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사태 후폭풍…"수주산업 재무제표 못 믿겠다"
입력 2015.08.21 07:00|수정 2015.08.21 10:08
    수익성보다 수주실적 중시
    추정치 의존 매출 방식 문제
    미청구공사 급증 등 부작용
    회계부정 강도높은 처벌을
    • 대우조선해양의 '어닝쇼크'는 수주산업 재무제표의 신뢰성을 떨어뜨린 또 한 번의 촉매제가 됐다. 국내 업체 간 저가수주 출혈경쟁 속에서 관행으로 자리잡은 '추정치에 의존한 공사진행 방식'이 원인으로 꼽힌다.

      수익성보단 수주실적을 중요시하는 업계 풍토도 회계상 도덕적해이(모럴헤저드)를 부추기고 있다. 이에 회계부정 적발 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단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최근 2~3년간 대형 건설사와 조선사들은 과거의 부실요소를 한 회계연도에 모두 반영하는, 이른바 '빅배스(Big Bath)'를 단행했다. 2013년 GS건설·삼성엔지니어링 등 대형 건설사들이 해외사업장에 대규모 손실이 있음을 고백하고, 이를 재무제표에 반영했다. 올해는 대우조선해양이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조선 빅3 중 '나홀로 흑자' 행진을 이어 온 대우조선해양은 최고경영자(CEO) 교체 직후 대규모 손실 가능성을 언급했고, 2분기에만 3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공시했다. 현대엔지니어링도 분식회계를 통해 손실을 축소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주산업 회계에 대한 불신은 안팎으로 팽배해졌다. 자금조달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은행은 이미 해당 분야 기업의 대출 심사를 강화했다. 신용평가사도 해당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후행적으로 낮췄고, 수주산업 회계와 관련된 작은 의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증권사 회사채 주관 담당자는 “과거엔 업황이 부진해도 시장 지위가 높은 기업들이 우호적인 금리 조건을 내세우면 투자자 모집에 성공했으나,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터지면서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더욱 얼어붙었다”고 말했다.

    • 유독 수주산업 중심으로 예상치 못한 '어닝쇼크'가 반복되는 원인으로는 저가수주 경쟁, 수주산업만의 회계처리 방식이 꼽힌다.

      건설사들은 국내 건설업 부진을 타파하고자 해외 플랜트 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트랙레코드를 쌓기 위해 국내 업체 간에 수주경쟁이 치열해졌다. 낮은 입찰가격에 공사의 설계부터 시공까지 책임지는 설계·구매·시공의 일괄도급방식(EPC)의 수주가 주를 이뤘다. 조선업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중국의 조선업 경쟁력 강화로 국내 상선 부문 수익성이 악화하자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에서 활로를 찾았다. 조선 빅3는 앞다퉈 해양플랜트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조(兆) 단위의 대형 사업은 단숨에 핵심 먹거리가 됐다.

      공사는 진행될수록 문제가 불거졌다.

      국내 건설사들과 조선사들은 자체 설계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설계 또는 제작 중 발주처로부터 설계 변경 요구를 받게 되면 설계 회사와 다시 협의해야 하고 제작은 모두 중단된다. 경우에 따라 철거와 재시공을 반복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주산업 기반 기업들의 회계처리 방식은 논란을 야기한다. 국제회계기준(IFRS) 하에선 공사진행률에 따라 매출을 인식한다. 공사진행률은 예정 원가 대비 실제 원가가 얼마나 투입됐느냐에 따라 산정된다. 예정 원가율을 어떻게 책정하느냐에 따라 매출도 달라지는 구조다. 재시공이 이뤄지면 당초 예상보다 원가율이 올라가게 되고, 부지기수로 역마진이 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확실한 재고자산을 기반으로 매출을 산정하는 제조업에 비해 재무제표 변동성이 크다.

      미청구공사 급증은 수주산업 회계처리에서도 가장 큰 이슈다. 건설사들과 조선사들은 예상보다 불어난 비용을 훗날 발주처에 청구 가능한 '미청구공사'로 분류했다. 미청구공사는 매출로 인식된다. 미청구공사 규모를 어느 정도로 책정할 지에는 회사의 자의적인 판단이 들어간다. 기업들은 미청구공사 항목으로 분류한 비용의 상당 부분을 손실로 떠안았다. 미청구공사가 말 그대로 '청구를 하지 않는 공사'가 아닌, '청구를 할 수 없는 공사'가 되는 순간이다. 경영진들의 모럴헤저드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사 재무담당자는 "수주산업 특성상 수주 여부가 가장 중요한 경영 성적표로 여겨지다 보니 재무적인 문제는 후순위로 밀린다"며 "일단 수주부터 하고 그 다음에 발생하는 문제들은 회계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영진들은 본인의 임기 동안 발생하는 문제들을 덮으려고 하고, 신임 경영진들은 이를 털고 가기 위해 빅배스를 단행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특히 이런 문제는 '오너'가 없는 회사일수록 더 심각하다"라고 덧붙였다.

      대우조선해양이 대표적인 예다. 해양플랜트 수주가 늘어난 2012년을 기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의 미청구공사는 매해 급증했다. 4000억원대를 유지하던 영업이익은 올 들어 적자전환했다.

      시장에선 손실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지만, 대우조선해양은 "분기마다 미리미리 손실을 반영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다"고 했고, 미청구공사에 급증에 대해선 "헤비테일 결제방식으로 회수할 수 있다"고 줄곧 주장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올 2분기에만 4조원 상당의 미청구공사를 한꺼번에 손실로 처리했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계기로 회계 부정에 대한 처벌 규정 및 감사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의 감사가 끝나봐야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지만, 앞으로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선 현재보다 회계부정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과 감사위원회의 전문성 독립성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1년 8개월간의 논의를 거쳐 최근에서야 대우건설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중징계를 결정했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 자문기구인 감리위원회는 지난 11일 대우건설에 20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 정확한 분식 규모와 징계 수위는 오는 26~28일 열릴 예정인 증선위에서최종 확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