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C 트라우마 발목…투자조건만 내세운 두산그룹
입력 2015.09.03 07:00|수정 2015.09.03 07:00
    DICC 문제 재현 우려 발목…투자 조건만 강조하다 밥캣의 성장 스토리도 묻혀
    • 두산그룹과 한화자산운용은 밥캣 프리IPO 프로젝트명을 '머큐리(Mercury)'로 지었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수성(水星)처럼 '핫 딜(Hot Deal)'이 된다는 의미였다. 막상 투자자 모집은 프로젝트명과 정반대였다.

      밥캣의 실적 향상과 안전한 투자구조를 전면에 내걸었지만 두산인프라코어 차이나(DICC) 투자 회수 문제의 그늘은 짙었다. 안정성만 강조하다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는 소홀한 것이 원인이었다.

      ◇ DICC 투자자 분쟁 트라우마 못 넘어

      기관투자자들은 두산그룹이 DICC 문제가 해결되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시장에 손을 내민 점을 문제 삼았다. PEF를 통해 DICC에 투자한 국내 기관은 국민연금과 교직원공제회 등을 비롯해 20여곳에 달한다.

      두산그룹은 2011년 IMM PE와 미래에셋자산운용, 하나대투증권 PEF에 DICC 보통주 지분 20%를 매각해 38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두산그룹 4개사(삼화왕관·SRS코리아·KAI·두산DST) 거래로 만족스러운 수익을 거두던 찰나였다. 중국 시장 성장에 따른 실적 향상도 기대됐다.

      두산그룹은 PEF의 보통주 주식을 우선주로 전환하고 DICC를 지배하는 국내 법인도 설립하기로 했다. 이후 2014년까지 DICC의 기업공개를 하는 데 합의했다. PEF들은 동반매각청구권을 가졌고 두산그룹은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중국 정부의 투자정책이 팽창에서 긴축으로 돌아서며 상황이 급변했다. DICC의 실적은 추락했다. PEF 보유 주식의 우선주 전환도 불발됐고 IPO 역시 불투명해졌다.

      손실 위기를 직감한 PEF들은 두산그룹에 거래 조건 이행을 요청했다. 두산그룹의 태도는 소극적이었다. 우선주 배당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동반매각청구권과 우선매수권을 얘기할 상황이 안 된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양측의 줄다리기는 올해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두산그룹은 국내 기관투자자들 신뢰를 잃어갔다. 자연스레 밥캣 거래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도 증폭됐다. 시장에서 "밥캣홀딩스의 투자 회수 때도 비협조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비관적 시각이 번졌다.

    • ◇밥캣 성장 스토리보다 투자회수 조건 강조에 치중

      두산그룹과 한화운용은 DICC 그림자를 걷어내기 바빴다. DICC와 달리 보통주가 아닌 우선주 투자임을 부각시켰다. 밥캣의 미국·유럽법인을 팔겠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하겠다고 나섰다. 매각을 하게 되면 회사 측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프리IPO로 투자자가 얻는 이점과 밥캣의 성장 잠재력이 주목 받지 못했다. 국민연금과 교원공제회 마저 투자의지를 접으며 거래 열기는 사그라졌다.

      일부 기관투자자들은 "밥캣홀딩스 자체로는 투자 가치가 충분하지만 두산그룹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투자가 망설여진다", "손실이 나면 자산을 매각하겠다는 내용만 강조해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두산그룹까지 발벗고 나서 투자 유치를 도왔지만 역부족이었다. 블라인드(Blind) 펀드 및 외국계 투자자의 공동 투자도 쉽지 않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거래 초반 한화운용이 모은 4200억원가량의 금액 중 1500억원은 ㈜두산에서 투자자를 직접 연결해줘서 채울 수 있었다"면서 "산업은행에 손을 내밀기 전까지 6000억원 모으기도 힘겨워했다"고 전했다.

      밥캣 프리IPO로 두산그룹은 투자자들이 더 이상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과거 PEF의 도움으로 대규모 그룹 구조조정을 수월하게 끝냈지만 지금은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한 기관투자자는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와 두산캐피탈 투자회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서 "두산그룹에 대한 투자한도를 늘리기도 어려워 아예 투자를 꺼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투자가들의 역량이 크게 높아지기도 했다. 외부 운용사의 자금 운용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프로젝트 형태에 거래에서는 투자자들이 나서 구조를 만들기도 한다. 운용사에 대한 관리 보수의 하락은 이런 추세를 반영한다.

      다른 관계자는 "시장의 모든 투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관투자가들이 운용사만 믿고 덜컥 투자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