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장사 활개, 유동성 과잉...돌파구 안 보이는 국내 사모펀드
입력 2015.05.21 07:00|수정 2015.05.21 07:00
    • [05월20일 10: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 블랙스톤이 170억 달러(한화 약 19조원) 바이아웃 펀드를 만든 것이 글로벌 사모펀드(PEF) 시장의 화제가 됐다. 단 7개월 간의 모집 결과다. 프레퀸(Preqin) 등을 위시한 시장조사업체들은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PEF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서서히 걷히고 있다고 봤다. 투자금이 다시 PEF로 몰린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도 PEF 주목도는 강화추세다. 일부 연기금이 정기행사로 PEF에 출자하고, 앵커 투자자 역할을 자처한다. 시장환경과 무관하게 유동성이 꾸준히 공급된다. 이와 비례해 미소진자금(Dry Powder)도 누적되고 있다.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는 이들은 또 한번의 과잉 유동성이 야기할 악몽을 걱정한다. '최악의 빈티지'(Vintage)가 돌출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증권사에게 PEF는 수수료 장사도구?

      최근 PEF 시장서 욕을 먹는 운용사(GP)는 증권사들이다. 정확히는 증권사로 대변되는, 추가 비용 없이 상설조직으로 펀드 운용이 가능한 금융전업사들이다. PEF 운용을 위해 파트너십으로 조직을 만든 독립계 운용사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이들에 대한 기존 PEF 종사자들의 시각은 따갑다. "증권거래 수수료를 대체할 수익창출의 도구로 PEF를 활용한다",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다" 등의 평가다.

      A라는 대기업이 계열사 지분을 매각한다고 하자. 제대로 된  PEF라면 이 계열사에 투자하면서 기업가치를 어떻게 높일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불필요한 비용절감, 오퍼레이션 과정 개선, 영업망 확대, 제품차별화 등이 수반돼야 한다. PEF가 2, 3대 주주 지위에 머문다고 해도 마찬가지. 당당히 기존 1대 주주와 맞서 주주로서 기업가치 개선을 논의하는 것이 PEF 투자의 정석이라는 것.

      그러나 증권사 PEF들은 거래를 따내는데만 전념한다고 이들은 본다. 자연히 A그룹이 원하는 매각가격, 거래구조, 펀드 수수료가 고스란히 반영된다. 굽신거려가며 간신히 거래를 따온 증권사 PEF는 이 조건으로 국내 기관을 찾아다니며 돈을 조달하고 A그룹에 전달한다. 그 대가로 받는 것이 펀드 운용수수료다. A그룹 회사채 발행을 돕고 인수단을 찾아준 후 수수료를 받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PEF업계 한 관계자는 "정기예금 금리가 1%대인 상황에서 금융 전업사의 조달비용은 2%면 충분하다"며 "국내 기관들에게는 4~5%에 고정금리(Fixed Income)투자로 이를 소개하고 수수료를 남겨 먹는 장사"라고 평가했다. 증권수수료 마진이 박해진 상황에서 대체할 수익원으로 PEF를 찾아냈다는 얘기다. 몇몇 PEF거래가 대표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물론 증권계열 운용사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기존 운용사들이 그간 보여준 모습도 다르지 않다"라는 것. 이런 거래에도 출자하겠다는 기관(LP)이 있으니 시장이 마련됐다는 지적도 빼놓기 어렵다.

      ◇2016년 하반기 이후, 최악의 빈티지?

      지금도 국내에서 투자 대기중인 블라인드 PEF가 적지 않다. MBK파트너스, IMM PE 등 대형 펀드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년전 국민연금과 정책금융공사, 교원공제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출자하면서 생긴 중대형 펀드들도 투자금이 많이 남아있다. 별도로 알음알음 자금을 모아 형성된 3000~4000억원대 펀드도 적지 않다.

    • 이 상황에서 국민연금과 정책금융공사를 흡수한 산업은행이 올해 대규모 출자를 단행한다. 매칭과정이 6개월에서 길면 1년까지 걸린다고 감안할 경우. 내년 하반기엔 이 펀드들이 '투자대기' 상태에 접어든다. 이들 펀드와 2013년 무렵 설립된 펀드들의 드라이 파우더가 겹치면 일종의 '병목현상'이 예견된다.

      또 다른 PEF업계 관계자는 "수익률 부진을 감안하더라도 투자금 소진을 위해 위험천만한 거래를 단행할 운용사도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6년 하반기가 최악의 빈티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누적된 드라이 파우더 해결을 위해서는 대형 옥션딜에 참여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제는 대기업 또는 중견그룹이 옥션 딜에서 PEF들을 농락하고 있다. 시너지 효과가 확실하고 그룹 오너의 의지만 반영되면 PEF가 놀랄만한 가격도 마다하지 않는다. 내로라 한 펀드를 물리치고 롯데가 인수한 KT렌탈이 표본으로 꼽힌다. 옥션딜로 도망갈 구멍도 마땅치 않다.

      ◇LP의 태도 변화 없이는 개선 불가능

      이런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출자자(LP)들에게 있다.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매년 출자를 단행해 왔기 때문.

      국내 공공 연기금의 경우. 내부 인사방침에 따라 PEF투자 담당 실무자들이 수시로 바뀐다. 10년까지 장기 턴어라운드를 지켜봐야 하는 PEF 투자와는 태생적으로 거리가 멀다. 어느 실무자가 좋은 판단으로 PEF투자를 결정, 고수익을 냈다해도 그에게 성과보수가 돌아가는 일은 전무하다. 거꾸로 PEF투자를 담당하는 자리에 있을 때 손실이 발생하거나, 감사원 지적이라도 받으면 여지없이 징계와 문책을 당해야 한다. PEF 투자에 대한 고차원적인 정책적 판단을 내릴 이유가 없다.

      자연히 관행대로 '보신주의'에 입각, 기계적인 출자만 단행하게 된다. 국민연금이 PEF출자를 단행하며 클로백 (Claw Back)조항, 즉 펀드 설립후 2년내 투자집행 실적이 저조하면 운용보수를 회수할 수 있다는 항목을 강화한 것도 한 사례로 꼽힌다.

      운용사도 마찬가지. 해묵은 '8-8 법칙'(IRR 8% 초과시, 초과수익률의 8%만 성과보수로 지급) 보상체계를 유지하면서 운용사더러 '과감하게 모험자본으로 나서달라'라고 주문하는 것도 무리다. 문제가 발생하면 전부 운용사 책임으로 떠넘기는 출자자(LP) 성향은 더 큰 문제다. 지난 2013년 국민연금이 산은캐피탈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 대표적이다.

      업계에서는 이 소송에 대해 "기금운용본부가 아닌, 감사 등을 담당하는 국민연금 공단 부서간 파워게임의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소송은 1심은 물론, 2심까지 전부 국민연금의 패소로 결과가 나왔다. 대법원에 계류중이지만 그 결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어찌보면 국민연금 등의 기관도 희생자란 지적도 있다.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운용위원회, 사소한 트집잡기에 집중했던 감사원 감사, 성과보수는 커녕 낮은 연봉을 받고 사고만 내지 말라고 주문하는 비전 없는 기금운용 정책 아래선 별도리가 없다는 것.

      제도 도입후 10년이 지나도록 이런 환경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변화의 부재는 국내 PEF들을 거대 연기금에 고정수익을 갖다주고 수수료를 받는 '생계형 운용사'로 전락시켰다. 현재로서도 딱히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