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이 피하면 개인이 산다? 이상해진 공모주 시장
입력 2016.09.22 07:00|수정 2016.09.26 13:50
    기관 수요예측 저조했던 자이글
    일반공모 청약에선 3조원 '대박'
    반면 두올은 개인 청약 흥행실패
    "싸게 사고 크게 노린다" 인식 탓
    IPO 일반참여 늘어난 것도 한몫
    • #1 지난달 기업공개(IPO) 수요예측을 진행한 자이글은 기관투자가의 냉담한 반응으로 수요예측 흥행에 대실패했다. 공모가는 제시한 밴드의 절반 수준에서 결정됐다. 그러나 곧이어 진행한 일반공모 청약에선 분위기가 딴판이 됐다. 개인들로부터 무려 3조원이 넘는 청약증거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2 현대차 그룹 핵심 협력업체인 두올은 높은 기술력과 안정적인 실적 성장세를 인정받았다. 수요예측 과정에서 기관들의 호평을 받았고,  공모가는 밴드 상단으로 확정됐다. 하지만 일반공모 청약에서는 외면을 당하다시피했다. 겨우 134억원의 청약증거금이 들어오면서 간신히 청약미달을 피하는데 그쳤다.

      공모주 투자시장에서 '기관'과 '일반투자자'의 선호가 극명하게 엇갈리기 시작했다. 기관에서 보수적으로 접근한 기업이 일반공모 청약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반대로 기관의 호평이 이어진 기업이 일반공모에서 고개를 떨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올해 진행된 거래 중 자이글 외에도 대유위니아, 해성디에스, 용평리조트, 한솔씨앤피 등에서 이 같은 현상이 계속 확인되고 있다.

      김치냉장고 '딤채'로 유명한 대유위니아는 수요예측에서 밴드 최하단인 6800원으로 공모가를 확정했다. 하지만 일반 청약에선 자이글처럼 2조원의 증거금을 모으며 흥행몰이를 했다. 용평리조트는 아예 밴드보다도 아래에서 공모가를 확정했지만, 2조7000억원의 시중 자금을 끌어모았다.

    • 반면 수요예측에서 선전했지만 일반공모 청약에서는 투자자들의 관심을 못받는 기업들도 여럿 생겨나고 있다.  두올 외에도 한국자산신탁, 대림씨엔에스, 아이엠텍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기관 대상 설명회(IR)에서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투자자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인 한국자산신탁은 일반공모 청약에서 고작 1900억원이 납입됐다. 대림씨엔에스와 아이엠텍 역시 기관들의 관심 속에 밴드 최상단으로 공모가를 확정했지만, 일반공모 청약에서 5000억원도 채 끌어들이지 못했다.

      그간 공모주 투자시장의 '정석'은 이렇지 않았다. 즉 수요예측에서 기관과 대형 운용사들이 선호하는 기업은 개인투자자들도 인정하고 같이 투자를 해왔다. 기관들의 전문적인 기업분석 능력과 데이타 이해도를 신뢰한 때문.

      하지만 최근 벌어지는 현상은 거의 '변칙'에 가깝다는 평가다.  한 팀장급 증권사 IPO 실무자는 "이전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이라며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수요예측 및 공모 결과를 예측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가장 주된 분석은 공모주 투자시장이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재정거래'(Arbirtageㆍ무위험 차익거래) 시장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즉 풍부한 유동 자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모주 시장은 '싸게 사면 무조건 크게 먹는다'는 인식이 형성됐다는 것.

      여기에 ▲IPO 시장에 참여하는 일반투자자의 풀(pool)이 넓어진 점과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상장 대박의 학습효과 등이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2010년까지 연간 2조~3조원 규모의 자금이 오가던 국내 IPO 시장은 최근 10조원대 시장으로 커졌다. 2006년 당시 사상 최대 거래였던 롯데쇼핑 IPO에 참여한 일반청약자는 2만3000명에 그쳤다. 하지만 수년 뒤인  2014년 제일모직 청약 참여자는 11만3000명에 달했다. 저금리가 지속되며 고액자산가는 물론, 일반 개인투자자들까지 공모주 시장에 눈을 돌렸다.

      지난 2014년 12월 상장한 '제일모직'은 '공모주 투자=대박'이라는 등식을 투자자들에게 각인시켜준 사례로 꼽힌다.

      당시 시장 예상보다 다소 낮은 5만3000원에 상장한 제일모직은 급등을 거듭하며 18만원 부근까지 주가가 올랐다. 공모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불과 3~4개월만에 334%라는 기록적인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이러다보니 시장 가격보다 다소 싸게 나온 공모주에 투자해 '대박'을 노리는 게 투자 패턴화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결국 수요예측 흥행이 저조해 밴드 하단으로 공모가가 확정된 주식은 기업내재가치와는 상관없이 '싸니까 일단 사자'라고 생각, 개인들이 더 선호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지난해 말 진행된 한국맥널티 등 일부 공모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측됐다.

      투자자는 늘어났고 연간 공급되는 IPO는 100여건으로 한정돼있다보니 공모가가 밴드보다 낮다고만 하면 '묻지마 투자'를 감행하는 일도 빈번해졌다는 지적이다.

      다른 대형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이런 추이는 손실을 입는 사례가 늘어나면 자연스레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본다"며 "선진 증시처럼 일반투자자는 IPO 공모에 간접투자만 허용하는 식으로 혼란을 방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