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눈치보는 금융당국…신용평가 개선방안은 몇년 째 '공염불'
입력 2015.06.26 07:35|수정 2015.06.26 07:35
    [Invest Chosun]
    임종룡 금융위원장 취임 이후 '독자신용도' 무기한 연기
    국내 신평업 환경 악화…외국계 신평사 '출구전략' 가능성
    • [06월19일 09:3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신용평가 제도 개선을 위한 금융당국의 노력이 몇 년째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금융당국은 동양·KT ENS사태에서부터 최근 포스코플랜텍 사태까지 매번 문제가 터질 때마다 신용평가 제도 개선책을 내놨다. 하지만 실질적 제도 개선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영업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면서 이미 진출한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출구전략'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 최근 ‘신용평가산업 발전방안 모색’이란 주제로 임종룡 금융위원장 이하 금융감독원·금융투자협회·각 신용평가사·증권사·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가 참석한 토론모임이 열렸다.

      이 모임에서 그간 논의돼 온 독자신용도 도입시기가 확정되고, 다른 현안에 대한 해답도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과거 논의된 수준 이상의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당초 이달 도입되기로 예정됐던 독자신용도 제도에 대해 임종룡 위원장은 "도입 시기를 신중히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신용평가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첫 번째 요인으로 금융당국의 이러한 오락가락하는 태도가 꼽힌다. 국내 채권시장은 물론 자본시장 전반에서 기업의 입김이 세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말 바꾸기를 하며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독자신용등급은 모기업의 지원가능성 등이 배제되기 때문에 보통 최종등급보다 1~2노치 가량 낮은 등급이 부여된다. A그룹 계열사 재무담당자는 "모기업이 아닌 계열사 입장에서는 독자신용등급이 낮게 부여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아무래도 해당 제도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제도 도입이 미뤄지고 있는 데에는 발행사들의 반발이 크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그간 독자신용도 시행에 대비해 온 신용평가사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각 신용평가사들은 독자신용도 도입 '출발' 신호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업계는 임종룡 위원장의 발언을 사실상 제도 도입이 무산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신용평가사 관계자도 "독자신용도 도입은 동양사태 이후 떨어진 국내 신용평가사의 신뢰도를 회복시켜줄 수 있는 '첫걸음'으로 꼽히는데, 금융당국이 발행사의 눈치를 보며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용평가 업계는 임종룡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신용평가 시장에 활력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결국 예년과 다를 바 없었다"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 최근 폐지가 결정된 '애널리스트 순환제도' 역시 금융당국의 일관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금융감독원은 이 제도를 2012년 3월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도입했다. 당시 발행사-애널리스트간 유착을 막기 위해 동일회사 연속평가 금지기간이 5년으로 규제돼 있었으나, 개선방안 도입을 통해 4년으로 기간이 강화됐다. 그런데 제도가 개선된 지 3년 만에 전면 폐지됐다.

      제4신용평가사 도입과 복수평가제도 폐지 논의에서도 금융당국의 무책임한 태도가 지적된다. 해당 제도 도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대책마련 없이 지속적으로 공론화만 시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제도도입을 통해 과점이 고착화된 시장에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는 명목상 장점이 있다. 하지만 경쟁 심화로 등급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결국 두 제도가 도입될 경우 발행사만 혜택을 보는 구조이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발행사에 선제적 혜택을 제공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른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국내외 모두 새로운 신용평가사가 시장에 진출할 경우, 타사 대비 신용등급을 1노치가량 높게 부여함으로써 발행사를 유치하는 행태가 발견된다"며 "이는 결국 신용평가 질은 떨어뜨리고 시장의 과도한 경쟁을 초래해 발행사의 '등급쇼핑'을 용이하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신용평가 시장 영업환경이 점점 악화되면서 일각에선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의 '출구전략' 가능성을 제기한다. 현재 국내 신용평가3사 중 한국신용평가(무디스 계열)와 한국기업평가(피치 계열)가 외국계 신용평가사를 모기업으로 두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국내 채권발행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제한적인데다가 규제에 노출돼 있어 글로벌 평가사들이 볼 때 매력적인 시장은 아니다"며 "제4신용평가사가 도입될 경우 수익성이 더욱 악화될 우려가 있어  외국계 업체가 '엑시트(Exit)'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