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출자자들 위한 정책자금 아냐"
"출자자 어디서 구하나"…문화투자 운용사 간 '옥석 가리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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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올해부터 문화콘텐츠에 투자한 펀드가 회수한 투자금을 다른 영화·드라마에 재투자하는 것을 제한했다. 펀드 출자자가 제작한 작품에 주로 투자하던 관행을 개선하고 펀드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간 문화콘텐츠에 투자하던 벤처캐피탈(VC) 업체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는 올해부터 모태펀드 문화계정의 출자를 받아 조성하는 펀드들의 '재투자'를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마련했다. 문화계정 자(子)펀드 가운데 재투자가 허용된 펀드만 '재투자'를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허용 여부는 펀드 운용현황 점검 및 정기 조합원 총회 과정을 거쳐 결정된다.
지금까지 문화콘텐츠펀드는 대부분 '재투자'를 해왔다. 영화·드라마·공연 등의 경우 투자부터 회수까지 걸리는 시간이 6개월~1년 정도로 비교적 짧아, 펀드 청산 전 투자금을 배분하기보단 재투자하는 일이 일반적이다. 모태펀드 타 계정 출자를 받은 펀드엔 회수한 투자금을 다시 투자하는 '재투자'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정부가 '허가'받은 운용사만 '재투자' 할 수 있도록 제한한 이유는 펀드가 출자자의 의도에 따라 운용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모태펀드는 정책적 목적을 가진 자금이므로 영세한 제작사의 작품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투자돼야 한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실제로 그간 펀드들의 재투자 자금은 주로 대기업 제작·배급사 등의 전략적 출자자의 프로젝트에 집행됐다.
모태펀드 한 관계자는 "정책자금이 투입된 (문화계정) 펀드가 사실상 전략자 출자자의 '프로젝트 리스크 헤지용'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펀드가 영화배급사 등 대기업 계열 전략자 출자자의 자금을 받다보니, 이들이 제작한 작품 가운데 흥행 가능성이 낮은 작품에 투자하도록 요구받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펀드의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회수한 금액을 활용해 재투자를 할 경우 펀드 손실은 더욱 커진다는 설명이다. 지난 2012년 청산한 한 대기업 계열 VC가 운용한 펀드는 재투자를 통해 결성금액(100억원)의 225%, 225억원을 투자해 수익률이 마이너스 29%로 떨어졌다. 결성금액 만큼 투자한 후 해산했을 경우 수익률은 마이너스 13%다. 모태펀드 문화계정 펀드들의 수익률은 2012년부터 줄곧 마이너스 10%대를 기록했다. 2015년 반기 기준 펀드 수익률은 -14.46%다.
VC들은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영화·드라마 등에 투자하는 VC들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다년간의 문화콘텐츠 투자 이력을 보유한 VC업체 운용역는 "대기업 계열 출자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들 작품에 투자하는 것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순 없다"면서도 "여전히 문화콘텐츠 투자에 대한 보수적인 분위기라 제작·배급사 외 다른 출자자를 확보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올해 결성된 펀드부터 적용되는 만큼 시간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VC업체 운용역은 "지금까지 문화콘텐츠에 투자하던 VC들이 대기업 계열 전략적 출자자의 자금을 유치하며, 투자처 발굴 및 출자자 확보에 안일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문화콘텐츠 투자하는 VC들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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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6년 10월 09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