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막힌 해운업 구조조정…묘안도, 컨트롤타워도 없다
입력 2016.04.26 12:30|수정 2016.04.26 13:47
    글로벌 해운동맹 급속 재편, 국내 해운사 생존 여부 안갯속
    8위 한진해운 고립 위기, 15위 현대상선은 그나마 여유
    자율협약 조건 이행, 현대상선 달성 눈앞…한진해운 시작부터 삐걱
    팬오션 형태 법정관리 통한 회생 도모 불가능…"컨테이너선사는 청산 유력"
    결국 정부 선택의 문제 남아…"합병 후 대규모 자금 투입 불가피"
    글로벌 동맹 재편 유지·정부 결정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져야…"컨트롤 타워 여전히 부재"
    •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양대 선사의 동시 구조조정이 글로벌 해운 동맹 재편과 맞물리면서 더 복잡한 상황에 몰렸다. 해운 동맹 재편에서 소외되면 자율협약을 체결한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

      정부는 아직은 '양대 선사 체제가 바람직하다'(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동맹 유지와 탐색을 지원하고 나섰다.

      하지만 상황이 간단치 않다. 해운 동맹 측면에서 보면 한진해운이 수세에 몰린 듯하지만 현대상선이 속해 있는 동맹의 독일과 일본 선사가 새로운 질서 구축에 나선다면 현대상선 역시 안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자칫하면 국내 해운사들이 글로벌 해운업계 재편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 해운동맹 재편, 국내 해운사 구조조정 안갯속

      지난 20일 중국 최대 해운사 코스코(Cosco)그룹과 프랑스의 CMA-CGM, 대만 에버그린 등을 포함한 6개 선사가 '오션(Ocean)'이란 새로운 해운 동맹을 결성해 내년 4월 출범을 발표했다. 코스코와 에버그린의 이탈은 한진해운이 속한 CKYHE 동맹의 와해를 의미했고, OOCL의 이탈은 현대상선이 속한 G6의 향방을 안개 속으로 밀었다. 두 선사는 전체 매출의 절반 가량을 해운 동맹에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한 해운업계 고위관계자는 "동맹에 빠지게 되면 컨테이너선사의 존립 기반 자체가 무너진다"며 "자율협약보다 동맹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 역시 용선료 협상과 함께 이번 구조조정의 변수로 '해운 동맹' 유지를 선결 과제로 꼽고 있다.

      동맹 유지에서 그나마 여유가 있는 곳은 현대상선이다. G4가 된 동맹에 독일 하파그로이드가 아직은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CKYHE의 일본 K라인과 대만의 양밍은 새로운 동맹 편입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 회사가 떠나면 한진해운만 남게 된다. 2M이 한진해운을 받아줄 가능성은 만무하고, 오션 동맹은 중국이 한 축이기 때문에 편입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결국 한진해운의 선택지는 G4만 남는다.

      문제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노선이 상당부분(70% 내외) 겹치는 데다 재무구조가 악화한 우리나라 선사 두 곳을 받아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속한 동맹이 그대로 유지됐다면 정부 입장에선 세계 8위인 한진해운을 우선 살리는 형태로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었다"며 " 그러나 이제는 세계 15위인 현대상선이 그나마 현재의 동맹 유지를 할 가능성이 더 높은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물론 G4의 하파그로이드와 일본의 NYK가 중심이 돼 새로운 동맹 구축에 나선다면 현대상선의 위치도 달라질 수 있다.

      해운동맹의 합종 연횡은 빠르면 6월말에 그 윤곽이 일단락될 전망이다. 빅2에서 배제된 선사들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면서 국내 선사 중 1곳만 택한다면 나머지 한 곳은 사실상 업을 접어야 한다.

      ◇"한진·현대, 둘다 살릴 순 없다"... 누구를 살리나?

      정부가 양대 선사 체제를 옹호했지만 해운업계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둘 다 살릴 경우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해야할 뿐만 아니라 물동량 회복이 요원한 상황에서 실효성도 낮다는 평가다.

      결국 '누구를 살릴지'가 정부의 선택에 달렸다. 이 결정은 해운 동맹 유지 또는 편입 여부에 직접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운동맹 재편이 촉발 되기 이전에는 '현대상선-법정관리', '한진해운-자율협약'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유일호 장관의 현대상선 법정관리 가능성 언급, 한진해운 대비 취약한 재무구조, 글로벌 해운업계에서의 위치 등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 결정은 도리어 현대상선의 그간 재무구조 개선 노력을 역으로 부각시켰다. 현정은 회장이 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고, 1조2500억원 규모의 현대증권 매각은 대금 수령만을 앞두고 있다. 용선료 재협상도 다음달에는 가시적인 성과가 날 것이란 전망이다.채권단이 요구한 조건을 다 이행한다면, 현대상선을 기업회생절차에 밟게해선 안된다는 의견도 커지고 있다.

    • 게다가 한진해운은 현대상선에 비해 비협약채권 규모가 더 많다는 점도 이젠 약점으로 꼽히고 있다.. 비협약채권이 많을수록 채무조정이 어렵다. 5조6000억원의 한진해운 차입금 가운데 은행대출은 12.5%인 7000억원에 불과하다. 현대상선은 4조8000억원 가운데 23%인 1조1000억원이다.

      그럼에도 불구, 글로벌 15위를 살릴 것이냐, 8위를 살릴 것이냐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해운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란 측면과 규모의 산업이란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

      ◇ 법정관리 신청='청산'…현실적 해법 '합병'

      법정관리를 통한 구조조정은 현실적인 해법이 아니란 평가다. 벌크선 사업과 달리 컨테이너선은 법정관리 돌입시 회생보다는 청산에 무게가 실린다는 것이다.

      한 법정관리 전문가는 "법정관리가 용선료 재조정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컨테이너선사는 화주에 대한 배상 문제, 화주 감소 등으로 회생보다 청산가치가 더 높게 나온다"며 "팬오션이나 대한해운 등이 회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벌크선이 주력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법정관리 가능성이 나오면 용선료 협상도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대한해운이 어려워지자 회사는 용선료 협상에 나섰지만 결국 법정관리를 밟게 됐다. 당시 선주들은 "이럴 거 였으면 왜 용선료 협상을 한 거 였냐"고 강하게 항의했다는 후문이다. 선주들 입장에선 용선료를 재조정해주지 않았다면 더 많은 채권을 회수할 수도 있었기 때문. 대한해운 사례로 옛 STX팬오션도 용선료 협상에서 선주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나마 현실적인 해법은 해운동맹을 유지하는 곳을 중심으로 경쟁력 있는 부분만 떼어내 합병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 역시 노선 중복 조정, 대규모 자금 지원 필요, 이해관계자들간의 조정 등 험난한 절차를 예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해운업 구조조정을 책임지고 이끌 콘트롤 타워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8년간 땜질 처방으로 일관해온 정부의 해운업 대응이 결국 화를 불렀다는 비난 여론만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