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최은영 회장은 사재출연 해야 할까
입력 2016.04.27 07:00|수정 2016.04.27 07:00
    채권단 "사재출연하라" 요구했지만 자산매각안만 제출
    한진그룹 "구원투수로 등판해 1조원 넣었다"…경영실패보단 시황 악화가 더 큰 문제 입장
    "최은영 전 회장, 주식 매각없었다면 사재출연 요구 어려웠을 것"
    경영권 포기했는데 사재출연 요구, 합리적인가 의문도
    • 한진해운이 채권단에 제출한 자율협약안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의 사재출연 계획이 담겨 있지 않았다.

      채권단은 "용선료 협상 등 정상화 추진 방안의 구체성이 미흡하다"며 보완을 요구했다. 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처럼 한진그룹 오너 일가들도 성의를 표현해야 한다는 게 채권단의 기류다.

      '성의 표현'이란 말에 녹아있듯 사재출연은 경영을 책임진 오너 일가가 그 책임을 다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사실 오너 일가가 사재를 출연해 회사가 정상화된다면 자율협약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현정은 회장이 300억원을 넣어도 현대상선이 해결해야할 차입금은 4조8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이 이뤄지면 채권단의 자율협약 추진에도 탄력이 붙는다. 자율협약 과정에서 회사에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을 투입해야 하고 다른 채권자들은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이때 오너일가도 경영권을 포기하면서 남은 여력까지 다 털어넣었다고 해야 여론과 채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하지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사재출연을 고심하다 자구안에서 이를 제외했다. 한진해운에 대한 경영권 포기만 포함됐다. 한진그룹이 최은영 회장 시절 한진해운의 구원투수로 나섰다는 점을 인정해달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대한항공, 한진 등을 통해 총 1조원(잔액 기준 8500억원)가량의 자금을 지원하며 한진해운 경영 정상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는 것이다.

      사실 한진그룹이 한진해운 지원에 나선 시기를 보면 매출액 대비 용선료 비중이 크게 치솟은 위기 상황 전후였다.  2013년 4분기, 매출액 대비 용선료 비중이 40%로 웃돌아 유동성 부족이 발생하자 대한항공은 한진해운에 1500억원을 빌려줬고, 2014년 6월에는 대한항공이 다시 4000억원을 한진해운에 증자했다.이후에도 대한항공은 만기도래한 1500억원에 700억원 더 빌려줬고, 올해 2월에는 영구채로 전환한바 있다. 한진해운이 발행한 교환사채에 대해서는 대한항공을 통한 차액정산계약을 체결하며 지원했다.

      조 회장의 한진해운 체제에서는 원가 절감, 비용 축소, 노선 정리 등을 통해 영업 흑자를 기록하며 실적 회복 가능성도 보여줬다. 그러나 대형 해운동맹의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의 운항이 본격화되면서 운임지수 하락폭이 비용절감 및 연료단가 하락 속도를 앞질렀다. 결국 재무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배경 때문에 해운업계 일각에서 구원투수로 올라온 조 회장에게 자율협약의 책임을 묻긴 어렵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조 회장은 현정은 회장처럼 한진해운을 책임져 온 것도 아니고 회사 정상화를 위해 무보수로 일한 점도 다시 거론됐다. 2003년부터 현대상선을 이끌어온 현정은 회장은 그간의 경영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재를 출연했지만 조양호 회장과는 경우가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박도 있다. 대한항공을 통해 한진해운 살리기에 나선 노력이 순수하게 한진해운 경영 정상화가 아닌, 다른 속내가 있었다는 의심까지 지우진 못하고 있어서다. 채권단도 드러내놓고 이야긴 못하지만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 오너인 최은영 전 회장에 대한 채권단의 사재출연 요구도 거론된다. 작고한 조수호 전 회장을 대신해 한진해운을 이끌었고, 이 과정에서 고가의 용선계약을 맺어 한진해운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이유가 언급된다. 하지만 현대상선을 비롯해 다른 나라의 해운사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자율협약 전 최 전 회장 가족들이 한진해운 주식을 매각한 일이 채권단의 사재출연 요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최 전 회장과 두 딸은 지난 6~20일 사이에 보유주식 96만7929주(지분율 0.39%)를 매도해 43억원가량을 현금화했다.

      금융감독원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어 결과를 기다려 봐야겠지만 주식을 팔지 않았다면 채권단은 이미 2~3년 전에 경영권을 내준 최 회장에게 사재 출연을 요구할 명분을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법률상으로는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최 전회장이 한진그룹으로부터 미공개 정보를 받을 정도로 관계가 회복되진 않았다는 재계의 설명도 있다.

      현재 여론은 조 회장도 최 전회장 편도 아니다. '땅콩 회항' 사건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인터넷 포털에는 '세금으로 대기업(한진해운) 살리지말라'는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최 전 회장이 받은 수십억원의 급여와 퇴직금을 거론되며 무능한 전 오너란 비난도 나오고 있다.

      조 회장과 최 전회장의 사재출연은 채권단의 요구대로 이뤄질지, 또 출연규모는 얼마가 적정할지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다만 한진해운 자구 계획안을 보면 자산 매각으로 운영비용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율협약안에 사재출연 내용을 뺀 괘씸죄까지 더해진 점도 고려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과연 사재출연이 자율협약 진행의 '필요조건' 인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재계관계자는 "사재출연이 자율협약 입장료가 된 듯하다"며 "양대 해운사 구조조정 원인이 해운사에도 있지만 넓게 보면 해운정책과 글로벌 경기 악화가 더 큰 요인인데, 채권단은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없이 오너의 무능으로 몰아가고 있는 측면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