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자의반 타의반' 부품 내재화 전략 수정
입력 2016.09.19 09:04|수정 2016.09.22 11:09
    프린팅 사업 매각에 효용성 떨어진 투자지분도 매각
    신사업은 M&A와 신규 지분투자로 확대
    삼성SDI 배터리 폭발로 계열 부품사 신뢰도 저하
    이재용 등기이사 선임으로 내재화 전략 수정 가속화 가능성
    • 삼성전자가 그동안 구축했던 내재화 전략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면 수정되고 있다. 변화하는 시장 흐름에 맞게 다양한 글로벌 업체들과의 협업을 늘려가고 있는 와중에 갤럭시노트7 배터리 폭발로 계열 부품사들에 대한 시선은 한층 냉정해졌다. 관련업계에선 이재용 부회장 시대가 본격 개막된 이상 이 같은 움직임이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비주력 사업에 대한 정리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지난 12일 프린팅 사업부를 휴렛팩커드(HP)에 1조1160억원에 매각한다는 소식을 전한지 일주일도 안돼 협력 관계를 맺어온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지분을 매각했다.

      삼성전자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의 지분 3%의 절반인 1.5%(630만주), 미국의 스토리지(HDD) 전문 기업인 시게이트(Seagate Technology)의 주식 1250만주(지분 4.2%) 전량을 매각했다. 삼성전자는 또 미국의 반도체 설계업체 램버스(Rambus)의 지분 4.5%(480만주), 일본 샤프 지분 0.7%(3580만주)를 전량을 매각했다. 지분 매각 대금은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가 밝힌 지분 매각 배경은 “사업 환경의 변화에 맞춰 과거에 투자한 자산을 효율화 해 핵심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것”이다. 매각 대상은 대부분 사업성이 떨어졌거나 삼성전자가 내용을 이미 습득해 협력의 효용성이 떨어진 것들이다.

      반대로 필요한 사업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흡수하고 있다. 올해 미국의 클라우드 서비스업체 조이언트와 캐나다 스타트업 광고 업체 애드기어 인수에 이어 북미 가전 업체 데이코를 인수했다. 최근 트렌드인 IoT(사물인터넷)와 인공지능 등 신기술, 프리미엄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미래를 이끌어 갈 새로운 먹거리 발굴을 위해 이탈리아 자동차업체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FCA)의 자동차부품 사업부문 인수를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IT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 IT업계 트렌드 변화 속도는 매우 빨라 내재화 전략으로 이를 따라잡기엔 사실상 불가능하고 중간에 방향성을 바꾸기도 어렵다"며 "삼성전자는 불필요한 사업은 손해를 보면서도 팔고, 필요한 사업에 대해선 과거에 비해 과감하게 투자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새로운 파트너는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BYD의 지분 1.92%를 매입했다. 이로써 전기차 세계 1위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게 됐다.

      또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는 중국 TCL그룹과 11세대 초대형 LCD 생산능력 확보를 위해 21억 위안(35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결정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TCL그룹이 11세대 LCD 라인 생산법인으로 신설하는 ‘심천시 화성광전 반도체 현시기술 유한공사’의 지분 9.8%를 취득하게 된다.

      추석 연휴 동안 이재용 부회장은 인도를 방문해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만나면서 인도 시장에서의 사업 확대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사업 구조조정이 이처럼 자의적으로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갤럭시노트7 배터리 폭발 사건으로 부품 계열사인 삼성SDI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배터리 폭발의 주범으로 삼성SDI가 지목됐고, 삼성전자는 당분간 중국 ATL을 갤럭시노트7 단일 공급업체로 두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사건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애플의 아이폰7 출시 전에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이 실패했고, 그동안 쌓아 온 제품 신뢰도도 떨어졌다. 삼성SDI가 만든 배터리가 문제가 된 만큼 삼성SDI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 부품사들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이 계획보다 빨리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선임된 것도 중요하다는 평가다. 그동안 구축해 온 삼성전자의 부품 내재화 전략도 전면 수정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로 선임된 것은 이제 삼성전자를 직접 챙기겠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삼성전자 기업가치 제고를 최우선으로 두겠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캡티브마켓(전속시장)에 의존해 온 계열 부품사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더 높이지 못한다면 경쟁력을 갖춘 해외 파트너에 그 자리를 내줘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1960년대 개발시대 이후 재벌 그룹들은 주력업체를 중심으로 확장을 거듭해 많은 계열사들을 거느린 것을 선단(船團)식 경영을 계속해 오고 있다"며 "자의반 타의반으로 진행되고 있는 삼성전자의 내재화 전략 수정은 국내 재계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