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홈플러스 투자 결정, '관행 파괴' vs '최악의 판단'?
입력 2015.09.07 07:00|수정 2015.09.08 16:30
    '형평성' 논란과 '먹튀'논란 동시 발발
    공공성 연기금 성격ㆍ테스코 배당이 화근
    "사행산업이라 오비맥주도 투자안했는데"
    결정에 상당한 부담…기록 남을 전망
    • 국민연금의 홈플러스 투자 결정이 논란거리가 됐다. 처음에는 '형평성' 우려가 나왔고, 나중에는 '먹튀논란'으로 번졌다. 투자업계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남다르다. 시장에 주는 시그널이 큰 탓이다.

      # 이슈1 : 코인베스터(Co-Investor) 증가에 대한 우려

      영국에서 발간되는 'PEI'(Private Equity International)란 사모펀드 전문지가 있다. 50개 PE 리스트 (PEI 50)를 선정하는 등 권위있는 미디어로 꼽힌다. 여기서 지난 8월 캐나다 퀘백주 연기금(CDPQ) 대체투자 담당자와 흥미로운 인터뷰를 실었다.

      "공동투자 방식이 나중에 PE산업의 불쾌한 악몽으로 떠오를지 모른다" (co-investment may come back to haunt industry)라는 내용이다.

      대형 연기금들은 펀드 운용사를 골라 돈을 많이 맡긴다. 사모펀드도 그 중 하나다. 다만 맡긴 돈을 어디에 투자할지는 운용사 권한이고, '쩐주'인 연기금은 이를 모른다. '블라인드'(Blind) 펀드란 말도 그래서 생겼다.

      이렇게 열심히 여기저기 돈을 맡겨도 굴려야할 돈이 워낙 많아 연기금들은 직접 투자대상도 찾는다. 하지만 마땅치 않다. 이때 과거에 투자금을 받았던 운용사가 연기금을 찾아 "내가 당신이 준 돈으로 이런이런 회사를 발굴해 투자하는데 혹시 추가로 같이 투자하실터?"라고 물어오면 반갑다. 이게 이른바 코인베스터 투자다.

      국내 PEF 가운데 이를 가장 많이 활용한 곳이 MBK파트너스다. 캐나다 연기금들에서 투자를 받아온 MBK는 큰 M&A때마다 이들을 다시 초청했다. 우리은행 인수에 나설때도 그랬고, 1.8조원대 ING생명때는 국내ㆍ해외 코인베스터들을 초청해 여러 프로젝트성 펀드를 만들었다.

      이걸 지켜본 국내 연기금들은 PEF 운용사에게 "당신들도 이런 기회를 좀 만들어보라"고 주문 했다. IMM PE가 티브로드 2대주주로 투자할 때도 이런 구조를 짰다. 지금 웬만한 국내 PEF 운용사들 대부분은 이런 그림을 그린다. 역시 국민연금이 제안을 가장 많이 받는다. 일단 국민연금이 코인베스터로만 나서주면 수천억원~조단위 딜도 뚝딱 가능하다.

      PEI 인터뷰에는 "어떤 기관들은 코인베스트 투자를 하면서도 이를 전담할 팀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며 "그 사람들은 '초대형 PEF가 알아서 만든 딜이니까 틀림없이 안전한 거래일거야'라고 믿고 본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투자 사이클이 변하기라도 하면 이런 투자들이 어찌될지 모른다는 지적도 있다. 인터뷰를 한 CDPQ는 MBK파트너스 펀드 주요 투자자다.

      국민연금의 이번 홈플러스 투자도 배경은 비슷하다. 국민연금은 MBK와 함께 ING생명, 코웨이 등 다수의 거래에서 코인베스트로 참여했다. 코웨이 때는 짭잘한 수익도 냈다.

      # 이슈 2: 유달리 홈플러스 투자결정이 시끄러웠던 이유

      그럼에도 불구, 유닥 홈플러스 투자에는 말이 많았다. 이유는 2가지다.

      첫째는 입찰 시작 전 국민연금이 먼저 '편'을 들어줬다는 점이다.

      국내 투자업계에서 국민연금의 위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자금력ㆍ공신력ㆍ안정성을 다 갖췄다. 본입찰 전에 혹시 "국민연금을 한 편으로 끌여들었어요"라는 후보가 있으면 '게임은 끝났다'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다.

      이로 인해 벌어진 사건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대우조선해양 매각 당시다. 이때 포스코, GS, 한화, 두산 등 내로라하는 쟁쟁한 대기업이 대우조선을 사겠다고 앞다퉈 나섰다.

      거래 사이즈만 수조원대. 국내 자금시장 규모는 뻔하고, 인수하겠다고 나선 곳은 넘치니 시중에서 돈 모으기가 만만치 않았다. 국민연금만 '우군'으로 만든다면 엄청난 메리트가 생길 터였다. 대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국민연금을 찾아가 '같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자'고 설득했다.

      국민연금은 이를 기회로 삼아 여러 까다로운 투자조건을 제시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후보들이 '형평성 논란'을 제기했다. 왜 공공기금인 국민연금이 미리 특정기업 편을 드느냐, 이게 옳은 일이냐라고 반박했다. 신문지상에도 비판이 실렸다.

      결국 국민연금은 본입찰 전에 특정 후보와 컨소시엄을 짜는 방안을 철회했다.

      이후 국민연금이 대형 M&A에서 미리 어느 회사와 컨소시엄을 짜는 일은 전무하다시피했다. '국민연금은 인수자가 확정되면 그때부터 같이 투자할지를 논의한다'가 불문율이 됐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이 원칙이 홈플러스 M&A때 깨졌다. 입찰전 미리 MBK파트너스와 손을 잡았다. 처음 이 소식을 접한 투자업계 관계자들 가운데는 "설마 그럴리가?"라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 한차례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것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조용했다. MBK 경쟁사들인 KKR, 어피니티가 해외 PEF여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분석도 있었다.

      신선하다는 시각도 나왔다. 항상 외풍에 시달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이번에는 눈치보지 않고 수익성을 챙기며 투자대상을 입도선매한다는 평가였다.

      국내 연기금들은 M&A에서 우선주ㆍ전환사채(CB)같은 메자닌 투자를 선호한다. 안정성 보강되어 있어서다. 그래서 인수자가 확정되면 연기금들 간에 메자닌 '물량' 확보 싸움이 심하다.

      이럴 바엔 미리 특정후보와 손을 잡아 메자닌 물량을 많이 확보하는게 나을수도 있다. 이게 이번 국민연금의 홈플러스 투자결정 배경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홈플러스 인수를 위한 투자목적회사(SPC)에 전환상환우선주(RCPS)로 5000~6000억 정도를 검토했다. 최초에는 최대 1조원(에쿼티 투자 포함)을 생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침 실무진도 바뀌었다. 지난 7월초 국민연금 대체투자실에 '깜짝 인사'바람이 불었다. 과거 대체투자실에 오래 근무한 인원들이 많이 빠지고 새 멤버가 다수 영입됐다.  이번 기회에 과감하면서 국민연금 투자독립성을 위한 시도를 했다는 예상도 나왔다.

      # 이슈 3 : 유증후 배당? 결국 목적은  '한국에서 세금 적게 내기'

      형평성 논란이 사그라든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엉뚱한(?) 불똥이 튀었다. 국민연금이 '먹튀논란'의 배후자로 지목받았다는 점이다.

      홈플러스 M&A 경쟁이 치열해지며 테스코가 '떼돈'을 벌것이라는 게 예상됐다. 홈플러스 새 주인에 관심이 모였지만 수년간 한국에서 별 신경 쓰지 않고 장사하면서 막판에 수조원을 챙겨가는 테스코가 가장 행복할 상황이었다.

      여기까지만해도 자존심(?)이 상하는데 테스코가 '차입형 배당'을 추진한 것이 알려지며 논란이 커졌다.

      홈플러스에 남은 현금은 미처분 이익잉여금 1.5조원 가량.(2015.2월말 기준) 이의 대부분을 배당으로 빼가면 홈플러스 부채비율은 2.5배 이상 급등, 300%까지 치솟는다. 그게 아니라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데 그래도 결과는 거의 동일하다.

      당초 테스코는 은행들로부터 브릿지론을 활용, 홈플러스에서 배당을 먼저 받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홈플러스 기업가치 파괴와 먹튀 논란이 예상되자 방향을 바꿔 "유증후 배당'이라는 방안이 마련됐다. '증자하고 그 돈을 배당으로 빼가니 문제없다'라는 논리가 나왔다.

      문제는 테스코가 굳이 '선 배당'을 고수하는 이유다. 결국 어떤식으로 배당을 하든간에 한국에 최대한 세금을 내지 않고 빠르게 빠져 나가겠다는게 목적이다.  어차피 테스코는 매각 이후에는 한국과 인연을 남기지 않을 글로벌 기업이다. 뒤돌아보지 않고 챙길만큼 최대한 챙겨야 할 상황이다.

      이런 테스코를 위해 제공될 배당재원은 홈플러스를 인수 투자자들이 내놓는다.  결국 국민연금.  그러니 "국민 노후자금으로 먹튀(?)회사에 돈을 안긴다"라는 비판이 나오게 된 셈이다.

      국민연금이 MBK파트너스와 손을 잡을 당시 이런 논란까지 예측했을지는 미지수다.

      #이슈 4 : '사행산업'이라며 OB맥주 투자도 포기했던 국민연금 '공공성'은?

      국민연금은 자금을 잘 굴려 수익성을 높이는게 중요한 기관이다. 국민연금의 홈플러스 투자금이 당장 손해를 본 것도 아니고, MBK파트너스가 더 비싼 가격에 홈플러스를 매각하거나 하면 이익을 남길 수 있다. 결국 국민 노후자금을 늘리는 일이 된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표방한 '공공성'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마련하고 국민연금 투자지침에 해당되는 '국민연기금 운용지침'은 기금운용의 원칙(제4조) 5가지를 표방하고 있다. 이에 규정된 것이 '수익성-안정성'과 함께 '공공성'이다.

      "국민연금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이고, 기금 적립규모가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므로 국가경제 및 국내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하여 운용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이 공공성 논란이 불거진 사례가 국민연금의 '사행산업'(죄악산업) 투자 철회다. 즉 국민연금은 공공기금이어서 '술, 담배, 도박, 무기 등 이른바 죄악시 되고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과거 유럽의 주요 기금이나 사회책임투자 펀드들이 표방한 '윤리적 투자'의 일부다.

      국민연금도 이 원칙을 고수했다. 다름 아닌, 지난 2009년 OB맥주 M&A때다.

      인베브가 OB맥주를 매물로 내놓았고 롯데를 비롯, KKR이나 MBK파트너스 뿐만 아니라 국내 여러 펀드들도 국민연금에 '같이 투자하자'고 나섰다.

      당시 국민연금은 고심 끝에 "오비맥주 인수에 대한 투자를 아예 접겠다"고 방침을 정했다. 이유는 "국민연금이 술이나 담배 같은 사행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공공성에 어긋난다"는 원칙이었다. 이후 관련 논의는 쏙 들어갔다.

      이 판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알려진대로 이 때의OB맥주 투자로 KKR-어피니티 컨소시엄은 5년 만에 4조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차익을 거뒀다. 어디까지나 '가정법'이지만, 만일 그때 국민연금이 참여할 기회가 잇었다면 이 수익은 국민연금 몫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행산업에 투자해 떼돈을 벌었다고 '국민연금이 잘했다'라는 평가만 받았을지는 미지수다.

      즉 "국민연금이 수조원의 이익을 남길 투자기회를 버렸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수조원의 이익을 벌겠다고 국민 건강에 해를 끼칠 술, 담배 등에 국민 노후자금이 투자되는 것보다는 윤리적인 투자가이드 라인을 지키는 게 옳다"라고 평가할 수 있다.

      같은 논리라면 홈플러스 투자에 대한 평가도 애매(?)해진다.

      "공공성을 앞세워 엄청난 평가이익이 기대되는 투자도 안한 국민연금이 이제와서 한국에 세금을 안내겠다는 게 목적인 곳에 투자하느냐"라는 비판이 가능해진다. 물론 "그런 투자기회도 과감하게 챙겨야 한다"는 반박도 가능하다.

      사실 당시와 지금은 국민연금이란 주체만 동일하다. 정권도, 국민연금 이사장이나 기금운용본부장, 실무진과 시장상황도 바뀌었다. 한결같기를 요구하기에는 무리한 부분도 있다. 어쨌든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에서 뚜렷한 원칙이나 일관성이 항상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 이슈5 : 국민연금의 이번 '선택'은 기록될만한 사례

      투자업계에서 궁금해 하는 점이 하나 있다. 국민연금이 MBK파트너스와 공동투자 과정에서 어느 수준의 '확약서' 또는 '계약서'를 제출했을까하는 점이다.

      영국 테스코는 시끄러운 일을 겪지 않고, 최대한 많은 돈을 받고 신속하고 확실하게 한국을 떠나고 싶어한다. 그래서 홈플러스 매각 본입찰에서도 인수후보들의 자금증빙에 대해 '깐깐한 요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쉽게 말해 "은행이든 투자자든 매매계약서에 곧바로 서명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해놓으라"는 것. MBK가 여기서 우위에 섰다는 언급도 있다.

      다른 기관들은 그렇다고 해도, 국민연금도 정말 그만한 '계약서' 수준의 서류를 같이 제출했을까가 궁금하다는 의미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번 국민연금의 선택은 과거 관행을 깨뜨린 측면이 많다. 그래서 선택에 대한 부담과 압박감도 클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다만 시기로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불릴 만하다. 거래 시기가 딱 국정감사와 겹쳤고, 비판의 테마조차 국회가 가장 자주 입에 거론한 '먹튀' 이슈다.

      투자를 그대로 진행하면 향후 논란을 다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고 투자결정을 철회한다면 '한국 연기금의 현실'을 고스란히 시장에 보여주는 시그널을 남긴다. 진퇴양난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 책임은 고스란히 국민연금 몫이 된다. 어떤 선택을 두고두고 기록에 남을 만한 사례가 된다.

      어쩌면 바로 이런 어려움 때문에 '불문율' , 즉 '국민연금은 미리 투자대상을 정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이 나왔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오랫동안 시달린(?)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의 산물이라는 것. 주무부처와 감사원, 국회, 시민단체 등 숱한 외부기관의 등쌀에 휘둘리고, 칭찬보다는 욕먹는 일이 다반사인 국민연금의 한계가 발현됐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