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업 간 '불신의 벽'도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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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구조조정의 파도가 조선업계를 넘어 이제 해운업계로 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급조되고 실효성 논란이 큰 설익은 정책들만 거론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늑장대처, 낮은 업종 이해도, 방향성 상실과 미숙함을 탓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베스트조선은 국내 해운업계가 처한 구조적인 문제점, 적절한 대처 방안에 대해 진단한다.
정부와 금융권이 국내 대형선사 지원에 미적거린 이유 중 하나는 그만큼 선사 자체의 경쟁력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정부 지원금이 부족했고 금융권과도 손발이 맞지 않았지만 동시에 해운사 자체의 구조적 문제점들도 꾸준히 언급돼왔다.
한진해운·현대상선은 최적의 선박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내 선사와 조선사 간의 불신의 벽이 높아 상생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 "초기 선박비용 아까워"…선박 포트폴리오 잘못 구성
한진해운·현대상선이 경쟁력을 잃은 이유로는 적절한 선박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점이 지목됐다. 컨테이너선이 주력인 한진해운은 벌크선 시황이 좋아지자 벌크선 매입에 열을 올렸다. 현대상선의 경우 선박 포트폴리오를 잘 갖춘 시점에 고가 용선에 의해 발목이 잡혔다.
해운업 전문가는 "시황이 좋을 때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가져갈 지에 대한 고민이 적었다"라며 "호황기에 어느 선박을 경쟁력 있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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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관계자 또한 "글로벌 상위 선사들을 보면 선박 가격이 정점에 오르기 전에 비교적 저렴하게 선박을 잡아놓았다"라며 "해운업이 약한 나라들은 그 뒤에서야 선박 확보에 나서 높은 가격에 매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만의 에버그린사는 해운업 호황기인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신규 선박발주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세계 2위에서 5위까지 밀려났다. 이후 2010년 100척에 달하는 최대 규모의 신규 발주를 통해 현재는 세계 4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도 불황기에 충분한 현금을 유지하는 재무정책, 호황기보다 30%까지 낮은 가격에 선박을 발주하는 선박 운영정책을 추진했다.
반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2011년 이후 신규 발주(자사선)를 한 건도 못했다. 올해 국내 해운업 전체 발주 규모는 올초 전망치인 3조원에 3분의 1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해운사의 경쟁력은 영업력과 배를 얼마나 합리적인 가격에 확보해놓았느냐로 좌우된다"며 "선박비용은 감가상각이 되면서 원가경쟁력으로 이어지는데, 감가상각이 적으면 운임료를 깎을 수 있어 결국 영업력도 강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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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현대상선은 장기용선계약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 수익구조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올 6월말 기준으로 한진해운이 장기용선계약으로 운항하고 있는 선박 수는 컨테이너선 60척과 벌크선 38척이다. 자사선의 경우 컨테이너선 39척, 벌크선 28척 수준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모두 운송 원가 경쟁력을 못 갖췄다는 측면에서 영업력과 전략의 문제도 컸던 것"이라고 언급했다.
◇ 국내 조선사-선사 간의 보이지 않는 '불신의 벽'
조선업과 해운업 간의 높아진 '불신의 벽'도 아쉬운 대목이다. 그간 국내 조선사와 선사 간의 상생 움직임은 찾기가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국내 해운사들은 "외국 선사들 요구에는 잘 맞춰주는 국내 조선사들이 국내 선사들에는 까다롭다"고 불만이다. 반면 국내 조선사들은 "외국 선사들은 합리적으로 발주하는데 반해 국내 선사들은 요구사항이 지나치다"는 불평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과거 해운업계 원로모임에서 한 관계자가 한국 조선사가 만드는 선박의 자산가치(품질)이 좋으니 5~10%의 가격 차가 나더라도 (중국이 아닌) 한국 조선사에 주문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자 모두 난색을 표했다"고 전했다.
국내 조선사의 매출에서 국내 해운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대규모 적자가 이어지는 조선업계가 국내 선사의 고충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또 다른 이유다.
전방산업인 조선업과의 협업이 어려워지면서 선사들의 자체 대응력에 대한 아쉬움은 더 커지고 있다. 한진해운·현대상선은 합해서 5조원이 넘는 자구노력을 했음에도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장기 전략 재수립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정부·금융권 탓만 할 게 아니라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데 따른 선사들의 대응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라며 "유가가 떨어진 상황에선 (복잡한 상황이지만) 오히려 저렴한 배를 확보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형 선사의 한 관계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공급부담을 약화시키기 위해 발주취소·인도연기·계선 등의 대응을 이어왔다"라며 "해운업계의 어려움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마치 지금 어려워진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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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5년 11월 04일 08: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