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조선업 구조조정에만 '올인'…미래 사업은 외면
입력 2016.07.15 07:10|수정 2016.07.18 09:19
    로봇 등 非조선 사업 분사 결정
    채권단, '채권 회수' 우선시 여겨
    고부가가치 신사업 투자 축소
    • 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궤도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와중에 비용절감에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현대중공업을 위시한 조선사들이 고부가가치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고 있다. 정부가 조선업 구조조정을 사실상 채권단 주도로 유도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뚜렷해지는 분위기다.

      관련업계에서는 조선사들이 채권단의 시각에서 벗어나 장기 사업플랜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도 조선업 구조조정을 채권단에만 맡기지 말고 조선사들의 미래 먹거리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 자구안 테이프 끊은 현대重…비조선 영역 투자 '축소'

      현대중공업은 채권은행의 의견이 개입한 조선사 자구안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 하반기 대규모 영업손실을 발표한 이후 자본확충뿐 아니라 고강도 인력 구조조정, 사업부 재편, 자산매각 등을 줄줄이 진행하며 전방위 구조조정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올 5월 정부가 취약업종 구조조정안을 발표했고, 구조조정의 키는 채권단이 쥐게 됐다. 현대중공업은 조선 빅3 중 가장 먼저 주채권은행에 자구안을 제출했다. 2018년까지 총차입금을 8조5000억원대에서 6조원대로 감축, 부채비율을 134%대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회사가 제출한 자구안은 인력 구조조정, 유가증권·토지 등의 자산 매각과 함께 지게차·태양광·로봇 등 비조선 사업부의 분사가 포함됐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이 이번 자구안을 통해 한정된 자원을 조선업에 집중시키려는 의중을 뚜렷하게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때문에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비조선 부문에 대한 장기 투자계획이 빠진 점을 우려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자구안이 정해진 시한에 맞춰 급하게 마련되자 회사 내부에서도 당장 이 정도 수준의 자구안을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을 하지 못한 모양새"라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과 달리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은 채권은행의 관리를 받는 조선사들이 아니다. 정부는 국내 조선업 전반의 수주절벽을 우려해 이들 조선사에도 자구안을 요청했다. 정부가 두 조선사의 자체적인 구조조정 방향에 오히려 혼선을 주고 있는 부분이 있는 셈이다.

      ◇ 분사되는 로봇·지게차·태양광…고부가가치 영역

      현대중공업이 분사 또는 분사 후 지분을 매각하기로 한 사업부들은 당장 수익성 향상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분류, 미래에 주력이 될 수 있는 사업들로 평가받고 있다.

    • 로봇사업부의 매출은 연간 2000억~3000억원, 영업이익은 100억~150억원 수준이다. 주로 현대·기아차에서 사용하는 산업용 로봇 생산에 국한돼있다. 전방산업인 자동차·액화표시장치(LCD) 시장상황에 따라 매출이 크게 움직인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로봇사업부를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했었다. 로봇은 구글·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기업들이 핵심 미래 프로젝트로 여기는 분야 중 하나다. 세계적으로 스마트팩토리 시장이 커지고 있어 국가적으로도 육성해야 할 사업으로 꼽힌다. 로봇사업부는 분사 결정으로 '현대중공업'이란 회사 타이틀이 사라지게 된다. 연구·개발(R&D)를 진행하는데 있어 힘이 빠질 전망이다.

      지게차 부문은 현대중공업이 일본·미국 등지에서 명성을 쌓아온 분야다. 태양광 사업 역시 눈독을 들이고 있는 대기업들이 다수다. 이들 사업부는 현대중공업 매출의 5% 수준도 못 채우고 있다는 이유로 일부 지분이 매각 대상으로 선정됐다.

      현대중공업은 "이전부터 분사계획이 있었던 사업부들을 재무구조선 개선 시기에 맞춰 분사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일부 지분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구조조정이 선박 건조에 집중되면서 비조선 사업이 주력 사업이 될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졌다. 조선업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을 염려하며 비조선 부문의 투자 확대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해외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조선업을 둘러싼 무역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특정 선박의 건조만으로는 생존할 수가 없게 됐다"라며 "조선업은 첨단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느린데, 이러한 기조를 바꾸고 핵심사업을 발굴해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 비조선 영역 키운 日 미쓰비시·가와사키重

      일본의 중공섭사들은 앞서 조선업 불황을 경험했다. 이들은 일찌감치 비조선 영역 중 신성장동력이 될만한 사업을 골라 투자를 늘리고 이것을 주축으로 바꾸는 사업구조 재편을 진행했다.

      대표적인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은 1990년대 이후부터 주력사업을 항공우주·철도·발전영역으로 옮겨왔다. 현재 이들의 조선업 매출 비중은 10%에도 못 미친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지난해 10월 조선 부문을 분사해 새 회사를 만들었다. 상선 건조회사와 선체용 블록 제조사를 분리해 별개의 회사들로 출범시켰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컨테이너선·벌크선은 신규 수주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및 환경·교통 및 수송·방위 및 우주·기계 및 설비시스템 등의 4개 영역으로 사업부를 재편했다.

      가와사키중공업도 2002년 조선 부문을 가와사키조선으로 분사했다. 회사의 현재 매출 중 절반가량은 이륜차를 포함한 범용기와 항공우주 사업 부문에서 나온다. 조선업 비중은 8.2%에 그친다.

      같은 '중공업' 회사인 현대중공업은 여전히 매출의 절반가량이 조선·해양부문에서 나오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의 중심을 조선업에만 놓고 진행되는 점이 우려스럽다는 시각이다. 미래기술에 대한 투자 자체가 배제돼 있다는 것이다.

      ◇ 신성장동력 '대규모 투자' 필요…이해관계 꼬인 구조조정이 방해

      조선업 구조조정에서 정부, 채권단, 기업들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현재 구조조정의 키는 사실상 채권단이 쥐고 있다. 채권단 입장에선 산업에 대한 이해보다 재무적인 요소들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기업도 정부의 조치만 기다리며 뒷짐만 진 채 위기 대비에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사업부 조정능력이 부족한 산업은행과 같은 국책은행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를 얼마나 고려할지 의문이다"라며 "구조조정에서 늘 정부가 관여하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이번에도 정부가 방향을 잡아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기업들이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분석하면 위기를 예측할 수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해 지금은 미래 먹거리를 찾을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미래사업을 분간하는 눈을 가진 경영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업들이 지속적인 투자를 반복한다해도 찾기 어렵고, 찾더라도 안착시키기 어려운 게 신성장동력 사업이다. 한국의 조선업 구조조정의 결과는 '미래'가 아닌 '현재'로 국한돼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