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 매도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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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가결되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배구조 불투명성으로 인한‘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국민연금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실망도 커지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확정된 지난 17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의미심장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날 하루에만 1256억원(코스피·코스닥 합산)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특히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관련 주식인 제일모직·삼성물산·삼성SDS·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에서의 외국인 매도가 두드러졌다.
삼성물산 주가가 이날 전일 대비 10.39% 떨어졌고 현대차 관련 주식도 모두 하락했다. 외국인들은 5개 종목에서만 약 1040억원(종가 기준 추정치) 규모의 주식을 매도했다. 삼성물산의 매도 규모가 약 9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매도는 예견됐다. ISS·글라스루이스 등 의결권 자문기관들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해 한 목소리로 불합리하다고 지적했지만 합병이 이뤄진 데 대한 실망을 주식 매도로 대응한 것이다. 금융시장에선 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로도 매도세가 나온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기업의 지배구조와 승계 과정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만과 불신이 확산될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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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지배구조와 비합리적인 승계과정은‘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순환출자 금지 규정이 도입됐지만, 기존의 순환출자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일감 몰아주기로 회사를 키운 뒤 이를 통해 2세·3세가 경영권을 승계받는 구조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사례였다. 이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계기로 이같은 문제들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는“이번 합병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켜 외국인 투자자, 특히 장기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을 더욱 외면하게 될 것”이라며“이는 국내 자본시장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수익에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일부 외국인 투자자들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고 있다. 국민연금에 의결권 자문을 하는 기관들도 모두‘반대’를 권고했는데 이를 뒤집은 배경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10일 투자위원회를 열고 합병에 찬성하기로 의결했다. 당초 시장에서는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에 위임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국민연금은 내부 결정으로 마무리지었다. 이를 두고‘SK와 SK C&C 합병에 반대표를 던진 의결권위원회가 삼성물산 합병에도 반대할까봐 위임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이번 결정은 국민연금이 추후 비슷한 사안에서 비슷한 선택을 하게끔 하는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라며“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불합리한 경영 판단이 나왔을 때 국민연금이 견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