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금지 가처분도 항고 5주 후에야 이유서 제출
'이제부서 시작' 바짝 긴장하던 물산, 한숨 돌리는 모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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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주주총회가 끝난 지 50일이 지났다. 합병 법인은 무사히 출범했고, "모든 방안을 검토중"이라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은 침묵을 지켰다.
엘리엇으로 인해 촉발된 이슈들은 대부분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도화선이 남아있긴 하지만 삼성물산의 긴장감은 전에 비해 많이 희석된 상황이다.
◇ 해외소송 등 가능성 제기됐지만 '조용'
엘리엇은 지난달 6일 보유 지분 4.95%에 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삼성물산이 제시한 가격엔 합의하지 않았다. 엘리엇은 6일까지 법원에 조정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주말을 제외하면 사실상 마지막날인 4일까지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
법적 분쟁도 제자리 걸음이다. 기존 가처분신청은 큰 의미가 없어졌고, 신규 소송은 제기되지 않았다. 엘리엇은 지난 7월 주주총회 결의금지 기각 판결에 대해 즉각 대법원에 항고했지만, 항고 이유서는 5주가 지난 8월 말에야 제출했다. 이후 이렇다할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KCC로의 자사주 매각 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해서는 2심 판결 후 항고하지 않았다.
엘리엇은 지난 6월 지분 일부를 주식예탁증서(DR)로 바꾸며 해외(영국)에서의 소송전을 염두에 둔 듯 했다. 지난달 25일 런던거래소에 상장된 삼성물산 DR이 상장폐지됐지만, 엘리엇은 이에 대응하지 않았다.
물론 DR이 상장폐지되기전 합병 결의가 있었기 때문에 엘리엇은 상장 여부와 관계없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다만 이미 상장폐지가 완료된데다 합병등기까지 끝나 해외에서 소송을 건다 해도 큰 의미는 없을 거란 게 삼성물산측의 판단이다.
삼성SDI·삼성화재 등 삼성물산 지분을 보유한 삼성그룹 계열사로의 전선 확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엘리엇은 지난 7월말 두 회사의 실질주주증명서를 반납한 이후 재발급을 받지 않았다. 배임 등 주주대표소송을 진행하려면 실질주주증명서가 있어야 한다.
◇ 본안소송 등 불씨 남아있지만…관심·행동력 떨어졌나
엘리엇은 "주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선택지를 열어두고 있다"는 기존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엘리엇 국내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주주총회 이후 공식 입장을 다시 점검했는데 '변함이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며 "엘리엇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엘리엇이 주주총회에서 패배한 이후 삼성에 신경쓸 여유가 줄어든 게 아니겠느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엘리엇은 현재 삼성물산 외에도 미국 시트릭스시스템즈, 홍콩 동아은행 등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엘리엇은 최근 아르헨티나 국채 보상 관련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의 자산을 압류하겠다는 소송에서 패하기도 했다.
삼성물산은 합병 주주총회 이후에도 '엘리엇의 공격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한동안 비상 체제를 유지했다. 법무팀을 중심으로 후속 대응을 세밀히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엘리엇이 두 달 가까이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며 일단 한숨 돌리는 모양새다.
합병법인이 출범한 지금 엘리엇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합병무효확인 본안소송이나 전 삼성물산 경영진에 대한 배임소송 정도가 꼽힌다. 지난달 27일 주식매수청구 대금을 수령해가지 않은 부분도 불씨로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주주총회에서 배당 확대 등 주주제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여전하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여전히 소송을 걸어올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대응을 고민하고 있다"며 "엘리엇의 행동력이 이전보다 떨어져 보이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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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5년 09월 06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