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술유출 등 우려로 국내 대기업 나서줬으면 하는 속내
업계에선 SK가 정부와 보조 맞추는 차원에서 참여할 가능성 언급
-
[03월15일 12: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지난해 나란히 매각에 실패했던 동부하이텍과 팬택이 다시 새 주인을 찾고 있다. 마땅한 인수자가 없을 것이란 우려는 여전하다. 그 와중에 SK그룹은 꾸준히 인수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반도체와 통신을 거느린 사업구조상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일차적 배경이다.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투자활성화 요구, 최태원 회장의 사면문제 등이 얽힌 상황도 영향을 줄 것이란 얘기가 함께 나온다. SK그룹은 일찌감치 해당 거래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시장에선 가능성을 열어둔 채 바라보고 있다.
동부하이텍과 팬택은 같은 이유로 매각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인수후보가 투입한 자금만큼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주지 못했다.
동부하이텍은 시스템반도체라는 업종 특성상 꾸준히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 하지만 회사는 그동안 수익성 악화로 투자가 미진했다. 기술력 또한 글로벌 파운드리 업체에 못 미친다. 6000억원가량의 신디케이트론까지 짊어지고 있다.
팬택은 사실상 지난해 생산라인이 멈춘 상태다. 재고로 쌓인 스마트폰도 다 팔았기에, 더 이상 스마트폰에서 신규매출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영업을 못하면서 시장지위는 떨어졌다. 기술력 또한 중국업체들의 성장으로 더 이상 예전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양사 모두 겨우 찾아낸 인수후보가 자금 모집에 난항을 겪으며 매각에 실패했다. 재무상태가 탄탄한 곳이 아니면 인수가 힘들 것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오래 전부터 SK그룹이 이상적인 후보로 꼽힌 배경이기도 하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을 통해 반도체 및 통신사업을 하고 있다. 그나마 대기업 중 시너지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그룹은 오래 전부터 "인수에 관심이 없다"고 밝혀왔다. SK하이닉스는 사실상 메모리반도체 업체다. 시스템반도체 비중은 극히 낮다. 주력사업과 거리가 먼 동부하이텍을 눈여겨 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동부하이텍이 글로벌 상위 수준의 생산 기술력을 보유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SK하이닉스가 굳이 나서서 인수하려고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팬택에 대한 입장도 같다. 인수후보로 거론된 SK텔레콤은 인수전에 참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혀왔다. 팬택이 짊어진 영업적·재무적 부담을 떠안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지난해 팬택 경영정상화 과정에서 채권단이 제시한 매출채권 출자전환 및 단말기 구매를 거부했던 이유다.
그럼에도 시장에선 SK그룹이 인수에 나설 가능성을 거두지 않고 있다. 정치적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부하이텍 매각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담당하고 있다. 동부그룹 구조조정의 일부이기에 정부에서도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거래다. 시스템반도체 제조사이기에 해외업체에 매각하면 정치권에서 기술유출 가능성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
팬택 매각은 법정관리 하에 진행되고 있다. 법원이 전 과정을 총괄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미 회사의 2차 워크아웃 때부터 '팬택 살리기' 움직임이 있었을 정도다. '벤처신화'라는 상징성으로 전 국민의 시선을 받고 있기도 하다. 기술유출에 대한 우려도 꾸준히 존재했다.
정부는 그동안 대기업들이 투자활성화 정책에 동참하기를 요구해왔다. 삼성은 평택 반도체 공장 증설, 현대자동차와 LG전자는 R&D 투자에 수조원의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SK는 아직 특별히 내놓은 카드가 없다. 시장에선 M&A 참여가 그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잇따라 수조원의 투자 계획을 밝히는 상태에서, SK그룹만 나 몰라라 하기에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SK로서도 정부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처지다. 당장 최태원 회장의 사면문제가 걸려있다. 지난해 시장에서 한창 SK텔레콤의 팬택 인수설이 돌았던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사업 시너지 및 삼성·LG 등 단말기 제조사들에 대한 가격교섭력 강화도 언급됐지만, 최 회장의 사면이 가장 큰 이유라는 설명이 많았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이 최 회장을 위해 팬택 인수에 나선다면, 인수후보가 없어 위태로울 때 등장해야 명분이 설 것"이라며 "SK텔레콤은 팬택이 단말기 구매를 요청했을 때 재무상태를 다 보여줘서 회사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