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닫은채 추진한 'IPO 테슬라룰', 부작용 우려
입력 2016.10.18 07:00|수정 2016.10.18 07:00
    '자율' 전제로 '풋백옵션' 책임 부여
    "테슬라룰 선택할 주관사 있을지 의문스러워"
    발행사가 단일가 공모 압박하고 주관사에 책임전가 우려도
    • 금융당국이 올 연말까지 도입하기로 한 '상장 공모 제도 개편 방안'(일명 테슬라룰)을 두고 증권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테슬라룰이 주관사의 자율성을 일부 인정하는대신, 환매청구권(풋백옵션)이라는 더 큰 리스크를 부담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정책 발표 전 의견 수렴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이달 초 금융당국이 발표한 테슬라룰은 적자를 내고 있어도 성장성이 높은 기업이라면 상장할 길을 열어주자는게 주요 내용이다. 미국의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같은 기업을 발굴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규제 완화의 전제조건으로 풋백옵션을 의무화했다는 것이다. 풋백옵션은 지난 2007년 5월 폐지된 제도로, 상장 후 일정 기간 동안 주가가 공모가 이하 일정 수준으로 떨어지면 상장 주관사가 이를 약속한 가격(당시 공모가의 90%)으로 되사줘야 하는 제도다.

      구체적으로 ▲이익미실현(적자) 기업 상장의 경우 ▲주관사가 수요예측 참여기관을 자율적으로 선정하는 경우 ▲공모가 산정근거를 자율 기재하는 경우 ▲단일가격 공모의 경우 풋백옵션 부담을 주관사가 져야 한다.

      풋백옵션은 일반투자자 공모분에 적용된다. 예컨데 1000억원 규모의 공모를 진행한다면, 주관사는 총액인수분 리스크 부담과는 별도로 200억원(20%) 규모의 풋백옵션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

      한 대형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기존 방식으로 상장을 진행하는 경우엔 풋백옵션 부담이 없다"며 "과연 자신의 의지로 테슬라룰을 따라 상장을 진행할 주관사가 나올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신설된 적자기업 상장 요건의 경우 풋백옵션 부담 기간이 3개월로 가장 길다. 수익이 없고 성장 기대감만으로 상장하는 기업의 경우 주가 변동폭이 클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리스크를 비교적 장기간, 고스란히 부담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평가다.

      게다가 코스닥은 물론, 유가증권시장도 이미 적자기업도 상장할 수 있는 '규모 요건'을 이미 적용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처럼 초기 성장기업이지만 비교적 안정성이 보장되는 기업의 경우 기존 상장요건을 따라가도 무방하다. 굳이 풋백옵션 부담이 딸린 새 제도를 이용할 유인이 없다.

      금융당국은 풋백옵션을 부담할 경우 발행사의 신주인수권을 취득할 수 있다는 '당근'을 제시했다. 이 역시 코스닥 상장의 경우 이미 주관사 의무인수분(3%)이 존재하는데다, 상장전공모(Pre-IPO) 방식으로 투자하는 게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부작용만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발행사와 주관사의 역학관계를 무시한 제도라는 것이다. 예컨데 발행사가 새 제도를 핑계로 최대주주나 재무적투자자(FI)가 원하는 단일가로 공모를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이에 따른 풋백옵션 부담도 주관사에게 떠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업계에는 지난 1999년 한국가스공사 IPO때 풋백옵션을 약속한 대신증권과 한화증권의 사례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당시 상장 첫날부터 주가가 급락하며 두 증권사는 풋백옵션으로만 6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봤다.

      당시 대신증권은 계열사인 대신생명(이후 2003년 녹십자에 매각)에 가스공사 지분 일부를 매각하며 떠넘기기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화증권은 대규모 손실을 낸 뒤 IPO부서를 사실상 해체했다.

      시장 의견 수렴도 미진했다는 평가다. 테슬라룰을 처음 언급한 건 지난 9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었다. 이후 한달 만인 이달초 제도 개편 발표가 나왔다. 금융당국은 임 위원장의 언급을 전후해 각 증권사를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했다.

      당시 상당수 증권사가 초안대로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공모가 산정 근거 자율 기재 등 이전부터 업계에서 요구해오던 규제 완화를 받아들이면서 풋백옵션이라는 '전제'를 붙이는 건 부당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결국 발표된 테슬라룰엔 업계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다른 대형증권사 IPO 담당자는 "규제를 풀고 자율성을 높여준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투자자 보호에만 초점을 맞춘 제도가 됐다"며 "금융당국이 기대하는 상장 공모 시장 활성화로 연결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