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 피말린 준비…디폴트 면한 딜라이브 인수금융
입력 2016.07.05 07:00|수정 2016.07.05 19:41
    경영권 매각 무산된 작년 말부터 리파이낸싱 논의 개시
    인수금융 출자전환과 채무조정 두고 대주단 내 의견差 커
    국민연금·새마을금고 등 의사결정 유보하며 동의절차 '우여곡절'
    변동성 심한 산업의 인수금융 투자 어려워질 듯
    • 2조2000억원에 달하는 딜라이브 인수금융은 국내 인수금융 시장에선 '시한폭탄'이었다. 만기를 한 달 앞둔 6월 말이 되어서야 동의 절차를 마쳤지만 인수금융 투자 실패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평가다.

      딜라이브 대주단은 작년 말부터 딜라이브와 국민유선방송투자(KCI) 인수금융 차환 준비에 돌입했다.  채무불이행(Default) 사태가 터지면 국내 M&A 인수금융 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만큼 금융권의 시선은 집중됐다. 리파이낸싱(Refinancing) 과정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은행을 제외하면 가장 투자금이 많았던 국민연금과 새마을금고가 마지막까지 의사결정을 유보하며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리파이낸싱 구조·운용사 책임 분담 등 두고 시각差 커

      국내 20여곳에 달하는 투자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만기 연장에서 시작한 논의는 출자전환까지 확대되며 대주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은행들은 이번 인수금융이 부실채권(NPL)으로 분류될 우려가 있어 단순 만기 연장과 금리 인하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은행 이외의 대주들 중 대출금 연체 비율이나 NPL 등의 제약 지표가 없는 곳들은 출자전환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했다.

      KCI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도 컸다. 딜라이브 배당금 외에 현금창출력이 없는 회사에 추가 지원을 해줄 이유가 없다는 부정적 의견도 나왔다. 국내 M&A 인수금융 거래에서 대주단이 출자전환을 했던 사례가 없던 점도 영향을 줬다. 아직 부도가 나지 않은 채권을 출자전환 해주는 건이라 규정을 정립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MBK와 맥쿼리 등에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고 경영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그러나 케이블TV 사업자는 대주주 변경시 정부의 심사와 승인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이 만만치 않아 현실성이 떨어졌다.

      분기 이자 정도는 부담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MBK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평가다. 지분 투자자인 PEF 운용사가 대출까지 책임지는 전례가 되기 때문이다.

      대신 MBK 등 PEF 지분을 감자하고 딜라이브 매각 차익을 가져갈 수 없도록 구조를 만들었다. 대주단은 매각 시점에 보유 중인 우선주 종류를 바꾸기로 했다. 7%의 보장 수익률을 붙이고 기존 19.99% 대주단 지분을 99%까지 높아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 ◇대주단 100% 동의서 접수 '산넘어 산'

      리파이낸싱 방안이 확정된 것은 3월이었다. 딜라이브 리파이낸싱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됐다. 리파이낸싱으로 딜라이브의 재무상황이 나아지면 추후 재매각도 수월할 것이란 의견도 지배적이었다.

      4월 말 종결을 목표로 대주단 동의 절차가 시작됐다. 대출 만기는 7월이지만 인수금융 이자 지급 시점에 맞췄다.

      예상과 달리 100% 동의를 얻는 것은 첩첩산중이었다. 주요 투자자인 국민연금은 대체투자관리팀이 신설되면서 투자 관리 강도가 한층 세졌다. 금융회사와 달리 대출 투자 관리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심의 위원들의 반대도 거셌다. 앞서 두 차례 진행했던 대체투자심의위원회는 무의미하게 끝났다.

      새마을금고중앙회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국내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리파이낸싱에 소극적인 모습은 다른 대주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일부 대주들은 이들의 결정을 지켜보고 동의 여부를 판단하려 했으나 상황은 복잡해졌다. 4월 말까지 전체 대주단 동의서를 접수하겠다는 계획은 무산됐다.

      그렇게 두 달여가 지난 6월 초, 반대입장을 고수해온 새마을금고가 돌아서며 새 국면을 맞았다. 그간 결정을 미룬 대주들도 우호적으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됐다. 새마을금고에 이어 부산은행도 동의서를 냈고 국민은행과 KB손보, KDB생보와 산은캐피탈이 연이어 이를 따랐다.

      가장 먼저 동의해줄 것으로 보였던 국민연금은 6월 27일에 대체투자심의위원회를 열며 제일 마지막 의사결정자가 됐다. 이를 끝까지 두고 봤던 수협은행도 국민연금의 의사를 따르며 전체 동의의 문을 닫게 됐다.

    • ◇인수금융 투자에 대한 보수적 시각 강화될 듯

      디폴트는 면했지만 이를 계기로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변동성이 심한 산업에 대한 투자를 더욱 보수적으로 바라볼 것이란 평가다. 경영권 투자도 매각을 통한 대출 회수가 불투명할 수도 있다는 점도 일깨웠다. 이미 LG실트론과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인수금융 대출 디폴트로 시장이 한 차례 술렁인 터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IPTV의 등장으로 케이블TV 산업이 이렇게 타격을 받을 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예측이 불가능한 산업은 인수금융 투자가 점점 망설여진다"고 했다.

      이어 "딜라이브 한 건만 놓고봐선 안 되겠지만 해당 건에 투자했던 펀드 운용사들이 국내에서 자금을 받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수조원씩 금융권 대출을 받는 투자 건은 검토를 지양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관계자는 "그간 인수금융 투자는 '땅짚고 헤엄치기'식의 안정적인 투자로 여겨졌다"면서 "그러나 딜라이브 건 이후 담보나 구조뿐 아니라 산업까지 따지고 투자회수가 안 될 경우 대안까지 미리 마련하는 등 고려할 것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기관투자자들이 쉽게 인수금융 시장을 떠나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최근 선순위 인수금융 금리는 4~5% 수준으로 1%대의 시장 금리 대비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투자처이기 때문이다.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저금리 환경에 투자금을 쓸 데가 마땅치 않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면서 "또 다른 인수금융 거래가 나오면 투자 수요가 줄을 이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 7월 이후 재매각 추진 예상

      리파이낸싱은 7월말에 끝난다. 채권단은 이번 리파이낸싱이 딜라이브 재무상황과 영업력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PEF 아래에서 딜라이브는 인수금융 이자내기 바빴다.

      딜라이브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IHQ의 전용주 대표이사를 영입하고 사물인터넷(IoT)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유료 동영상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NETFLIX)와 국내 서비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가입자수도 늘고 있다.

      매각 변수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승인 여부다. 정부가 승인을 내주면 딜라이브에 대한 인수 후보들이 늘어날 수 있다.

      거래에 정통한 관계자는 "리파이낸싱 문제를 해결했으니 이제 매각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면서 "매각 준비를 하면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M&A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