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배구조 견제와 균형 안 이뤄져…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시급"
입력 2015.08.20 07:10|수정 2015.08.20 07:10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기업 지배구조, 대주주 유리
    연기금 주주권 활용 잘해야
    • "대주주의 결정에 대해 견제와 균형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연기금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관여하도록 하는 행동강령인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빨리 도입해야 합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사진)은 환경-사회책임-기업지배구조(ESG) 요소를 바탕으로 한 국내 사회책임투자(SRI)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그가 이끄는 서스틴베스트는 지난 6월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 중 가장 먼저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하라'고 권유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그는 기업이 평균 10% 수준인 대주주의 이익만을 보장하고, 나머지 90%의 주주는 소외되고 있다는 점을 국내 기업 지배구조의 핵심 문제로 제시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연기금의 역할론을 제시했다. 이 역할론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게 '스튜어드십 코드'다.

      - 최근 대기업 승계를 두고 논란이 많다.

      "대주주의 결정에 대해 견제와 균형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대차가 10조원 한국전력 부지 매입 결정하는 이사회는 20여분만에 끝났다고 한다. 95세인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을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국내 대기업의 가족경영에서 원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가족경영을 반대하지 않는다. 유럽 상장기업 중 40%가 가족경영 기업이다.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5대 150년간 기업을 이끌어온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이 대표적이다. 한때 정경유착으로 지탄을 받았지만 사회적 책임이라는 교훈을 얻어 후계자가 갖춰야할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국내는 다르다. 사건과 추문으로 대기업이 교훈을 얻고 이를 시정한 사례를 찾아보긴 어렵다. 외환위기 이후 사외이사 등 좋은 제도가 생겼지만 국내 지배구조는 여전히 세계적으로 하위권이다."

      - 현대차, 통합 삼성물산이 거버넌스위원회 도입하지 않는가.

      "진정 소통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지고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주들의 요청 사항이 실제로 반영되고 피드백을 주는 구조가 제대로 작동돼야 한다.

      국내에서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다. '기업 지배구조'와 '기업 콘트롤'은 다른 얘기다. 콘트롤은 말 그대로 지배주주의 명령체제나 지휘체제다. 기업 지배구조라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 기업에게 자본을 제공해준 주주나 채권자에게 최적의 수익을 돌려줄 수 있는 매커니즘을 뜻한다.

      우리나라 61개 대기업집단의 통계를 내보면 평균적으로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의 평균은 10% 정도다. 현재의 기업 지배구조 논의는 10% 지배주주 이익을 보장할 것이냐, 90%를 가지고 있는 진짜 주주들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냐의 구도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 최근의 경영권 보호장치 논의는 틀린 것인가.

      "경영권 보호장치는 '적대적 세력'이 있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한다. 적대적 세력은 주로 잘못된 경영을 하는 '경영진'이 대상이다. 이를 전체 주주에게 적대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상장으로 시장을 통해 자본을 조달, 성장했다면 90%의 지분을 가진 외부주주들의 이익을 배려해야 할 때가 됐다. 그렇지 않으면 투자자는 떠나고 투기꾼만 남는다.

      기업의 지배구조가 잘 갖춰지면 양질의 투자자가 들어온다. 연기금들이 들어온다. 글로벌 연기금 전체 자본이 36조달러(4경2000조원)이다. 투자 기간이 긴 연기금은 지배구조를 반드시 검토한다. 기업 지배구조를 포함한 ESG 요소가 기업의 재무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이제 정설이 됐다. 2000년 7월 영국이 ESG를 고려해 연금법을 개정한 게 효시다.

      - 기업 지배구조에서 연기금의 역할론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는가.

      "연기금은 투자 연한이 길다. 오너십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기업을 모니터링하고 면담도 하고, 그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연기금은 투자자다. 투자자는 주주다. 상법상 주주들에게는 주주권이 부여돼있다. 수탁 기관은 투자자를 위해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이를 수탁자 자본주의(fiduciary capitalism)라고 한다."

      - 국민연금이 목소리를 내고 주주권을 행사해야 하나.

      "국민연금이 목소리를 내려면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은행 정도의 독립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는 행사 규정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결과를 별도로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ISS같은 독립적인 민간기관을 키우고, 의안 분석을 받아 권리를 행사하면 관치금융이나 연금사회주의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다."

      - 수탁자 자본주의를 위해 어떤 개선이 더 필요한가

      "영국에선 2010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기관이 투자대상을 상대로 주주권을 적극 행사해 지속성장에 기여하도록 하는 연기금의 행동강령이다. 유럽 여러나라는 물론 말레이시아, 캐나다, 일본도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나라도 빨리 도입해야 한다. 연기금이 주주권을 제대로 활용하면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