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무거워진 대한항공, 부동산 '카드' 꺼낼 생각은 없다
입력 2016.04.25 07:00|수정 2016.04.27 17:08
    보유 부지 활용해 호텔·레저사업 지속
    "유동성 확보 통한 체질 개선 기회 놓쳐" 지적
    회사 "손 쉽게 정리할 수 없어"…투자자 "결국 3세들 위한 것"
    • 올 들어 대한항공은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조달이 더 어려워졌다. 신용등급이 추가 하락하고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으로 채권투자자들의 보수적 기조가 강화하면서다. 시장에선 부동산 등 보유 중인 자산의 매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은 호텔, 레저사업을 위해 매입한 자산들이 국내외 곳곳에 꽤 있다. 하지만 회사의 재무구조 개선안에 부동산 활용 카드는 없다. 오히려 호텔을 비롯한 투자사업에 매진하는 모양새다.

    • 지난해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보유한 토지 장부가액은 2조202억원에 이른다. 호텔을 비롯한 소유 건물의 장부가액은 5389억원 수준이다.

      대한항공은 보유 부동산을 활용해 국내외에서 호텔, 레저사업을 지속해서 진행해왔다. 그룹은 현재 제주 KAL호텔, 서귀포 KAL호텔, 제주 파라다이스호텔, LA 윌셔그랜드호텔, 하와이 와이키키 리조트호텔, 그랜드하얏트 인천을 소유 중이다. 지난 2008년 사들인 경복궁 옆 종로 송현동 일대 부지에 건립하려 했던 한옥호텔은 계획이 무산됐다. 대한항공은 대신 복합문화공간을 세울 예정이다.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개최 당시 개발한 왕산레저개발 마리나 리조트는 레저관광 복합단지로 개발 중이다. 이외에도 대한항공이 제주 신공항 사업에 참여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각각의 사업 규모는 작지 않다. 대표적으로 위탁경영 예정인 73층 높이의 LA윌셔그랜드호텔은 신디케이트론, 유상증자 등을 통해 1조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됐다. 송현동 일대 부지는 2900억원을 들여 삼성생명으로부터 사 왔고, 왕산레저개발에도 1583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갔다. 지난 2013년 한진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안에 포함됐던 등촌동 연수원(5400억원 규모)의 매각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항공사 입장에선 호텔, 레저사업이 관련사업이긴 하지만 필수적이진 않다. 회사채 시장 관계자는 "한진그룹이 처분할 수 있는 자산이 곳곳에 있다"라며 "최근 직접금융시장에서의 자금조달이 원활치 않은데, 자산을 활용한 재무구조 개선의 의지를 보여줄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신용등급의 발목을 수년째 잡고 있는 두 가지 요소도 호텔, 항공기 등 지속적인 투자와 한진해운을 비롯한 계열사 지원 가능성이다. 일부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들은 대한항공이 호텔사업을 굳이 항공사업과 함께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다.

      대한항공은 올해 들어 진행한 공모채 수요예측에서 기관 자금을 거의 끌어들이지 못했다. 신용등급이 추가 하락한데다 새로 개정된 기촉법 내용이 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공모채 발행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새 기촉법하에서는 채권투자자들도 기업의 출자전환을 포함한 채권채무동결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외항사와 비교해도 대한항공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은 필요한 상황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외국과 회계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대규모로 항공기를 도입 중인 에미레이트 항공의 부채비율은 300%수준이고 국내 저가항공사들도 200%대를 모두 밑돈다"라며 "일부 외항사들은 대한항공보다 더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함에도 재무구조가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시장 분위기와 채권단 및 회사의 입장은 다소 상반된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이 저유가로 숨을 돌릴 틈이 생겼다는 점에 주목한다. 채권단 관계자는 "올 1분기 대한항공의 영업이익도 호실적을 예상하고 있다"라며 "저유가에다 여객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추가적인 재무구조 개선안은 시급하지 않다"라고 전했다. 대한항공도 호텔사업 등이 승계이슈와 얽혀있어 손쉽게 정리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그룹 승계이슈로 인한 대한항공의 기업가치 훼손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일부 자산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함으로써 체질 개선을 할 수 있는 시기"라며 "그럼에도 대한항공의 신용도를 발판으로 계열사 지원과 비주력사업에 대한 투자가 진행되면서 그 기회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투자자들 사이에선 호텔·레저사업 투자 확대가 대한항공의 자체 기업가치 제고보다 한진 3세들을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며 "그럼에도 대한항공은 투자자들을 믿고 사실상 버티기에 들어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