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승계 분쟁… '불씨' 남은 그룹 많다
입력 2015.08.20 07:00|수정 2015.08.20 13:43
    기업과 가업을 동등시 여기는
    후진적 지배구조 여전히 공고

    삼성家의 계열사 지분 조정 등
    언제 터질지 모를 기업 상당수

    오너 일가 싸움 커질 때마다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도 상실
    • 롯데그룹 사태로 국내 대기업들의 승계 이슈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매번 시발점은 '장자 승계 원칙'과 이를 둘러싼 '형제의 난(亂)'이었다. 과거 20건에 달하는 대규모 승계분쟁들도 이 카테고리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다.

      "아버지가 장남에게 그룹 소유권과 경영권을 별 문제 없이 넘겨주느냐", "승계 비용은 얼마인가", "승계 받을 형제 및 자매가 여럿일 때 선대가 구획정리를 어떻게 해서 넘겨주느냐", "차남, 장녀 등 다른 형제들이 묵묵히 이를 인정하느냐, 반발하느냐", "다른 주주들의 반발은 없느냐" 등의 문제를 두고 오너 일가 싸움이 반복됐다.

    • 근본원인은 기업(企業)을 가업(家業)과 동등하게 여기는, 아시아권의 빈번한 전근대적 기업 지배구조와 이를 허용하는 문화에서 비롯된다. 기업은 창업주나 오너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기에 회장은 왕이나 군주로서 군림할 수 있다. 그리고 능력 여부와 무관하게 그룹을 오너의 장남에게, 또는 가족에게 승계하는 것이 당연하게 인정 받는다.

      끊임 없는 비판 속에서도 이 구도는 공고하게 운영되고 있고, 관련 분쟁도 지속되고 있다. 과거 현대그룹의 정몽구-정몽헌 '왕자의 난', 두산그룹의 형제의 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유산 상속 소송이 전부 그랬다. 왕위계승을 놓고 '골육상쟁'을 벌여 온 왕조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는 모양새다.

      문제는 이 사안이 현재진행형인 것은 물론, 미래 발발 가능성도 남아 있다는 점이다. 재계 순위 50위에 소속된 그룹 중 상당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 지 모를 '불씨'를 안고 있다. 해당 그룹들은 당장은 아니라고 해도 막연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국내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원만한 장자승계 과정에서 해결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삼성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장자인 이재용 부회장의 위치가 공고해졌다. 이재용 부회장-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서현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의 구획 밑그림도 나왔다. 하지만 계열사 지분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엘리엇 사태'와 같은 반발이 우려된다.

      현대차는 '현대모비스→현대ㆍ기아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 아래서 정의선 부회장이 어떻게 승계 받느냐는 고민을 한창 해야 한다.

      재계 순위 10위의 한진그룹도 한때 2세들간의 '형제의 난'을 겪었다. 지금은 한진칼과 정석기업 투자부문을 중심으로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했으나 이제부터는 조양호 회장의 지분 승계 문제가 남아 있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증여세 이슈가 여전하다. 장녀인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과 장남인 조원태 부사장이 그룹 경영권을 두고 내부적인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에 대한 국민적 지탄이 승계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도 미지수다.

      롯데와 함께 국내 유통업계 양강(兩强)을 이룬 신세계는 이명희(72) 회장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후문이다. 정용진 부회장-정유경 부사장의 승계구도가 어떻게 결정될 지 아직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남매에게 어떻게 그룹을 넘기느냐"를 놓고 할인점과 백화점을 나눌지, 신세계와 이마트가 사업-지주를 분할할지, 단독경영으로 이어질지 등의 이슈가 남아 있다.

      '차남의 반란'을 치른 효성그룹은 장남 조현준 사장, 삼남 조현상 부사장의 공동경영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애매한 지분율 차이로 인해 향후 후계 정리 과정이 어찌 흘러갈지 알 수없다.

      승계 갈등의 잠재적 불씨를 안고 있는 것은 재계 상위권 그룹만의 일이 아니다.

      세아그룹은 이운형 전 회장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동생인 이순형 회장이 자리를 물려 받았다. 이운형 전 회장의 장남 이태성 세아홀딩스 전무와 이순형 회장의 장남 이주성 세아제강 전무를 통해 '사촌경영'을 진행 중이다.

      이태성 전무 측과 이주성 전무 측의 지분 차이는 크지 않다. 그룹 측은 경영권 다툼 가능성에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안팎에선 누군가 독차지를 할 것인지, 아니면 세아제강과 세아베스틸이 분리를 할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이 같은 승계분쟁 '불씨'들이 매번 '화마(火魔)'로 이어질 때마다 기업들의 경쟁력 하락은 물론, 국가 경제적인 타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2세 회장이 무탈하게 승계하는 것"과 "그룹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살아남느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들이 무한경쟁 시대에 새로운 먹거리 창출과 그룹의 새 비전을 찾는데 혈안인 상황에서도, 국내 기업들은 이런 후진적 승계 문제로 매번 발목을 잡혀 왔다.

      롯데그룹만 봐도 감지할 수 있다. 유통과 석유화학이라는, 경기 변동에 민감한 사업군에 치중돼 있는 롯데그룹은 최근 실적 급감 속에 투자 부담 증가로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하지만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겪는 동안 그동안 쌓아 놨던 그룹의 이미지는 한 순간에 추락했다. 소비자와 투자자들이 롯데를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해졌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소유-경영의 분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이어 가지 않는다면 한국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상실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