), 차량용 부품으로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LG는 삼성보다 한 발 더 나가 있다. 맏형인 LG전자는 2013년부터 신성장 동력으로 자동차부품(VC)사업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메르세데스-벤츠와 스테레오 카메라 시스템 공동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보였다.
LG이노텍과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부품업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LG전자 부진에도 자체 역량을 키워 온 두 회사는 삼성의 전자부문이 동반 부진에 허덕일 때, 괄목한 성장을 보여줬다. 올해 매출 전망도 밝다.
SK는 SK하이닉스의 행보를 주목할 만하다. SK하이닉스는 4분기에 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와 소송문제를 매듭짓고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 독주를 막겠다는 계산이다.
현대차그룹은 완성차 품질 향상을 위해 핵심 부품 역량을 강화한다. 연초에는 향후 4년간 핵심기술 개발 등에 81조원 규모의 과감한 투자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부품 계열사들도 핵심 부품에 대한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4대 그룹 외에 효성, 한화, 한진 등 중견 그룹들도 적극적이다.
효성은 신소재인 ‘폴리케톤’을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추진한다. 폴리케톤은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로, 카메라부터 항공기 등 구조재료의 소재로 활용될 수 있다. 삼성과의 빅딜(Big Deal)로 화학분야를 강화한 한화는 한화첨단소재가 생산하는 자동차 경량복합소재 부문을 강화할 구상이다. 대한항공도 신성장 사업으로 항공기 부품 및 무인기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무인기 사업은 조양호 한진 그룹 회장이 직접 챙길 정도로 관심이 높은 사업이다.
대기업들의 움직임에 대해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단 해석이다. 국내 완성품 업체가 낮은 생산단가와 발 빠른 트렌드 적용으로 일본 업체를 따돌렸듯, 중국업체들은 IT기술을 기반으로 국내 업체를 점점 추격하는 형국이다. 이에 국내 대기업도 파나소닉, 도시바처럼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부품업 강화를 모색 중이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이 일본 부품사를 쫓아가기에는 갈 길이 멀다. 일단 저변이 다르다. 일본 제조업의 기반은 핵심기술을 가진 중소형 부품사가 이끌지만, 국내는 몇몇 대기업에만 의존한다. 또한 국내는 완성품 판매에만 치중해 핵심 기술을 쌓는데도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 부품산업은 백 년 이상 전통을 가진 업체들이 이끌고 있다"며 "대기업과 국내 중소형 부품사는 원천기술 확보 등 부품사업 강화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