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F 계층화…고민 깊어지는 기관투자자 출자
입력 2016.05.02 07:00|수정 2016.05.09 09:43
    MBK·한앤코·IMM ‘빅3’와 중형 운용사로 분화…기관 선택권 좁아져
    2년 연속 출자나선 국민연금, 줄 곳 마땅찮은 라지캡 부문 고민
    시장 커졌지만 검증된 운용사는 적어…기관들 메자닌·프로젝트로 선회
    • 최근 국내 사모펀드(PEF) 시장은 MBK파트너스와 한앤컴퍼니, IMM 프라이빗에쿼티(PE)의 3강과 그 뒤를 쫓는 몇몇 중형 운용사들이 주류를 이루는 형국이다. 사모펀드 도입 10년이 지났지만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차별화에 성공한 운용사는 많지 않고, 그 중에서도 계층화가 진행되고 있다. 신진 세력의 진입은 더욱 어려워졌다.

      기관출자자의 선택지도 좁아지는 양상이다. 국민연금처럼 대형 기관은 큰 돈을 출자할만한 운용사가 많지 않음을 걱정하고 있고, 적은 돈을 맡기는 기관은 그들대로 좁은 운용사군과 운용사의 달라진 눈높이까지 고민해야 할 처지다.

      ◇국민연금의 고민 “2500억원 받아갈 곳이 없다”

      2년 주기로 블라인드 PEF 출자 공모를 진행해왔던 국민연금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출자에 나섰다. 대체투자 강화와 국내 PEF 시장 활성화를 위한 결정이라는 면이 있지만, 운용사 선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2개 운용사를 선정하는 라지캡 부문(5000억원)에 대한 고민이 깊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라지캡 부문에 들어올만한 곳이 없다며 걱정하는 모습”이라며 “대규모 PEF를 운용할 역량을 갖춘 곳이 많지 않은데다, 그나마도 지난해 출자금을 다 받아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MBK파트너스와 한앤컴퍼니의 참여 가능성은 크지 않다. 두 곳 모두 해외 출자자(LP)로부터 자금을 모을 역량이 있고, 국민연금과 함께 한다는 선전 효과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굳이 보수가 박하고 운용 기준이 까다로운 국민연금 자금을 받아 다른 해외 LP의 조건도 그와 동일하게 맞출 필요가 없다.

      지난해 라지캡 부문에서 2500억원씩을 받아간 IMM PE와 미래에셋자산운용, 스틱인베스트먼트도 일정 비율 이상의 자금을 소진하기 전에는 다시 국민연금의 출자 공모에 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 자금을 받은 PEF 운용사 관계자는 “운용사들은 펀드결성 후 보통 3~4년간은 펀드레이징을 중단하고 투자에 집중한다”며 “이를 감안하면 국민연금이 매년 라지캡 부문에 출자하기 위해선 눈높이에 맞는 운용사군이 3~4배는 있어야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으로선 빅3나 기존에 출자했던 곳보다는 최근 투자성과와 명성이 떨어지는 운용사를 선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PEF 운용사 관계자들은 지난해 라지캡 부문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하나금융투자와 오릭스 PE를 비롯, VIG파트너스와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케이스톤파트너스 등의 참여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들은 강력한 경쟁자는 피했지만 국민연금의 기대치를 충족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제안서는 다음달 13일까지 접수한다.

      ◇PEF 시장 커졌지만 선택지 좁아진 기관출자가

      이러한 고민은 비단 국민연금과 같은 큰손 투자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관출자가로선 출자 규모를 떠나 안정적인 투자실적을 가진 운용사에 돈을 맡기길 원할 수밖에 없다. 규제 완화로 PEF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다양해지면서 운용사의 역량 검증이 더 중요해졌다.

      그러나 대형 운용사와 마찬가지로 중위권 운용사군도 압축되며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 그 외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신규, 소형 운용사에 출자하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 운용사의 역량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블라인드펀드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연기금 관계자는 “빅3에 이어 미래에셋, 스틱, IMM인베스트먼트 등 대여섯 곳의 운용사가 다음 계층을 형성하는 것이 최근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국민연금 라지캡 부문만큼은 아니지만 중형 이하 규모로 출자할만한 선택지도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 커지는 시장 규모와 달리 기관들이 마음 놓고 돈을 맡길만한 운용사들은 그만큼 늘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PEF 산업은 자금모집과 투자집행, 투자회수 등 모든 부분에서 제도 도입 후 연간 최대 규모를 달성했다. 그러나 새로 모아진 자금 10조2000억원과 투자 집행액 12조8000억원 중 빅3의 비중은 40%를 넘어 편중화된 모습을 보였다.

      주요 운용사와 기관출자가의 위상은 예전과 달라졌다. 기관들이 검증된 몇몇 운용사군에 출자하길 원하면서, 예전처럼 몇 백억원의 출자금으로 운용사들을 줄 세울 수 있는 시기는 지나갔다. 반면 운용사들의 선택의 폭은 넓어지며, 기관들이 오히려 운용사의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됐다.

      PEF 운용사 관계자는 “모든 기관투자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어느 정도 규모와 위상을 갖추게 된 운용사들은 소규모 출자금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부 기관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메자닌 투자만 하거나, 운용사 역량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지는 프로젝트펀드 위주의 출자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76곳의 PEF가 새로 만들어졌지만, 3분의 2가 프로젝트펀드였다. 모험 자본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국내 기관과 운용사들의 특성상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