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베이터, 현대증권 우선매수권 '딜레마'
입력 2016.02.16 07:00|수정 2016.02.16 07:00
    현대증권 인수후보들 "우선매수권 포기해야 인수 추진"
    현대그룹 "포기 할 수 없다…제값 받기 위한 장치"
    IB업계 "현대엘리베이터, 우선매수권 행사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증권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보면 '어렵다'는 의견이 더 많다. 그럼에도 현대엘리베이터는 우선매수권을 쥐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우선매수권 포기시 배임 문제도 있지만 싸게 사려는 인수자들과의 힘겨루기를 하려면 우선매수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현대증권 대주주가 되려면 금융당국의 대주주 변경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현재 금융당국의 기류를 보면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꼬리자르기를 용인해줬다"는 비난과 논란까지 감당하면서 대주주 변경 승인을 내줄 것 같지 않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도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대엘리베이터의 신용등급과 외부조달 능력, 시장 평판 등을 감안하면 현대증권 인수에 이 돈을 사용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현대엘리베이터의 현대상선 지원을 문제삼아온 2대 주주 쉰들러의 반발은 명약관화(明若觀火)다. 지난해 말 쉰들러는 현대그룹 문제를 외교 테이블에 올리려 했다.

      다음은 채권단이다.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의 채무와 용선료를 재조정하자고 한 상황에서 기존 채무 3900억원만 상환하게 되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우선매수권 행사를 채권단이 바라보고만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우선매수권 행사 금액은 현대상선의 대출금액(3900억원) 또는 행사 직전 1개월 평균 주가의 120% 가운데 높은 쪽이다. 한 M&A 전문변호사는 "현대증권 매각에서 현대엘리베이터의 우선매수권 보유는 지엽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현대그룹도 이와 관련 "우선매수권은 자금 대여에 대한 담보권 성격으로, 포기할 경우 배임이 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현대증권을 진성 매각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럼에도 현대증권 인수 후보들은 우선매수권이 인수 추진의 걸림돌이라는 입장이다. 한 인수 후보측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가 가진 우선매수권이 사라져야 전략적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인수를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수를 위한 노력이 현대엘리베이터의 우선매수권 행사로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경쟁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관계자는 "오릭스 PE에 현대증권 매각 과정을 보면 현대그룹이 현대증권을 놓아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우선매수권=매각 걸림돌' 의 등식이 제기되는 이면에는 매각 측과 인수후보들간의 힘겨루기 싸움이 자리잡고 있다. 우선매수권 포기에 따른 배임 여부는 차치하고, 현대엘리베이터가 우선매수권을 포기하면 현대증권 매각은 인수자 쪽에 더 유리한 구도가 형성된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장부가와 매각가의 괴리로 인한 현대상선의 재무비율 훼손도 최소화 하길 원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우선매수권 유지에는 '현대증권을 인수하고 싶으면 현대상선이 인식한 장부가 수준은 맞춰달라. 헐값에 매각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지난해 3분기말 기준 현대상선이 인식한 현대증권 지분가치는 6935억원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우선매수권이 사라지면 암묵적인 최저 매각선도 사라지고 현대그룹은 인수 후보들간 경쟁에만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며 "채권단이 우선매수권을 포기할 것을 요구해도 현대그룹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5일 아침 이사회를 열고 현대증권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은 포기하기로 했지만 우선매수권은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현대그룹은 EY한영을 통해 현대증권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29일 인수의향서(LOI)를 접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