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 매력에도'…일본자본시장, 자금 조달 대안으론 '아직'
입력 2016.11.14 07:00|수정 2016.11.16 06:23
    20년만에 등장한 '사무라이본드', 원화조달 '창의적' 활용 제시한 한화케미칼
    'A'급 기업 자금조달 수단으로 확산까진 아직
    금리 메리트보다 더 큰 '불확실성'…오히려 '색안경' 끼는 시장 의견도
    • ‘마이너스 금리’로 대표되는 일본 자본 시장이 국내 기업의 새로운 자금 조달처로 언급되고 있다. 국내에서 회사채 시장의 외면을 받아온 한화케미칼이 일본에서 조달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인 덕분으로 풀이된다. 그간 국내 시장에서 발행에 실패하거나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했던 A급 기업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아직 대안으로 활용하기엔 어려움이 더 많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오히려 국내 채권발행이 극도로 경색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도와 달리 '자금조달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부정적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 한화케미칼은 200엔 규모의 3년 만기 사무라이 본드(엔화 표시 외화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현지 기준 발행 금리는 0.72%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발행에 나선 유사등급 회사채(Citic Corp, A-) 대비 약 20bp의 프리미엄을 지급했지만, 최종적으로 조달 비용 절감엔 성공했다. 향후 원화로의 스왑(Swap)비용 및 기타 제반 비용을 감안했을 때 국내 기준으로 약 2.4%~2.5% 수준에서 결정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한화케미칼의 국내 신용등급(A+) 민평 금리 수준 대비 약 30bp 정도 조달비용을 아낀 것으로 회사는 설명했다.

      발행사에 유례없이 유리해진 일본 금융시장 조건이 반영됐다. 일본 중앙은행이 올해초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면서 유동성이 풍부해졌고, 낮은 수준의 국채금리 대비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제공하는 회사채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무라이 채권 시장 내 수급 상황도 원화 조달에 유리해진 상황이다. 국내 기업들은 사무라이 채권을 주로 금융 공기업과 캐피탈사 등 민간 금융업체들이 엔화를 활용해 달러를 스왑 형식으로 마련하거나 현지 사업을 위한 엔화 확보를 위해 활용해왔다. 하지만 달러-엔화 간 베이시스 스왑 금리 하락 등 달러 조달비용이 커지며 장점이 없어졌다. 전체 사무라이 채권 발행 중 한국 기업 비중은 2012년 약 15.9%(3177억엔)에서 지난해 5.7%(1140억엔)으로 줄었고, 올해는 한화케미칼 발행 이전까지 한 건의 발행도 없는 수준으로 급감했다.

      일본내 기관 등 투자자들 입장에선 국내기업 발행물량이 줄면서 지역별·국가별 포트폴리오 공백이 생겼다. 이 같은 틈새를 활용해 한화케미칼이 기존 엔이나 달러 대신 원화 조달용으로 활용하는 '응용 방안' 첫 사례를 보였다.

      기존 국내에서 회사채 발행을 통한 원화 조달이 어렵거나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제시해야했던 'A급' 기업들에겐 일본 금융시장을 활용한 선례를 남긴 셈이다. 하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금리 장점보다 아직까진 '불확실성'이라는 한계가 더 크다는 분석이다.

      우선 보수적인 일본 금융기관의 특성이 언급되고 있다.

      회사채시장이 발달한 미국·한국과 달리 일본 기업들은 대부분 은행 차입 등 간접금융시장을 활용해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다. 회사채가 대부분 시장에서 거래되기보다 보유한 기관들이 만기까지 물량을 보유하는 모습을 띈다. 발행사가 일본에서 투자자 혹은 금융기관에 널리 알려질 정도로 사업을 진행하거나, 직접 금융기관과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는 비용이 소요된다는 분석이다.

      일본 신용평가사를 통해 'A' 이상의 등급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도 장애물로 꼽힌다.

      2008년 첫 일본내 신용등급(JCR)을 확보한 한화케미칼은 올해 6월 기존 'BBB+'에서 'A-'로 신용등급이 한 등급 상승하면서 발행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했다. 최근 한화케미칼의 주요 자회사들 실적이 개선된 점이 반영됐다. 국내 신평사에서 한화케미칼을 부정적으로 보는 '그룹내 위치상 다른 계열사에 대한 지원가능성이 큰 점'은 일본에선 비교적 적게 반영됐다.

      무엇보다 '환율'이라는 불확실성에 노출돼야 하는 점이 근본적 한계로 꼽힌다.

      한 증권사 크레딧 연구원은 "아무리 낮은 금리로 조달했다 하더라도 원화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통화스와프(CRS)나 포워드 계약 등 장외 거래 과정에서 개별 프리미엄도 붙을 수 있다며 "금리조건 외에 환율 변동이라는 불확실성까지 고려해야하는게 자금운용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이진 않다"고 분석했다.

      결국 당장 일본 시장을 활용할 수 있는 국내 기업으로는 그간 일본계 투자은행 등 금융권과 거래가 활발했던 롯데그룹과 신용등급을 확보한 한화그룹이 언급되고 있다. 롯데그룹 역시 호텔롯데 등 주요 계열사가 지난해 기업공개(IPO) 등 지배구조개선안을 추진하면서, 사무라이 본드 발행을 위한 재무성 등록까지 마쳐놓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후 검찰 수사 등 부정적 이슈가 겹치며 발행이 연기됐다.

      명확한 발행 목적 없이는 오히려 국내 채권 시장 참여자들에게 부정적 시각을 씌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크레딧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처럼 현지에서 사업을 크게 진행하는 기업이거나, 원자재를 시장에서 바로 사서 조달해야 하는 기업의 경우 환율 리스크를 줄이고 자금 조달 다변화를 꾀했다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국내 조달이 어려워 해외에서 방안을 찾은 기업은 오히려 자금조달이 시급해졌다는 부정적 신호로 이해될 수도 있다"라며 "일본의 저금리 상황을 모르지 않을 민간기업들이 20년간 국내 자금 조달로 활용하지 않은 데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