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현대 포커스 된 해운업 구조조정…시스템 개선없인 무의미
입력 2016.05.10 07:00|수정 2016.05.11 12:48
    용선료 협상해도 20~30% 인하 수준…여전히 수조원대 용선료 부담 커
    선박금융기관 설립·선박금융전문가 양성 등 기본사항 재점검 필요
    • 재계와 금융시장, 정치권의 눈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쏠려 있다. 국내 해운업 구조조정이 최고의 이슈로 부상하면서 이들 회사의 합병 또는 법정관리 여부를 놓고 셈법들이 쏟아지고 있다.

      양 대 국적선사의 용선료 문제와 해운동맹 탈퇴 여부가 주목받으면서 해운업 환경 제고를 위한 근본적인 논의는 뒷전으로 밀린 분위기다. 해운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근본적인 시스템 구축 없이는 구조조정의 파고를 넘은 선사들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정부 주도 구조조정 1차 대상 된 한진해운·현대상선

      현대상선에 이어 한진해운이 자율협약 신청을 결정하자 해운업 구조조정은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두고 합병과 법정관리 등 갖가지 시나리오가 쏟아졌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해운업 구조조정 방향 발표로 불확실성은 일정 부분 해소됐다.

      금융당국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우선 과제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각각의 얼라이언스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각 사가 진행 중인 용선료 협상이 잘 끝나지 않을 시엔 양 사 모두 법정관리에 돌입할 수 있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해운업 구조조정의 초점이 한진해운, 현대상선의 법정관리 여부로 좁혀졌다. 이에 업계 한편에선 이 위기를 계기로 국내 해운산업 시스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점검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운사 경쟁력 향상을 위해선 그간 엇박자를 내 온 정부, 금융권 그리고 기업이 협업하는 기본적인 인프라와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 두 선사의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끝나더라도 장기적인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 정부-금융권-기업, 불협화음 어떻게 냈나

      해운업계 고위관계자들은 그동안 국내 금융권에서 해운전문가가 양성되지 않은 점을 큰 문제점으로 지목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유럽의 경우 해운업계 실무진보다 선박금융을 더 잘 아는 전문가들이 금융권에 포진돼있다"라며 "국책은행에서 선박금융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가동되긴 했지만, 수장이 바뀔 때마다 프로그램 내용이나 가동 의지가 달라졌다"라고 밝혔다.

      높은 선박금융 금리는 해운업계가 불만을 가지는 대표적인 금융권 지원내용이다. 일본의 선박금융 금리가 0%에 가까운 데 반해 국내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평균 선박금융 금리가 4~5%에 이른다.

      해운전문가를 육성할 지휘체계는 부재했다. 가까운 일본이 국토교통성에서 조선·해운업을 함께 지휘하며 선박 발주를 지원하는 민간협의체를 형성한 사이 국내는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등으로 흩어진 컨트롤타워가 손발을 맞추지 못했다.

      정부 지원의 중심축이 조선업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지며 조선업이 10조원에 가까운 지원을 받는 동안 해운업 지원규모는 1조원에 그쳤다. 세계 경제위기와 함께 10여년 주기로 찾아온 해운시장 위기 때마다, 정부는 오히려 대형선사들에 알짜자산 매각을 요구했다.(인베스트조선 2015.11.06 '정부·금융권의 조선사 일변도 지원…예고된 해운사 경쟁력 약화' 참고)

      기업들의 선박 포트폴리오 운영 전략도 취약했다. 선사들이 단기 이익에 급급해 호황기에 맺어놓은 고가의 용선은 불황기에 부메랑이 돼 회사의 생존을 결정할 요소가 됐다. 글로벌 선사인 머스크는 불황기에 충분한 현금을 유지하는 재무정책과 호황기보다 30%까지 낮은 가격에 선박을 발주하는 선박 운영정책 등을 펼치며 결과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 제대로 된 선박금융기관 하나 없어…선박금융시스템 재점검 필요 

      아시아에선 중국과 일본이 정부 주도로 고강도의 해운업 구조조정을 펼치는 동안 국내는 이렇다 할 선박금융기관 하나를 만들지 못했다. 이상적인 형태의 '선박은행' 설립에 관해서는 논의만 수년째 이어지다가 중단됐다. 선사들이 선박은행을 통해 신규 또는 중고 선박을 발주하거나 고용선 선박을 저용선 선박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선박은행 설립은 업계의 오랜 과제였다.

      선박은행 설립은 정부의 지원금이라는 벽 앞에 번번이 무너졌다. 현재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자회사인 선박자산운용이 선박펀드를 조성해 선사들의 선박 발주를 돕고 있는 정도다. 수년간의 지원 규모가 4600억원에 불과했다.(인베스트조선 2015.11.12 '선박은행 설립 논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나' 참고)

      상황이 이러다 보니 업계 관계자들은 근본적인 환경개선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해운업계 고위관계자는 "해운기업이 지속적으로 운영 가능한 인프라가 개선도 되지 않은 상황에선 국적선사 수가 몇 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라며 "구조조정 소식으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대한 화주들의 신뢰는 금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머스크가 이 기회를 틈 타 한국 선사들의 위기를 담은 기사들을 번역한 내용을 주요 화주들에게 서신으로 보내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치킨게임 중인 글로벌 해운선사 간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글로벌 대형 선사들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국적을 뛰어넘은 선사 간 합종연횡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경쟁 속에선 한 곳의 선사만 살린다고 해서 해당 선사의 경쟁력이 두 배로 향상되기엔 힘들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물동량 기준으로 세계 1위인 덴마크 머스크가 25%, 2위인 스위스 MSC가 10%를 차지하고 있고 한진해운, 현대상선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라며 "거대 자본끼리 결합하며 중소선사를 고사시키려는 상태에서 선사들이 회생한다 하더라도 생존이 지속될 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금융권, 선사가 머리를 맞대고 근본적인 선박금융시스템 개선안에 대해 고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용선료 협상도 근본적인 타개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내야 하는 용선료는 수조원에 이른다. 선주와의 용선료 협상이 잘 마무리된다 해도 20~30% 인하가 최선이다. 업황 회복이 기약 없는 가운데 큰 규모의 용선료는 구조조정 이후에도 여전히 큰 짐이 될 것이다. 정부 주도의 이번 해운업 구조조정이 용선료 협상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임시방편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총선이 끝나자 선사들이 쫓기듯이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분위기"라며 "해운산업 본질에 입각한 구조조정인지 '구조조정'을 위한 구조조정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