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라이브 인수금융 만기연장과 국민연금 손익계산서
입력 2016.05.23 07:00|수정 2016.05.25 18:17
    • 지난 13일 열린 국민연금 대체투자위원회는 딜라이브(옛 씨앤앰) 인수금융 만기 연장 및 채무조정동의안을 부결시켰다. 벌써 두 번째 부결이다.

      3600억원을 빌려준 국민연금이 동의했다면 딜라이브 인수금융의 만기 연장 및 채무조정은 9부 능선을 넘는 셈이었지만 부동의로 2조2000억원에 달하는 인수금융 대출은 부도 위기에 몰렸다.

      국민연금은 부결 배경에 대해 "확인해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입장에선 케이블TV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낮고, 딜라이브 경영권 매각도 쉽지 않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럴 바에는 이번 기회에 상환을 받자는 생각인 듯하다.

      국민연금의 판단을 이해하면서도 이 같은 결정에 앞서 정확한 손익 계산서를 뽑아봤는지 의문이 든다.

      인수금융 만기 연장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국민연금이 얻을 손익을 따져보면 '익'보다는 '손'이 더 크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대주단 전체로도 손해가 더 크다.

      끝내 인수금융 만기가 연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LG실트론처럼 대주단의 동의를 얻어 기한이익상실을 선언하고 MBK파트너스와 맥쿼리 등이 보유한 국민유선방송투자(KCI) 지분 및 딜라이브 지분에 대해 질권 행사를 한다.

      딜라이브의 대주주는 펀드에서 대주단으로 바뀐다. 국민연금과 새마을금고,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이 20곳의 대주단이 딜라이브의 지분을 투자 금액대로 나눠 갖게 된다.

      문제는 LG실트론은 제조업이지만, 딜라이브는 방송·통신 산업으로 정부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는 점이다.

      케이블사업자는 대주주 요건을 법으로 정하고 대주주 변경시 정부의 심사와 승인을 거쳐야 한다.

      딜라이브에 전문 경영인이 있다고 하지만 인수금융 디폴트, 대주주 변경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딜라이브의 영업 가치 훼손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인수금융 만기 연장을 주도하며 대주단의 간사 역할을 맡은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이 기한이익상실 후 지분 확보를 통한 경영권 행사를 검토하다 이내 접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대주주 변경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기업가치 훼손을 막기 위해, 사모펀드들을 주주로 남겨놓는 형태를 취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도 이 같은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딜라이브는 지난해 11월 전용주 대표이사를 선임한 후 올해 초 공격적인 영업을 통해 가입자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 결과 가입자 이탈이 진정되고 올해 1월과 2월에는 오히려 늘었다. 지난 4월에 전 사장은 올해 말까지 100% 디지털 전환, 신규 서비스 확대 등을 약속하며 IPTV에 빼앗긴 시장을 되찾아오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딜라이브 내부적으로도 고무된 모습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수금융 디폴트가 현실화 될 경우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IPTV 사업자들을 비롯한 경쟁기업들은 딜라이브는 실패한 기업이란 이미지를 씌워 가입자 유치 경쟁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이 내놓은 만기 연장 방안을 보면 '딜라이브의 기업가치 보전과 회복'에 초점을 두고 있다.

      딜라이브의 차입금을 6000억원에서 4000억원으로 줄여주고 금리도 낮추며, 기존의 재무 약정을 모두 없애기로 했다. KCI에 대해선 출자 전환을 통해 이자 부담을 줄이고, 딜라이브의 배당 축소를 통한 투자 재원을 확보할 수 있게 했다.

      딜라이브가 투자를 늘려 영업력을 회복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겠다는 의지이다.

      국민연금 역시 딜라이브의 기업가치 훼손을 원치 않을 것이다. 다른 대주들의 이익과 국민연금의 이익도 같은 방향일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수금융 디폴트가 현실화되면 사모펀드들이 드러내놓지는 못해도 내심 반길 것이란 점이다. 이미 사모펀드들은 딜라이브를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지웠다. 다만 공식적으로 지우진 못하고 있다.

      펀드 입장에선 지분과 경영권을 대주단에게 넘겨주고, 투자에 실패했다는 지적은 받겠지만 사실 MBK파트너스나 맥쿼리 등의 전체 펀드 내 투자 성과를 보면 충분히 손실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 상황에서 딜라이브 투자 회수 우려가 수년 째 꼬리표처럼 따라 붙어왔고 마치 전체 펀드의 위기인 것처럼 그려졌다. 인수금융 디폴트 선언은 사모펀드들에게 공식적인 투자 종결을 의미한다.

      반면 국민연금을 비롯한 대주단은 인수금융이 디폴트 이후 본격적인 딜라이브 경영에 뛰어들어야 하고 그 책임도 져야 한다. LG실트론처럼 (주)LG가 51%의 지분을 쥐고 있어 대주단은 실적 호전을 기다리면 되는 상황도 아니다.

      국민연금이 끝까지 반대하고 다른 대주들은 찬성한다면, 국민연금에만 투자 규모에 해당하는 주식을 주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이 같은 방안은 당장 주가 가치 산정 문제에 당면할 것이고 우리나라 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존재를 무시하긴 어렵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고 현실성이 없다고 하기도 어렵다. 대주단 내 기류를 보면 어떻게든 딜라이브의 가치 회복을 통해 인수금융 회수를 극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연금은 이 주식을 시장에서 매각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투자 회수가 가능할 지 사실 의문이다.

      그 동안 받은 이자 규모를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딜라이브와 KCI는 2008년 이후 대주단에 매년 6%대 후반에서 7%의 이자를 지급해왔다. 그 금액이 1조원에 달한다. 인수금융 원금의 절반 수준이다. 국민연금이 받은 누적 이자만해도 2000억원에 달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국민연금이 지난 1차 때와 달리 2차 투자심의위원회에서는 일부 위원들이 만기 연장에 동의했다고 한다. 향후 딜라이브 경영 계획에 대한 추가 설명을 들은 뒤 다시 판단해보겠다는 입장을 대주단에 전했다고 한다.

      국민연금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 주목된다. 국민연금의 동의 여부를 새마을금고중앙회를 비롯해 수백억원을 투자한 다른 대주단들도 지켜보고 있다. 딜라이브에는 협력업체를 포함해 1500명의 임직원이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