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겉도는 해운정책…"정부 한진해운 하역료 지급보증 급선무"
입력 2016.09.05 16:00|수정 2016.09.05 16:00
    한진해운 선박 79척 해상에 발묶였는데…한진에만 책임지라는 정부
    대체선박 투입보다 하역료 지급보증이 시급
    항만으로 들어오는 한진해운 선박 수 증가 中
    • 한진해운발(發) 물류사태의 파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금융당국이 또 다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은 한진그룹의 몫이라고 주장하며 부수적인 대응에만 나서는 모습이다.

      해운업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한진해운 선박 하역료 지급보증부터 직접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연체금과 관련해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컨테이너선사의 특성상 시간이 흐를수록 손실만 빠르게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다.

      ◇ '법정관리' 한진해운 선박 79척 발묶여…韓 선사 신인도 저하

      현재 한진해운이 용선주·화주 등에게 지급해야 할 비용은 크게 ▲용선료 ▲하역비·터미널 사용료 ▲운하 통과료 등으로 나뉜다. 이러한 대금을 내지 못해 전 세계 23개국에서 운항을 멈춘 한진해운 선박 수가 전체의 62%(79척)에 달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하역료 지급이다. 통상 하역비는 해당 선사나 국제물류주선(포워딩)업체가 항만에 지급한다. 선사가 지급하지 못할 때는 화주들이 대신 지급하고 물건을 하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벌크선사에 한해 가능한 얘기다. 불특정 다수의 화물을 싣는 컨테이너선사는 화주를 찾기가 쉽지 않다. 컨테이너 선박에 실린 화물의 채권·채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정확한 화주를 파악하는 일부터가 어렵다. 결국 하역비를 처리해온 선사가 극한상항에 몰린터라 이를 처리할 주체가 없다.

      용선료의 경우 용선주마다 다르지만 통상 하루 수천만원에 이른다.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액은 아니더라도 일부라도 갚아나가 줘야 선박이 압류되는 피해사례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운하 통과료 역시 일일 비용이 대형선박의 경우 수 천만원을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진해운의 연체금 증가 사태는 국내 대다수 선사들의 신인도를 훼손시킬 것이라는 분석이다. 해운업계 전문가들은 "현대상선뿐 아니라 국내 중소형 선사들의 신인도가 동시에 하락하는 격"이라며 "지금은 가장 시급한 일은 누군가가 나서서 밀린 연체금을 지급해주겠다고 선언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 정부, '지급보증' 나서야 하는데…책임 전가하며 '우왕좌왕'

      정부가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하는 한진해운 사태 '합동비상대책반'을 꾸렸지만 뾰족한 대응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며 업계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아침 "한진해운이 아직 한진그룹의 계열사이기에 이번 물류사태는 한진해운과 대주주가 책임을 져야 한다"라며 "대주주가 해결 노력을 보인다면 채권단의 신규 자금지원을 모른척하진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해양수산부 장관은 한진해운 회생절차를 진행 중인 법원이 물류대란 해소에 동참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정부 이해관계자들 간의 이견조율이 안되는 상황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금융권에서 해운산업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라며 "금융당국, 채권단, 해수부 등 누구도 민간 전문가들에게 사태 해결책을 묻지 않고 있다"라며 "정부가 마련 중인 항만의 화물적체·수송대책도 현실성이 떨어지거나 시일이 오래 걸리는 방안들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투입하겠다는 한진해운 대체선박들이 기대만큼 이른 시일 내에 투입될 지도 미지수라는 것이다. 미국의 연휴 시즌을 앞두고 이미 선박들이 예약을 채워놓았고, 공급과잉이 심각하다 해도 항해 중인 선박을 한진해운의 노선에 재빨리 투입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한진해운 대주주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한진해운은 한진그룹에서 분리된 것으로 봐야 한다"라며 "한진그룹이 한진해운을 도울 여력이 있었다면 사태의 심각성을 이렇게까지 키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 관계자들은 정부가 나서서 밀린 연체금을 지급해주겠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진그룹에 차후에 구상권을 청구하더라도 우선은 정부가 선지급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연체금 지급보증 없이는 한진해운 물류사태의 피해규모가 급속도로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8300곳의 화주들이 16조원에 달하는 화물을 한진해운에 맡기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이처럼 갈피를 못 잡는 데에는 전 세계적으로 한진해운처럼 큰 선사가 회생절차를 신청한 전례가 없기 때문인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국내에서 비교하자면 한진해운 법정관리 후폭풍은 지난 2001년 조양상선이 파산할 때와 닮아있다. 조양상선은 한진해운보다 규모가 훨씬 작았다. 그런데도 발이 묶인 컨테이너를 찾는데만 수개월이 소요됐다. 한진해운 사태로 인한 해운업의 피해를 더는 키우지 않기 위한 업계의 주장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또 다른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