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금융당국, 알맹이 없는 ELS 대책
입력 2016.01.22 06:00|수정 2016.01.22 09:23
    지난 8월 내놓은 대책 '재활용'
    손실위험 적다더니 "당장 손실 아냐" 말 바꿔
    불완전판매 이슈 고개 드는데 '점검하겠다' 말만
    • 홍콩항생중국기업지수(이하 홍콩H지수) 8000선이 무너지며 주가연계증권(ELS) 대란이 이미 시작됐지만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태평하기만 한 것 같다. 21일 긴급 브리핑을 통해 내놓은 '대책'은 기존 발표 내용의 반복과 '문제 없다'는 부연 뿐이었다.

      당장 내놓은 수치부터 민망하다. 19일 기준 홍콩H지수 기반 ELS 발행 잔액은 37조원이다. 지난해 9월엔 37조1000억원이었다. 금융당국은 이를 "감소했다"고 표현했다.

      금융당국은 앞서 작년 8월말 홍콩H지수가 급락하자 '특정 지수 쏠림을 방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 뒤 4개월간 변화가 고작 기존 잔액 대비 0.27% 줄어든 데 그친 셈이다. 증권사들이 최근 홍콩H지수와 상당한 유사성을 지닌 항셍지수로 기초지수를 옮기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이를 '줄었다'고 인식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말도 바뀌었다. 지난해 8월 당시 금융당국은 홍콩H지수 기반 ELS와 관련해 "손실을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 근거로 주요 원금손실진입(Knock-in;녹인) 분포구간이 홍콩H지수의 최근 5년내 최저점(8102포인트)보다 낮다는 점을 들었다. 현재 발행된 홍콩H지수 기반 ELS의 90%는 녹인 구간이 4500~7850포인트 사이에 위치해있다.

      21일 홍콩H지수는 7835포인트로 마감했다. 녹인 사태가 현실화됐지만, 금융당국의 새로운 메시지는 "당장 손실은 아니다"였다.

      한 증권사 상품 관계자는 "ELS 투자자는 거의 대부분 6개월~1년 내 조기상환을 목표로 투자한다"며 "조기상환 기회가 사라지고 손실구간에 접어든 것만으로도 상당한 피해라 볼 수 있는데, 당국의 인식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증권사 건전성에도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증권사 평균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은 486.7%로 관리 기준(150%)보다 높다. 다만 이 수치만으론 안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ELS 발행 잔액이 많은 대형 증권사들이 ELS 관련 자산과 증권사 고유자산을 혼재해 운용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약속한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혹은 운용 과정에서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서다. 증권사별로 헤지 규모에 따라 수백~수천억원대 고유자산이 투입돼 있을거란 전망이 나온다.

      금융시장에서는 대형 증권사들의 운용손실을 걱정하고 있다. 거래 감소와 신규 수익원 부재로 증권사들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을 맛봤다. 여기에 ELS 리스크까지 더해졌다. 금융당국이 "건전성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라고 가볍게 지나갈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증권업계에서는 ELS의 손실폭이 커지면 커질수록 '불완전판매' 이슈가 부각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2014년 6~7월 진행한 ELS 관련 미스터리쇼핑(암행감찰) 결과 증권사와 은행 모두 '미흡' 판정을 받았다. 최근 대세인 원금비보장형 스텝다운식 ELS의 경우 각 증권사 홈페이지에서는 '고위험 고수익' 상품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디어 등을 통해 '중위험 중수익'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금융당국은 이날 브리핑에서 불완전판매 관련해 "지속 점검 하겠다"고만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8월말에도 "전 업권 신탁판매 채널에 대해 판매 실태를 전면 점검해 불이익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던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