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절차 부정적 시각·파산부 신뢰 부족 아쉽다"
입력 2016.01.21 07:00|수정 2016.01.21 17:20
    이재희 서울지법 파산부 부장판사
    동양그룹 회생절차 담당, 다음 달 파산부 떠나
    법원은 지나친 간섭 지양…인위적 M&A는 안 해
    도산 절차 돌입한 기업 실패자로 보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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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그룹 '집도의(執刀醫)' 이재희 서울지법 파산부 부장판사가 다음달 파산부를 떠난다. 그는 동양그룹 5곳의 계열사 중 ㈜동양·동양인터내셔널·동양레저 등 3곳의 회생절차를 담당하며 동양시멘트 매각를 지휘했다. 도산법 전문가인 이 부장판사에게도 동양그룹은 까다로웠다. 채권자들을 '피해자'로 부를 정도로 수 만명의 사연이 얽혔고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럼에도 동양시멘트, 동양레저, 동양네트웍스는 이미 기업회생절차를 졸업했고 ㈜동양도 채권 변제를 마무리하고 내달 초 재기를 앞두고 있다.

      이 부장판사는 "회생기업에 대한 시장의 부정적인 시각과 파산부에 대한 신뢰 부족이 '기업 회생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요인"으로 꼽으며 시장 인식에 아쉬움을 토했다.

      그는 "2~3년에 한번씩 파산부 판사들이 교체되는 것을 두고 전문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 하는데, 기업회생절차는 시스템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판사 개인의 역량으로 판단을 그르칠 일은 없다"며 "회생절차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제도보완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1년 패스트트랙제도·2014년 중소기업 회생컨설팅제도·2015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회생기업 자산매각후재임대(세일앤리스백) 업무협약(MOU) 등을 예로 들었다. 미국이 금융위기 이후 빠른 회복을 할 수 있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로 잘 정비된 도산 제도를 꼽았다.

      - 파산부를 떠나게 되는 감회가 남다를 것으로 본다.

      "떠나게 돼 아쉽긴 하지만 가장 관심을 많이 갖고 있던 분야에서 일을 하게 돼 아무리 일이 많아도 힘든 줄을 모르고 보냈다. 동양사건을 맡고 파산부 판사들은 밤낮없이 일에 몰두했다. 한달 만에 5kg이 빠질 정도였다. 동양사건이 일단락 될 수 있었던 데는 파산부 판사들의 노력과 윤준 수석부장판사의 신속한 결단력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동양의 동양시멘트 지분매각을 비롯한 주요 결정사안에서 윤 수석판사의 판단으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지금도 30여명의 파산부 판사들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 동양그룹 회생절차의 쟁점은 무엇이었나.

      "5만700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채권자들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기업집단사건에 대한 이해 충돌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과제였다. 계열사마다 관리인을 따로 선임하고 이해관계를 풀어내는데 집중했다. 대규모 채권자 문제는 법원의 선제적 대응이 주효했다. 채권자 단체의 법무법인 선정을 돕고 사무실 사용도 지원했다. 향후 절차 등에 대해서도 세심히 설명했다. 법원 앞에선 단 한 건의 시위도 없었다. 회사와 별개로 각 채권자 단체에서도 회생계획안을 접수했다. 법원은 이를 중재하고 회생계획안을 단일화 해 가결 가능성을 높였다. 광학식문자판독기(OCR) 기기를 도입하는 등 기술적으로 풀어낸 부분도 있었다"

      - ㈜동양은 적대적 M&A에 노출 돼 있다.

      "회사가 지닌 채무를 변제하는 것이 회생절차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일부 성공적이라고 표현할 순 있다. 하지만 회사의 완전한 자립을 성공의 범주에 포함한다면 아직은 불안정한 부분이 많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대주주가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법원은 지나친 간섭을 지양한다. 법원이 특정업체를 지정하는 인위적인 M&A를 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다만 주식의 이동이 회사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방향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순히 ㈜동양의 현금을 노리는 세력이 있어 마음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법원은 경영간섭을 최소화 하면서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법원의 일련의 조치들이 최선의 방안이었는지는 향후 판단할 내용이다. 조심스럽게 지켜볼 계획이다"

      - 회생기업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적기에 신청하지 못하고 뒤늦게 돌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생절차 돌입 전 단계로 꼽혔던 워크아웃은 채권자와 채무조정 범위가 한정돼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았다. 이후 곪을 대로 곪은 상태에서 회생절차에 돌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 회생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회생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프고 싶어 아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기업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 3년 생존율은 30%다. 성공하지 못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을 사회의 패배자, 부실경영에 책임이 있는 부도덕한 경영자로 낙인 찍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가장 먼저 극복해냈다. 도산절차가 잘 정비돼 있었기 때문이다. 도산절차에 돌입한 기업을 실패한 기업으로만 바라보는 국민적 인식 또한 우리와 다르다"

      - 채권단들이 반발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14년 회생절차에 돌입한 넥솔론은 채권단인 산업은행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산업은행은 회사가 협의 없이 회생절차에 돌입한 것을 두고 모회사인 OCI그룹에 대한 전체 여신을 회수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으며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워크아웃 시스템에 익숙한 점도 채권단의 반발요인이 되기도 한다. 채권단 입장에선 제 3자인 법원이 채권-채무 관계에 개입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워크아웃은 채권자들이 주도한다. 하지만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에서 한쪽이 주도권을 쥐고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지 결정하는 워크아웃이 공정성을 담보한다고 보기 힘들다"

      - 채권단의 권리가 지나치게 축소되는 것이 아닌가

      "회생절차의 결정적인 열쇠는 채권단이 쥐고 있다. 회생계획안을 의결할 때 채권단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결의요건을 일정수준 충족하지 않는 상태에서 법원이 강제 인가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회생절차 밖에서 이뤄지던 채권단이 자금관리 위원을 파견하고 인사까지 좌지우지 하는 등의 경우를 회생절차 내에선 할 수 없게끔 하는 것이다. 불만이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 회생절차의 주안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인 것은 절차를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과도한 개입을 지양한다. 지나친 개입은 기업의 회생절차를 기피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법원의 역할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매끄럽게 회생절차를 진행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히려 소극적인 입장에서 자금유출 및 운용 등을 견제 하는 역할을 하고, 경영자 행세를 하는 것은 자제한다"

      - 회생절차의 보완점은 무엇이 있는가.

      "회생절차의 아쉬운 점은 신규자금 지원이 어렵다는 것이다. 법원은 패스트트랙제도 도입해 회사를 조기에 사회로 복귀시키면서 수주재개와 신규자금 지원을 가능하게 했다. 현재는 회생절차 내에서 신규자금 지원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금융당국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신규자금 지원을 위해선 채권자들의 절차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 기촉법 일몰로 법원의 역할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촉법이 일몰되면 기업들이 적기에 회생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있다. 그러나 기촉법 유무를 떠나서 회생절차를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개선할 수 있느냐에 더 집중하고 있다. 워크아웃제도가 부활한다해도 회생절차가 더 효율적인 방안으로 자리매김 한다면 회생절차를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도산법원 설립에 대한 논의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도산법원 설치에 대한 기업과 채권단, 법조계의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오히려 전문성을 보강한 도산전문 법원설립을 시장에서 더 요구하는 분위기다. 도산전문법원이 설립되고 전문법관이 배치되면 기업들이 회생절차를더 신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