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 같은 유증 다른 위상
입력 2016.08.30 07:00|수정 2016.08.30 07:00
    삼성엔지니어링, 그룹 지원수혜 가능성 독점
    독자생존 해야 하는 삼성중공업
    "합병 재추진시 엔지니어링 주도권 잡을 가능성"
    • 삼성중공업이 우여곡절 끝에 1조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단행을 결정했다. 현재 재무상황만 놓고 보면 당장 증자가 필요한 상황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인도 지연과 수주 가뭄 등 경영환경 악화가 지속되고 있어 이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 차원이라는 평가다.

      1년 전에 있었던 삼성엔지니어링 유증과 여러모로 비교될 수밖에 없다. 유증 효과부터 오너와 그룹의 지원 가능성, 업황의 전망 등 제반 상황을 살펴보면 그룹 내에서 두 회사의 입지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 #1 유상증자 직접적 효과

      삼성엔지니어링은 해외 프로젝트에서만 1조원의 손실을 내며 자본금 전액 잠식상태에 빠졌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바로 1조원이 넘는 유증을 결정했고 이를 통해 자본금 전액 잠식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삼성중공업은 당장 현금흐름에 문제는 없는 상황이었다. 부채비율이 7000%를 넘는 대우조선해양과 비교하면 삼성중공업은 300% 미만으로 낮다. 미래의 불투명한 경영환경에 대한 대비 차원의 성격이 짙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유증 이후 정상화에 접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면, 삼성중공업은 유증 이후에도 신규 수주절벽 등 헤쳐나가야 할 앞길이 험난하다.

      #2 오너의 ‘코멘트’

      삼성엔지니어링이 유증을 단행하자 이재용 부회장은 3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론 실권주가 거의 나오지 않아 유증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삼성엔지니어링이 보유한 3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전량을 매입해 1.54%의 지분을 확보했다. 오너 일가의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첫 보유가 됐다.

      삼성중공업 유증에선 채권단과 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개입할 이유가 없다”며 이 부회장의 참여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삼성중공업 지분을 들고 있는 각 계열사들의 유증 참여 가능성은 크다. 실권주가 발생할 경우 이를 계열사들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시끄러워 질 수는 있다. 이 부회장의 코멘트 유무로 삼성엔지니어링은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계열사로, 삼성중공업은 그 반대로 인식되고 있다.

      #3 인력 구조조정 결과

      삼성엔지니어링은 2013년부터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2012년 8800명에 달했던 인력(프로젝트 계약직 포함)은 연말까지 6000명 이하로 줄어든다. 검증되지 않은 인력 위주의 구조조정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다. “가장 많은 인력을 충원했던 2011~2012년, 당시 신입사원들이 이제는 주요 프로젝트 1~2개 경험을 축적한 엔지니어가 됐다”고 한다.

      삼성중공업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2018년말까지 전체 인력의 30~40%를 효율화한다는 계획 하에 올 연말까지 1500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실시한다. 문제는 설계, 연구개발, 생산관리 등 핵심전문인력 유출도 발생하는 점이다. 조선업 자체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지는 가운데 중국 등 해외 조선업체들의 러브콜로 ‘엑소더스’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경영환경이 개선된다고 해도 능력있는 인력들이 부족할 수도 있다.

      #4 그룹의 직접 수혜 vs 독자생존

    • 삼성엔지니어링은 유례없는 삼성그룹 시설투자(CAPEX) 효과를 독식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디스플레이 등 올해 관계사 수주만 3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한국투자증권은 “관계사 공사기간은 1년에서 1년6개월로 3년 이상인 해외수주에 비해 3배의 이익 영향력을 보인다”며 “3조4000억원의 관계사 공사는 10조원의 해외수주에 버금간다”고 평가했다. 이를 통해 연간 1500억~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게 된 셈이다.

      삼성중공업은 관계사 물량을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물산으로 넘겨주면서 사실상 독자 생존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0월 이후 6월말까지 신규 수주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수주 잔고는 지난 4년 평균 362억달러, 지난해말 354억달러에 비해 크게 낮아진 288억달러 수준이다. 최근 유가 상황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해양생산설비 발주 재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상선 발주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인데 수년간 이어지고 있는 공급 초과 상황이 해소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의 유상증자 추진, 그리고 원샷법 시행으로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합병 가능성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회사 측은 이를 부인하지만 ‘선(先)합병 후(後)구조조정’에서 ‘선구조조정 후합병’으로 순서가 바뀔 수도 있다고 관련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두 회사의 입지는 2014년 합병 무산 때와는 많이 바뀌어있을 것이라는 평가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상대적으로 이르게 클린화 작업에 나서 원가구조와 리스크 관리를 강화했다. 그룹의 지원 규모 측면까지 감안하면 여력으로나 위상으로나 삼성엔지니어링이 합병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