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완성차 M&A 활발…현대차, 건설사 인수·현대제철 확장 집중
중국·인도,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 완성차 회사 집중 인수
현대건설·한전부지 인수에 15조원 투입…2008~2014년 매각된 글로벌 주요 완성차 기업 거래액보다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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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기업 인수·합병(M&A)은 기업의 성장과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자리 잡았다. M&A를 위한 상시 전략 조직을 갖추고 있고 투자은행(IB)들과 협업 체제도 구축하고 있다. M&A에 성공한 기업 혹은 실패를 반면 교사로 삼은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고,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뒷걸음질 쳤다. 인베스트조선은 주요 국내 대기업의 M&A 사례와 전략, 통합 과정, 향후 전략과 과제 등을 종합적으로 짚어봤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완성한 수직계열화에도 빈틈은 있다.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인수·합병(M&A)에는 시큰둥했고 자동차 사업과 시너지가 적은 부문에 관심을 둔 것이 한계점으로 지목된다. 최근 판매량 부진과 주가 하락이 겹치며 시장의 아쉬움은 더욱 커졌다.
1990년대 이후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는 M&A가 활발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요지부동한 현대차와 달리 업계 상위권 업체인 폭스바겐과 르노-닛산, 피아트 등은 M&A에 나섰고 중국과 인도 업체들도 매물로 나온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을 흡수하며 사세를 키웠다.
◇ 글로벌 완성차 M&A 무관심…프리미엄 브랜드 인수 기회 놓쳐
현대차는 2000년대 중반 불황의 늪에서도 외형과 실적이 모두 상승세였다. 그만큼 M&A 여력도 받쳐줬지만 프리미엄 완성차 브랜드를 손에 넣으려는 적극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다른 자동차 회사들은 분주했다. 유럽 최대 자동차업체인 폭스바겐은 치열한 지분 경쟁 끝에 포르쉐를 흡수했다. 프랑스 르노와 닛산은 일찌감치 자본제휴로 상위권 업체로 발돋움 했고 최근에는 합작관계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이탈리아 피아트 역시 미국 3대 자동차 회사인 크라이슬러와 페라리까지 끌어들였다.
인도와 중국 업체들도 적극적이다. 인도 타타그룹은 포드가 갖고 있던 고급차 브랜드를 재규어-랜드로버를 사들였다. 마힌드라는 쌍용자동차와 푸조 모터사이클, 스웨덴 사브 등을 연달아 인수했다. 중국 둥펑자동차는 푸조-시트로엥 지분 14%를 확보했고 중국 지리자동차도 볼보를 손에 쥐었다.
현대차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장할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유럽 회사들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성장했지만 '대중적인 자동차'에 불과했다. 이는 국내뿐 아니라 소득 수준이 높아진 중국 동부지역에서 현대차 판매량이 밀리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더 이상 시장에 나올 만한 프리미엄 완성차 업체도 드물다. 영화 007시리즈의 '본드 카'로 잘 알려진 영국 애스턴 마틴 정도가 전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재규어-랜드로버 매각 때 현대차가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됐지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면서 "전기차를 비롯해 수소연료 전기 개발은 글로벌 업체간 협력이 많이 진행됐지만 현대차는 자체개발에 몰두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에 아우디 같은 브랜드가 없어 아쉽다"면서 "제네시스처럼 차종을 고급화한다 해도 브랜드 이미지가 고급스럽지 않다"고 했다. 이어 "고급 자동차나 레이싱카 업체를 가져오면 기술력도 키울 수 있는데 이 기회조차 놓쳤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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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한전 부지 인수와 맞바꾼 '15조원' 실탄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재편이 한창이었지만 현대건설 인수와 철강업 확장에 집중했다. 최근에는 한국전력 부지 매입에 10조원을 배팅했다. 현대건설과 한전 부지 거래에 쏟은 금액만 15조원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은 2010년 현대건설 인수 경쟁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다. 범(凡)현대그룹의 정통성을 두고 현대그룹과 맞붙었다. 최대주주였던 외환은행이 현대그룹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자 외환은행 실무자를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법인명의의 외환은행 구좌까지 폐쇄하며 현대건설 인수에 집착했다.
2011년 1월 현대차그룹이 최종 승리했다. 매각 결정 후 1년여 간의 치열한 경쟁과 우여곡절 끝에 거래가 끝났다. 인수 금액은 약 5조원에 달했다.
신성장 동력 발굴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우호적인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건설과 자동차 생산·판매 사업이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인수 후 5년이 흘렀지만 현대차그룹과 현대건설의 시너지 효과는 미미하다. 당시 건설업을 미래 핵심 성장 축으로 삼고 2020년까지 현대건설에 10조원을 투자하고 수주 120조, 매출 55조원의 회사로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내놨다.
올 상반기 현대건설은 8조7587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국내외 수주 규모는 3조3206억원을 기록했지만 5년 내 목표 달성까지는 요원하다.
현대건설 인수와 맞물려 그룹은 철강사업 강화에 여념이 없었다. 제 1고로(2010년)와 제 2고로(2011년)가 상업생산을 시작했고 2013년 3번째 고로가 완공됐다. 여기에 약 10조원의 대규모 자금의 투입됐다.
수직계열화는 차체 경량화와 연비 개선에는 딜레마라는 평가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고로투자에만 10조원을 들인 탓에 현대제철의 철강 강판 외 차체 개발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알루미늄 강판 등 신소재 개발·채택에 나서는 추세다.
지난해 한국전력 부지 매입도 여전히 논란 거리다. 10조원을 웃도는 투자 결정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전 부지에 현금을 묶어두기 보다 M&A나 기술 개발 등 다방면에 활용했어야 한다는 의견이 끊이지 않는다.
부지 매입 결정 이후 현대차그룹의 상황은 악화일로다. 자동차 판매량이 저조했고 중국과 미국 시장에서도 주춤하다. 투자 기대감은 떨어졌고 주가도 연일 하락세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대건설 인수 당시에도 한전 부지 매입 때처럼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발이 심했다"면서 "현대차그룹은 대형 자동차 M&A나 경쟁사를 압도할 기술개발 등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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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5년 08월 28일 15:19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