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암코 번복 사태, 누가 이득을 보았나 (Qui Bono)
입력 2015.09.24 10:30|수정 2016.03.06 12:08
    • 지난 17일 금융위원회 발표는 정말 '느닷없이'라는 표현이 붙을만 했다.

      수년간 공들였고 이제 8부 능선까지 넘긴 유암코(연합자산관리) 경영권 매각이 며칠 만에 파기됐다. 금융당국 수장이 불과 며칠 전까지 공언했던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은 보도자료 하나와 함께 무산됐다.

      도대체 그 며칠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정확한 '사건의 재구성'은 어렵다. 다만 상식 선에서, 이번 사태가 남긴 이해관계자들의 '득실'정도는 따져볼 수 있다.

      이른바 Qui Bono? (To Whose benefit?)

      # 금융당국은?

      금융위원회는 순식간에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게 됐다.

      독립된 기업구조조정 회사 설립은 임종룡 위원장과 금융위가 이끄는 방안이었다. '기관 신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세부안을 짰다. 추가 출자를 부담해야 하는 은행의 반발은 예상됐던 바였다. "유암코를 재활용하자"는 방안도 일찌감치 거론됐으나 한계가 있다는 판단 아래 뒤로 밀렸다.

      그래서 현실적인 한계와 당위성을 따져 '신설'을 밀어붙였다. 은행들도 이 방향대로 이끌어갔다. 이달 11일에는 공청회까지 열어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 내부조직도 논의했다. 임 위원장은 기자들 앞에서 몇차례'신설'을 기정사실화 했다.

      그러다가 하루 만에 정책이 바뀌었다.

      금융위 해명을 종합하면 "비판이 두려워서 정책 바꾸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라는 취지다.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금융위원회의 정책 기획력이 "해보니까 이 산이 아니어서 갑자기 방향을 바꿉니다"라는 수준에 불과함을 스스로 자인한 것이 된다. 정말 신설기구 마련이 대안이 아니었다면 미리 예측했어야 했고, 미리 재검토를 했어야 했다. 공청회를 열고, 당국의 수장이 공식선상에서 이를 기정사실화 하는 일도 없었어야 했다. 시장에 혼선은 주지말았어야 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갈길이 먼데 금융위가 3개월을 그냥 허비했다"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이 시장을 이끌어 나가려면 '신뢰'와 '공신력'이 필수다. 이 점만 놓고보면 이번 사태로 금융위 당국자들은 많은 것을 잃었다.

      정말 우리 금융위의 정책입안 능력이 이것 밖에 안되는 것이었을까. 약간의 의구심도 남는다.

      # 유암코 경영진은?

      결과론이지만 최대 수혜자가 됐다.

      금융위가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를 신설한다고 언급할 당시. 금융업계의 다소 속물적인(?) 관심사 중 하나는 "새 회사의 수장으로 누가 갈것이냐"였다.

      그도 그럴것이 시중은행 상당수가 출자하는 회사다. 구조조정의 첨병이라는 지위를 금융위가 보증한 회사이기도 하다. 이 회사의 수장은 '경력'면에서든, '위상'면에서든 상당한 메리트를 누릴 것이 예상됐다. '구직자'가 많은 상황에서 '좋은 취직자리'가 났다면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이치다.

      같은 시각. 이성규 대표를 비롯한 유암코 경영진들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볼만했다. 회사 경영권이 매각되면 2009년 설립 당시부터 '대표'를 맡아온 이성규 사장이나 다른 임원들이 자리를 보존할지 미지수였다.

      일단 인수후보들 상당수가 사모펀드(PEF)들이었다. 이들은 국내 1위 부실채권(NPL) 전문회사 유암코를 사들인후 새로운 활용방안을 그리고 있을 터였다. 기존 경영진을 재임용할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았다.

      만약 이성규 사장 등이 재임용 된다면 두 가지 이유가 유력하다. 유암코 경영진이 특정 인수후보와 미리 공감을 나누고 함께 유암코 인수를 추진한다든지, 그게 아니면 새 주인이 기존 유암코 경영진의 능력을 높이 사고 신뢰해 재임용하든지.  어쨌든 불확실성이 잔존했다.

      그런데 갑자기 정책이 번복됐다. 공식 언급은 없었으나 이성규 대표 등이 그대로 유암코 사장 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유임이 확정된다면 유암코 경영진은 퇴사가 우려되던 상황에서 거꾸로 직업을 유지하고, 그 직장은 더 커지고 권한마저 늘어나는 '홍복'을 누리게 된다.

      # 시중은행들은?

      이미 수차례 신설기구 설립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시어머니'로 불리는 금융당국이 신설과 출자로 방향을 잡았고 이에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은행' 또는 '은행산업'이란  차원에서는 당장 판단하기 어려워도, 일단 '은행원'들은 우선 예스(Yes)라고 할 상황이 됐다.

      구조조정 전문회사 '신설'이 논의될 당시. 여기에 담길 업종들은 시장에서도 쉽게 예측되고 거론됐다. '조선, 철강, 건설 등' . 지금 위태위태하다는 부문들이다.

      신설회사는 신한, 국민 등 8개 은행과 자산관리공사(캠코)가 모여서 1조원을 출자하고 추가로 2조원을 대출하도록 계획돼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신설될 회사가 한계부문 채권을 사들인 후 장기적으로 수익을 낼지 미지수.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1조원의 신설회사에 대한 은행 출자금이 평가손을 입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유암코는 얘기가 다르다. 6곳의 주주은행들이 1조원을 출자하기로 했는데 4860억원만 출자됐고 아직 여력이 5000억원이 남았다. 달리 말해 신규출자로 우려되는 예상손실이 월등히 적고, 추가출자 부담은 확 줄어든다. 어쨌든 은행원들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조치다. 본인의 서명이 담긴, 걱정거리가 될만한 출자 건이 없어졌으니까.

      # 유암코를 사려고 했던 투자회사들은?

      당국의 '오락가락'하는 정책에 수억원의 실사비용은 물론이거니와, 여기에 투입된 리소스를 전부 날리게 됐다.

      보통 M&A거래가 진행될 당시. 비밀유지계약(NDA)등을 체결하면서 쓰는 서류에는 'Disclaimer'라는 항목이 있다. 이른바 '권리포기 각서' 비슷한 내용이다. "매각자의 판단에 따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고, 행여 매각과정에서 어떤 중요 변화가 생겨도 수용하겠다"는 내용 등이다.

      이를 근거로 삼으면 이번 매각철회로 법적인 분쟁 등을 피해갈 소지는 생긴다. 그러니 인수후보들이 억울하다고 해도 어디 하소연하기도 어렵다.

      금융권 실정을 잘 알고 있는 국내 투자자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금 한국의 금융시장이 이러니까"라고 위안이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유암코 매각을 듣고 찾아온 해외 투자자들은 몹시 당황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차후에 금융위나 정부가 "어떤 공공기관을 매물로 내놓을테니 해외 투자자들은 참석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제안한다면? 중동이 됐든, 유럽이 됐든 혹은 북미권의 어느 대형 기관투자자가 됐든 간에 다음과 같이 물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가 무언가를 팔겠다고 '선언'했는데, 정부를 믿어도 됩니까?" 혹은 "중간에 또 마음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다면 그때 우리는 검토하겠습니다"라고.

      "믿어보시라"라고 수차례 설명해본들 "유암코 매각할때는 왜?"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해진다. 이런 딜에 참여하게 될 글로벌 IB들은 해외기관들이 "한국에서는 왜 이런 일이 생기는 지 설명하고 문서화해달라"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상황을 정당화(Justification)할지? "한국 정부는 원래 변덕이 죽끓듯 한다"라고?

      #구조조정 기업 관리와 금융시장 안정화는?

      가장 중요한 점이다. 따져보면 유암코가 이 역할을 맡느냐, 혹은 신설기구를 세워 맡기느냐 따위는 전부 부수적인 요인이다. 정책 목표만 제대로 달성할 수 있다면 유암코가 아닌, 다른 어느 기구가 역할을 맡든지, 그리고 어느 은행이나 회사가 이익을 보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유암코이기 때문에'  우려되는 점들은 있다. 일부 언론이 꼼꼼하게 지적한대로 "유암코의 신규 사업부가 리스크 통제장치를 제대로 갖출 수 있느냐"부터 거론될 수 있다. 새 조직을 만들 때는 이런 장치를 갖추기가 유리하지만, 기존 의사결정기구가 이미 가동 중인 회사에서는 조직구조와 체계를 뒤흔들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어쩌면 이런 점 때문에 금융위가 '유암코 재활용'이 아닌, '신설'을 밀어붙인 것 아닌가 유추해 볼 수도 있다.

      그럼 거꾸로 '유암코이기 때문에' 갖는 장점은?

      이번 번복에 대한 금융위의 설명 가운데는 "조직의 신규설립 시간이나 인력채용 비용을 줄이고 기존 구조조정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은행들의 건의를 수용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언제부터 당국이 '확실한 정책목표 달성'이 아닌, '조직설립의 편리함'을 선택하는 편의주의적 사고로 정책 향방을 결정했는지 의문이다.

      아울러 주주은행들의 신용도를 바탕으로 40%대 점유율을 유지한 유암코가 '구조조정 전문조직'이라고 평가받을만한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어찌되었거나 정부는 방향을 틀었다. 이제는 '유암코가 선장을 맡으라"라는 결정이 났다.

      유암코 내부에 조직을 어떻게 운용할지, 자금가용력을 얼마나 활용할지, 전문 인력을 어떻게 충원할지, 정책목표를 어느 수준으로 잡을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유암코의 역할론에 벌써부터 회의론을 제기하기도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 지금의 유암코 번복사태는 여러 궁금증을 남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