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떨어지는 조선 빅3 자구안
입력 2016.06.09 07:00|수정 2016.06.14 09:14
    '채권단 달래기' 위한 자구계획
    목표기한 3~5년으로 길어
    사안별로 진행여부 재검토할 듯
    • 국내 조선 빅3가 8조원대 규모의 자구안을 확정하고 본격 이행에 들어간다. 대우조선해양이 앞서 발표한 자구계획까지 더하면 그 규모는 10조원을 넘어선다.

      조선 3사는 경영체질 및 재무구조 개선·경영정상화 등 저마다의 목표하에 자구계획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3사의 자구안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공통적으로 시간이 꽤 소요되거나 목표 금액을 맞추기 힘든 내용이 포함됐다. 자구안 규모 자체가 불충분한 곳도 있다.

      ◇ 현대重·삼성重·대우조선, 2020년까지 자구안 실행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은 8일 총 8조4100억원 규모의 구체적인 자구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3~5년에 걸쳐 인력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유가증권과 같은 비핵심자산을 매각한다는 게 골자다. 비주력사업을 분사하거나 물적분할하는 사업재편 방안도 담겨 있다.

    • 현대중공업은 3조5000억원에 달하는 자구안 중 70%가량을 올해 집중적으로 시행한다. 보유 중인 유가증권(현대차·KCC), 매출채권, 부동산 등의 비핵심자산을 정리하는 안이 1조원 규모로 비중이 가장 크다.

      회사가 자구안을 내용 및 시기별로 나눠 구체화하긴 했지만, 유가증권 매각과 인력조정을 제외하곤 목표한 시점에 맞춰 성사시킬지는 미지수다. 특히 부동산 매각의 경우 매수자의 눈높이에 맞춰 목표 금액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이번 자구계획에는 현대오일뱅크 지분활용안이 빠졌다.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현대오일뱅크 지분은 가장 확실한 유동성 확보 수단이자 최후의 카드이다. 그만큼 나머지 자구안의 실효성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다.

      삼성중공업의 자구안은 명확한 제출 의도를 찾기 어렵다. 회사의 자구계획 규모는 3사 중 가장 작다. 나머지 두 회사처럼 사업이 다각화돼 있지 않아 팔만한 자산이 많지 않다. 부동산 매각·인력조정만으로는 획기적인 재무구조 개선이 어렵다.

      앞서 거론된 자구안 중 시장의 기대를 모은 유상증자에 대해선 삼성그룹의 지원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은 채 시장 상황을 종합해 고려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반복했다.

      조선업 구조조정의 핵심인 대우조선해양이 내 놓은 자구안은 실효성이 가장 떨어진다. 생산설비 감축을 위해 매각을 결정한 플로팅 도크와 같은 자산이 글로벌 과잉설비 추세 속에서 잘 팔릴 것이라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다. 임직원 임금 반납 등의 비용절감안도 5년간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장기 플랜이다.

      일각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버티기 작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고사 직전에 이르지 않는 한 대주주인 산업은행도, 정부도 거대한 대우조선을 떠안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고강도 자구안 원한 채권단 압박 때문에…"급하게 마련했다"

      조선 3사는 자구계획을 통해 경영체질 및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정상화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자구안 내용이 실효성이 떨어지면서 이 같은 목적에 부합할 수 있을지 물음표다. 3사 모두 주채권은행의 등쌀에 떠밀려 급하게 자구안을 제출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3사가 자발적으로 제출한 자구안이 아닌, 주채권은행 압박에 못 이겨 보여주기식으로 나열한 계획으로 보인다"라며 "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그때 그때 실행할만한 자구안만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 역시 "자구안을 계획한 대로 모두 실행할지는 미지수"라며 "신용등급 평가에 있어서도 자구안보다는 업황이 더 중요한 모니터링 요소"라고 밝혔다.

      이번 자구안 발표가 당장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차원이 아닌, 업황 악화 우려에 대응하고자 한 성격이 짙다는 의견들도 다수다.

      한 증권사 조선업 담당 애널리스트는 "조선업이 앞으로 이익창출이 어려울 산업이 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라며 "해양플랜트 수요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 가운데 조선사들이 업황 턴어라운드가 이뤄질 때까지 버티기 위한 자구안을 실행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