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제약 산업 몸값 높아질수록…기관투자자들은 '주저'
입력 2016.07.14 07:01|수정 2016.07.15 17:36
    신약 개발 기간 동안 투자 계속
    수익 성과 이어질지도 미지수
    신약, FDA 승인도 바늘구멍
    • 바이오와 제약산업은 여전히 뜨겁다. 지난해 한미약품(7조8000억원)을 비롯해 동아에스티(700억원)·크리스탈지노믹스(3500억원) 등의 기술수출과 중·소형 바이오사의 연구개발(R&D) 성과는 시장의 기대감을 키우는데 충분했다.

      짧게는 2~3년이 걸리는 임상단계를 수 차례 거쳐야 하는 신약개발의 특성상 바이오업체들은 끊임없이 자본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일련의 성과들로 높아진 바이오 회사의 눈높이와 황금알을 쫓는 투자자의 열기는 기관투자자들이 투자를 주저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상장만 하면 코스닥 4위?…높은 몸값에 기관들 '주저'

      바이러스를 활용한 항암제 펙사벡(Pexa-Vec, JX-594)을 개발 중인 신라젠은 현재 1500억원 규모의 사모 전환사채(CB)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투자자를 모집 중이다. 회사는 올해 하반기 기업공개(IPO)를 계획하고 있다.

      주관사는 기관투자가에 상장 후 회사의 시가총액을 2조6000억원에서 2조8000억원으로 제시했다. 셀트리온·카카오·동서에 이은 코스닥시장 4위권 수준이다. CB의 전환가액은 2만500원으로, 기업가치평가(밸류에이션)가 1조4000억원이 기준이 됐다.

      회사는 주가가 떨어질 경우 전환가액을 70%까지 조정할 수 있는 가격재조정(Re-fixing, 리픽싱) 조건도 제시했지만 기관투자자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다.

      신라젠 투자를 검토했던 한 IB업계 관계자는 "신약개발이 전 임상단계를 거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고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바이오기업에 투자하는 기관들은 투자금의 3~4배 이상의 수익을 기대한다"며 "신라젠의 기술력은 차치하더라도 너무 높은 가치산정으로 인해 투자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신라젠은 올해 초에도 40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다. 당시 임상 3상까지 필요한 마지막 자금조달이라고 알고 투자에 참여했던 투자자(LP)들은 신라젠이 또 다시 자금조달에 나서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궁경부전암 치료백신(GX-188E)을 개발 중인 제넥신도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28일 이사회를 열어 사모 전환우선주(CPS)를 발행 여부를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회사는 현재 주가대비 10%의 할인율을 적용하고 75%의 가격재조정 조건을 제시했다. 일부 투자자는 지나치게 높은 밸류에이션이 적용됐다는 이유로 투자를 포기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수개월 전 제넥신 투자를 제안 받았던 한 사모펀드(PEF) 관계자는 "제안 받았던 가치가 자체적으로 산정한 것에 비해 2~3배 높다고 판단했다"며 "현재 개발 중인 백신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대체 가능한 처방이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약개발 10000분의 1 확률…FDA 승인까진 바늘구멍

      국내 제조업 전반에 대한 침체가 이어지면서 제약·바이오와 같은 새로운 시장에 대한 투자 수요는 늘고 있다. 관심이 모이는 만큼 수익률이 뒷받침 될지는 미지수다.

      신약 개발 업계에선 전 임상과정을 거치며 신물질이 신약으로 탄생하는 경우는 1만분의 1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만큼 투자가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에 따르면 국산신약 개발에는 평균 약 9.1년이 소요된다. 성과를 내기 위해선 장기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야 하고, 개발과 운영을 뒷받침할 투자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신약이 개발되더라도 세계 시장에서 큰 수익을 올리기 위해선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까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까지 국내 신약이 FDA 승인을 받은 경우는 LG생명과학의 '팩티브'를 시작으로 한미약품의 '에소메졸', 동아에스티의 '시벡스트' 등 소수에 불과하다. 팩티브는 개발 과정에 수천억원이 들었으나 미국내 판권을 보유한 회사가 파산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기대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당분간 제약·바이오에 대한 투자 열기는 뜨거울 가능성이 크다. 새 투자처를 찾는 자금이 몰리며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산업의 가치는 국내 다른 산업군은 물론 해외 동일 사업군에 비해서도 높게 평가돼 있다. 수년간 아무런 실적이 없더라도 회사 가치가 떨어질만하면 신약개발 착수, 임상절차 돌입, M&A 추진 등 소식으로 기대감이 유지되고 투자유치가 이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IB업계 관계자는 "제조업 기반의 투자처가 줄어들면서 제약·바이오 등 새로운 투자처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며 "이러한 수급 상황과 황금알을 쫓는 투자자들의 열망이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기대를 부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투명한 신약 개발과 수익 현실화를 쫓기보다 현재의 현금흐름에 주목하는 투자도 없지는 않다.

      1962년 설립된 신풍제약은 2000년부터 항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에 나서 2011년 '피라맥스'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 유럽에서도 신약 허가가 났고, 아프리카 등 말라리아 주요 발병지에서 제품 등록을 추진 중이다. 기존 제품 생산도 이뤄지고 있다. IBK투자증권과 피에스이이피가 지난 4월 신풍제약의 교환사채(EB)에 400억원을 투자했다.

      투자 관계자는 “신풍제약은 신약을 개발해서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제조 설비를 갖췄고, 그를 통해 매출이 발생하고 있는 회사”라며 “항말라리아 치료제도 개발해 생산 단계에 들어와 있고, 현금흐름의 실체가 있는 회사라는 점을 감안해 투자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