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투자에 등돌린 'PEF', 소비재·해외 투자로 눈 돌린다
입력 2016.04.14 07:00|수정 2016.04.15 16:29
    생필품·음식 등 소비재 '주목'
    현금흐름 꾸준, 고객기반 탄탄
    성과 발판으로 해외투자 확대
    중후장대 산업 실패 잦고 PEF 투자 주기와도 불일치
    출자자 보수적 성향도 원인
    • "산업 변동에 휘둘리는 중후장대(重厚長大) 기업 투자는 신중해야 합니다. 경기 예측이 가능한 헬스케어나 음식료 등 소비재 산업에 투자하는 게 실패를 막는 방법입니다"

      정부가 사모펀드(PEF)들에게 산업 구조조정 역할을 맡아달라고 주문하고 있지만 PEF들은 현금 창출력과 경기 민감도가 낮은 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과거 대규모 장치 산업 투자했다가 실패한 경험과 이에 따른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보수적인 투자 문화 등이 맞물리면서 조선·해운·철강·건설업 등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은 아예 투자 검토 대상에서 제외되는 모습이다.

      실제 올해 주요 PEF들의 관심사는 단연 경기방어적 투자다. PEF 투자 흐름에도 '불황의 그림자'가 엿보인다는 평가다.

      성공스토리는 소비재로…다음 투자는 해외로

      금융위기 이후 PEF들의 인수 경쟁이 뜨거웠던 기업들의 공통점은 '소비 연관산업'이다. ADT캡스와 KT렌탈, 홈플러스 등이 대표적이고, 코웨이와 동양매직도 경쟁이 치열했다. 네파(NEPA)와 웅진식품, 로엔엔터테인먼트, 할리스커피, 버거킹, 잡코리아, 로젠택배 등 기업-소비자(B2C) 중심의 회사들이 PEF들에게 각광 받았다. 최근 투자 파트너를 찾고 있는 한국맥도날드 지분에도 다수의 PEF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B2C 기업은 고객 기반이 확실하고 영업 현금이 꾸준히 들어오는 점이 투자 매력이다. 연관 기업을 추가로 인수하는 '볼트온(Bolt-On)' 전략을 통해 수월하게 가치 상승을 꾀할 수 있고 소비자 데이터를 활용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할 수도 있다. 대규모 시설투자 부담도 적고 경기 변동의 영향력에서도 한발 비켜서 있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나빠도 사람들은 생필품과 음식까지는 아끼지 않는다"며 "값비싼 고급 제품만 아니라면 소비재 산업은 PEF가 새롭게 경영전략을 펼칠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중후장대 산업보다 식음료나 프랜차이즈 같은 일정 수익이 들어오는 곳을 더 선호한다"면서 "펀드레이징뿐 아니라 인수금융 투자 심사 통과도 수월하다"고 말했다.

      투자 회사들의 실적 흐름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IMM PE의 할리스커피와 VIG파트너스의 버거킹은 투자 후 매년 이익 지표가 개선됐다. 한앤컴퍼니의 웅진식품 역시 2013년 인수 이후 경영 정상화에 힘입어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동부팜가야(現 가야에프앤비)와 대영식품을 추가로 인수하며 확장 전략을 전개했다. 지난해 매출액 2000억원을 돌파했고 영업이익도 100억원을 넘어섰다.

      투자회수(Eixt) 성과도 좋았다. VIG파트너스는 2012년 1100억원에 인수한 버거킹 지분 100%를 지난 7일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2100억원에 매각했다. 인수금융을 제외하면 투자 원금 대비 두 배가량의 수익을 냈다. 어피니티도 3년 전 투자한 로엔엔터테인먼트 지분을 1조5063억원을 받고 카카오에 매각했다. 최초 투자금은 2972억원이지만 950억원의 인수금융과 자본구조재조정 효과로 회수 금액만 약 1조3800억원에 달했다.

      소비재 기업 투자에서 성과를 낸 PEF들은 이를 발판 삼아 해외 투자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미국 자동차 시트 제조기업 GST 인수를 눈 앞에 두고 있다. IMM PE 역시 CJ CGV와 터키 마르스미디어 인수에 참여했다. 미래에셋PE도 글로벌 주방용품업체인 월드키친(World Kitchen) 인수를 진행하고 있다.

      모든 소비재 투자가 성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웃도어 시장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투자한 MBK파트너스의 네파는 기대 이하 수준이다. 최근 대표이사 교체를 통해 재도약을 모색하고 있지만, 경기 둔화로 아웃도어 관련 소비지출이 줄고 있어 전망이 밝지 않다. 제2의 버거킹을 기대하며 CVC가 투자한 KFC도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짧은 투자기간 "중후장대 사이클과 불일치"

      PEF들의 소비재 중심 투자 이면에는 국내 PEF 시장의 투자 경험도 한 이유다. PEF 시장이 형성된 2000년대 중반 건설, 반도체, 철강에도 PEF들이 적극 투자했다. MBK파트너스의 영화엔지니어링과 KTB PE·보고펀드의 LG실트론 인수, IMM PE와 미래에셋PE의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투자 등이 그 주인공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았다. 기업회생절차를 진행하고 있거나, 채권단으로부터 기한이익상실을 통보받고 투자 지분을 모두 넘겨야 했고, 업황 악화에 따른 주주간 분쟁도 발생했다. 이 같은 실패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트라우마(Trauma)'로 남았다. 투자를 한다고 해도 과점체제가 형성된 시멘트 산업이나 장기 운송계약으로 미래 현금흐름이 정해져 최소 수익을 보장 받은 벌크선·LNG선 사업에 국한되는 소극적인 투자만 진행되고 있다.

      중후장대 산업과 PEF 투자 사이클의 불일치도 투자 저조의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 PEF 투자의 수명은 길어야 5~7년으로 최근 투자 흐름을 보면 1~2년 안에 자본구조재조정으로 투자금을 일부 거둬들이고, 3년 차에 접어들면 매각을 위한 물밑 작업을 시작하는 흐름이 고착화 됐다. 대규모 설비투자가 들어가는 장치산업은 수년 간의 기다림이 필수다. 국제 정세와 유가 등락, 환율과 같은 거시경제의 파도도 견뎌야 한다.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부지를 마련하고 공장을 짓고 제품까지 만드는데 최소 3년이 필요한데 이 기간에 인력이 없어져 버리고 제품 경쟁력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자본시장법상 PEF 존속기간이 15년으로 돼 있는데 중후장대 산업에 어떻게 투자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국내 연기금·공제회 "중위험 투자 선호"

      국내 PEF의 주요 출자자(LP)인 연기금과 공제회의 보수적 투자성향도 중공업 투자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매년 감사원 감사를 받는 연기금과 공제회들은 변동성이 큰 산업에 투자 자체를 꺼리고 있다.

      한 기관투자자 관계자는 "경기사이클이 큰 산업은 투자 손실 위험, 안정성 확보가 쉽지 않다"며 "매년 투자자산을 공정가치로 평가해 반영해야 하는 공제회의 특성상 투자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연기금과 공제회의 투자 전략은 '중위험-중수익'으로 수렴했다. 투자자의 성향을 무시할 수 없는 PEF들도 중위험-중수익을 줄 수 있는 소비재 산업을 집중해서 보고 있다. 이 같은 투자성향은 앞으로도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