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사모펀드, 'PEF'보다 '전문투자형'이 될지도?
입력 2015.12.02 07:00|수정 2016.03.04 10:25
    • 2013년 12월 처음 발표됐던 이번 정부의 사모펀드 개편안이 2년여 입법과정 후 마침내 실시됐다.

      시행 한 달밖에 안된터라 벌써부터 파급효과를 언급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플레이어'(Player)들의 동향을 듣고 있다보면 꽤 의미 있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그간 '주인공' 대접을 받은 바이아웃 중심의 PEF 대신, 각각의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로 시장의 무게중심이 옮겨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다소 먼 얘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자본시장 규모나 기관들의 투자성향, 그리고 그간 국내 PEF의 트랙레코드를 따져보면 그리 삿된 얘기로 들리지는 않는다.

      # PEF부문의 낮은 체감도..."하던대로 합니다"

      개정 시행된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이제 '공모'(公募ㆍPublic)와 대변되는 개념의 '사모'(私募ㆍPrivate)펀드는 '경영참여형'(PEF)와 '전문투자형' 두 카테고리로 간단히 분류된다.

      이 가운데 PEF부문이 느끼는 변화는 크지 않아 보인다. 여러 규제완화가 마련됐지만 업계 관계자들이 꼽는 것은 크게 3~4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우선 펀드를 설립ㆍ투자하기 전에 미리 등록해야 했던 제도가 펀드 설립후 사후보고로 바뀌었다. 따라서 M&A 계약 주체를 마련하려고 빨리 펀드를 등록해야 하는데 심사과정이 지연되어 골머리를 썩였던 일이 줄어든다.

      KKRㆍ칼라일 같은 글로벌 PEF들이 많이 써왔던 복층형 SPC (SPC아래 또 다른 SPC)를 허용해준 터라  SPC와 투자대상 회사(Target Company)의 합병 이슈에 도움이 된다.

      또 공동 투자자(CO-Investor)로 대기업 등 전략적 투자자를 데려올 때 이들을 SPC에 직접 참여시킬 수 있게 된 것도 변화다. 일례로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휠라코리아라는 '국내 기업'과 공동으로 아큐시네트를 인수할 때, 과거에는 주식 보유 주체를 휠라는 휠라 명의로, 미래에셋은 미래에셋 펀드 명의로 구성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휠라가 아예 미래에셋 PEF에 출자자(LP)로 참여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의 SPC를 만들고 휠라가 직접 SPC에 출자하는 방안도 가능해진다. 과거에는 재무적 투자자(FI)들에게만 이런 방식이 허용,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즈가 메가박스를 인수할 때 만기가 정해진 펀드(PEF)가 아닌, SPC를 설립한 사례가 있다.

      이밖에도 금융ㆍ보험 전업사(미래에셋금융그룹 또는 교보금융그룹)들의 공정거래법 11조 (투자대상에 대한 의결권 행사금지) 적용조항이 완화됐고, 또 이들의 투자주식 5년내 의무처분 기한이 7년+3년으로 길어졌다. 펀드 설립후 6개월내에 투자개시 의무조항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좀 냉정하게 따져보면 최근 국내 PEF들의 주식 보유기간이 짧게는 1년, 길어야 3년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5년이내 처분' 운운할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개정안이 PEF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적게 모으고, 다양하게 투자하고, 드러나지 않는다"

      혜택을 본 곳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다.

      제도는 간단하다. 과거에는 한국형 헤지펀드 육성붐을 타고 운용사를 하나 만들려고 해도 자본금(자기자본)만 60억원이 필요했다. 또 투자자로부터 받아야 할  최소 투자금 모집 단위도 5억원 이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사모펀드 운용사를 만들려면 3가지 조항만 갖추면 된다. ▲자기자본 20억원 ▲전문인력 3명 이상 ▲기본적인 설비요건. 설비요건 상당수는 외주를 통해도 된다. 자금 모집도 쉽다. '최소 1억원'을 낼 투자자들만 모을 수 있으면 된다.

      과거처럼 감독당국에 운용사 '인가'를 받을 필요도 없다. 이제는 펀드를 만들고 감독당국에 보고만 하면 큰 무리가 없는 한 '등록'을 해 준다. "펀드가 투자하겠다는 사업계획이 타당한거냐"라는 깐깐한 심사도 없어졌다.

      운용인력들을 구하기도 쉽다. 옛날에는 연기금이나 금융회사에서 3년이상 근무하고 또 운용업무에는 2년 이상 종사하거나 아니면 CPA자격증을 가지고 2년 이상 운용업무에 종사했거나 같은 조건이 까다롭게 붙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필요 없다. 금융회사에서 3년 이상 근무하고 펀드 관련 교육을 이수만 하면 '사모펀드 매니저'가 될 수 있다.  심지어 '투잡'도 가능하다. 과거에는 운용인력 겸직이 금지됐지만 이해상충 방지장치 등이 문제 없다면 겸직도 가능하다.

      한때는 금기시 됐던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광고도 허용되고, 운용상품 직접 판매도 가능하다. 어차피 소수 전문가들에게만 판매되는 것이니 자율책임에 맡긴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를 현실적으로 해석하면? 내 투자경험이나 노하우를 믿는 '쩐주'(錢主)만 있다면 약 3명 정도의 펀드매니저에 준법감시인을 갖추고 20억원 자본금을 투자받으면 뚝딱 운용사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 투자대상을 찾아 수익을 내기만 하면 된다.

      요즘같이 돈 굴리기가 어려운 시절. 사모펀드 만들어서 수익률이 좋다고 '입소문'이 나면 단기간내 '스타'로 뜨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PEF들 가운데서도 자회사나 계열사 또는 관계회사 등을 통해 이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라이선스(?)를 하나 정도 보유하면 활용할 점이 많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일례로 A라는 PEF 운용사의 포트폴리오 기업이 당장 현금이 급해 부동산을 매각해야 하는데, 이 부동산이 나중에 값이 오를 것 같다고 치자. 그렇다만 굳이 다른 곳에 매각하지 않고 다른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를 통해 매입해서 수익을 나누는 방법도 있다.

      #투자자문사들부터 시작…"PEF보다 낫다"

      이미 라임투자자문, 그로쓰힐투자자문 등 이름난 기존 투자자문사들이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를 하겠다고 신청했고 신생회사들도 등록 중이다.

      초창기라서 생각보다 신청회사가 적다는 우려도 나왔지만 사실 겉으로 드러난 수준만 이 정도일뿐. '이름값' 좀 한다는 정부부처 또는 금융권 출신 '거물'들도 이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등록을 준비하는 상황이다. 이미 투자모델을 다방면으로 테스트하는 곳들도 있다.  한번 물꼬만 트이고 주식시장 상황이 괜찮다싶으면 너도나도 등록할 기세다.

      진짜 관심사는 '증권사'들의 참여여부다. 과거처럼 특정운용사가 만든 펀드에 기댈 필요 없이, 이제는 증권사가 직접 사모펀드 운용이 가능해진다. 기존 공모펀드들과 이해상충과 차이니즈 월 문제만 해결되면 점포를 갖춘 국내 증권사들의 메리트는 높아진다. 증권사가 보는 혜택이 가장 늘어날 것이라고 점치는 이들도 있다.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에 관심이 늘어난데는 몇가지 이유들이 있다.

      하나는 투자대상과 전략이 다양해졌다는 것. 헤지펀드처럼 단순한 롱숏전략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투자대상을 찾아 담을 수 있다. 부동산을 담아도 되고. PEF가 투자한 비상장 기업의 메자닌(CBㆍEBㆍRCPS) 물량 일부를 받아와서 포트폴리오에 담아도 된다. 예전에는 이것도 투자대상별로 펀드를 나눠야했는데, 이제는 펀드 하나에 부동산이나 증권을 다양하게 담아도 된다.

      또 다른 점은 PEF 시장에 대한 '환상'과 '거품'이 조금씩 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PEF 업계 종사자들은 국민연금 등 내 기관투자금을 굴리는데 얼마나 제약요건이 많은지, 매번 생각지도 못한 여론의 공격에 시달려야 하는지 호소했다. 또 날이 갈수록 바이아웃 투자 물건을 찾아내기가 어려워지는지, 찾아냈다고해도 영업이익률 개선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경험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의 CIO가 "왜 PEF가 손실이 나느냐"라고 황당하게(?) 되물을만큼 기관들의 PEF투자 리스크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았다.  PEF가 원래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이지만, 늘 요구한 것은 중위험-중수익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무위험-고수익을 기대했다. 지난 10년간 이런 인식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렇게 힘겹게 수천억원짜리 펀드를 구성하고 트랙레코드를 하나씩 쌓아갔지만 이제 투자시장에서 PEF는 빅 딜에서 매번 대기업에게 판판이 깨지고 있다. 오랜 업력과 노하우, 다양한 M&A경험, 그리고 시너지 밸류를 갖춘 전략적 투자자(SI)를 능가하지못해, 수시로'대출업자' 취급을 당한다. 그래서 상당수 국내 PEF들은 해외와는 달리,  업종이 조금만 어려워도 '같이투자'를 할 SI를 찾아다닌다.

      이렇게 놓고보면 지금 한국의 PEF는 일정 규모를 갖춰야 하고, 바이아웃ㆍ구조조정 ㆍ기업가치 상승 등에  노하우를 갖춘 소위 '선수'들만 모여 목숨 걸고 경쟁하는 곳이 됐다.  프로젝트 펀드는 제외하더라도, 적어도 블라인드 펀드 시장은 이렇게 자리 잡혔다.  이러다보면 대기업이나 증권ㆍ금융회사 인사시즌이 끝나고 새 '취직자리'를 구하지 못한 '거물'(?) 들이 수시로 "PEF를 하겠다"며 신문 인터뷰를 자청하는 움직임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반면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는 얘기가 다르다.

      일단 최소 투자금액이 적다보니 소규모로 펀드 설립이 가능하다. 대척점에 있는 PEF를 놓고봐도 개인 출자자(LP)최소 투자금액이 10억원이었고(이번에 단위가 감소했다) 이런 개인출자자들 참여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투자금이 남아도는 국민연금이나 고수익이 필요한 공제회를 찾아다녀야 했다.

      하지만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는 굳이 이처럼 대규모 자금을 모을 필요도 없다. 또 출자자 입장에서는 수익률이 높고, 준법 테두리내에서 안정적으로 실현만 된다면 '흰 고양이'(바이아웃)든, '검은 고양이'(메자닌 또는 부동산)든 개의치 않는다. 펀드 투자자 입장에서도 대형 기관들 옆에 껴서  '소액 출자자' 취급을 받느니, 작지만 경쟁력 갖춘 운용사를 찾아 '앵커 출자자'로 대접받고 수익을 내는 게 낫다.

      "신문에 이름이 자주 거론된다"와 "운용수수료(Management Fee)가 안정적이다"라는 두 가지만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대형 PEF로 되려고 안달복달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기관투자자의 실무자 입장에서는 부동산 펀드 따로 설정하고, 메자닌 펀드 따로 배분하고, 헤지펀드 따로 나눠주고 하는게 점점더 골치아파지고 관리문제가 늘어난다"며 "결국 대체투자라는 큰 테두리안에서 다양한 전략으로 자금을 운용할 수 있고 신뢰도가 높은 운용사가 있다면 그런 곳을 찾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예단하기는 이르고 예상 만큼 시장이 활성화될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국내 자본시장 규모만 놓고보면 국민연금으로부터 한꺼번에 돈을 받아 5000억원이 넘는 펀드가 한꺼번에 활동하기에는 시장규모가 한정돼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영리하고 가벼운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의 활황을 점치는 것이 마냥 먼 얘기만은 아닐수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