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법칙'에 무너진 황창규 신화
입력 2016.11.15 07:00|수정 2016.11.16 06:27
    [취재 노트] '방만 경영 구조조정·통신 경쟁력 확보·정부로부터 독립' 세 가지 약속
    마지막 고리 '정부로 부터 독립'이 발목 잡아
    시장 불신 극대화…고질적인 '정부 트라우마' 팽배
    • "기존 회장의 연임이 무산된다면 12월쯤 후보 윤곽이 나오고, 1월에 검증이 시작될 겁니다. 3월에 주총 거쳐 선임되면 적어도 6개월간은 통신업에 대해 스터디를 하셔야겠죠. 낙하산 인사다 보니 회사에 대해 아는게 전혀 없으실테니까요. 그러면 내년 하반기로 훌쩍 지나겠네요.

      "새 회장님들이 부임 첫해는 보통 구조조정을 진행하십니다. 그래야 임기 막바지에 ‘숫자’가 좋아져서 연임하기 유리해지거든요. 이 프로세스가 그간 보인 'KT의 법칙'입니다. 사실 황창규 회장이 부임해 안팎이 시끄러웠을 때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2014년 이석채 전 KT 회장이 배임·횡령 혐의로 중도퇴임하고, KT는 새 수장으로 황창규 회장을 임명한다. 그간 ‘황의 법칙’으로 알려질 만큼 반도체 분야에서 명성을 쌓은 인물이다.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성 문제가 시장에서 지적돼온만큼 공기업 ‘한국 통신’ 선입견을 벗고, 민간기업 ‘삼성’의 색채를 접목한다는 명분도 세웠다.

      황창규 체제 1기는 시장에 '▲통신 본업 강화 ▲방만한 경영의 구조조정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이라는 세 가지 방향성을 약속했다. 취임 직후 약 8000여명의 직원을 감축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자산매각을 통한 빅배스를 진행했다. 전임 회장 시절 인수한 KT렌탈, KT캐피탈 등 알짜 비통신 계열사들의 매각도 단행했다. 전직 청와대 대변인 등 통신업과 무관한 정치권 인사가 요직을 차지해온 전 회장 시절과 달리, 인사를 둔 잡음도 비교적 적었다.

      올해 들어 분기 연속 영업이익 4000억원대 회복을 보이며 연간 영업이익 1조원을 무난히 달성하는 등 성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쟁사들이 실적 정체를 보인 상반기에도 홀로 실적을 끌어올렸다. 취임직후 11조 가까이 늘어났던 순차입금도 이익 개선과 자산 매각에 힘입어 4조원 수준까지 감축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12월 KT의 신용등급(AAA) 전망을 기존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하며 이에 화답했다. 시장에선 적어도 숫자로 드러난 성과로는 내년 초 연임을 두고 이견이 없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기대가 ‘역시’로 바뀌는 데는 큰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이라는 마지막 고리가 발목을 잡았다.

      ‘최순실 게이트’가 재계로까지 번지며 KT로 수사망이 좁혀오고 있다. 핵심 인물로 지목되는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과 차은택씨가 외압을 통해 지인인 이동수 씨를 지난해 KT IMC마케팅부문 전무로 취직시키고, 차 씨가 실소유한 광고사 플레이그라운드에 KT 광고를 몰아줬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KT는 최순실씨가 설립과 운영을 주도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총 18억원을 출연해 수사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직접 개입여부와 별개로, “황 회장이 정부로부터의 독립된 경영을 꾸려왔다면 이동수 전무의 낙하산 인사를 방어할 능력이 없었을까”라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각 재단의 출연문제를 두고 이사회의 공정성 문제까지 흔들리고 있다. KT는 “새 노조의 악의적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당장 새 노조의 주장인 “통신업 집중을 앞세워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해놓고, 말 관리 사업·광고 등 난데없이 무관한 사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응할 명분이 사라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황창규 회장이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리더십 회복과 미래 전략 제시라는 과제를 병행해야 한다. 연임에 실패할 경우 'KT의 법칙'으로 인한 자원과 시간 낭비가 예정돼 있다. 특히 통신업계의 격변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KT는 '주인없는 회사'라는 근본적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통신 3사의 공통 관심은 인수합병(M&A)을 통한 미래 방향성 제시에 쏠리고 있다. 기존 무선통신사업의 수익성 정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간 KT의 우방이었던 3위사업자 LG유플러스도 케이블사의 M&A, 이후 콘텐츠 부문에 투자한다는 성장 방향성을 시장에 공개했다. SKT는 ‘통신업체’에서 ‘플랫폼 업체’로의 진화를 내세워 SK플래닛 등 신사업 분야에 선제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각 사의 컨퍼런스 콜에서도 분위기는 갈리고 있다. 투자자들은 SKT에 글로벌 통신사 AT&T의 미디어그룹 타임워너 인수 사례와 같은 통신 업체와 미디어 업체간 융합을 어떻게 보는지를 묻고, LG유플러스에는 M&A 전략을 묻는 등 ‘미래’를 묻는다. KT는 여전히 가입자당 평균 수익(ARPU) 등 ‘현상 유지’를 묻고 답하는데 그치고 있다.

      한 증권사 통신담당 연구원은 “통신 3사 모두 기존 사업에서 집행할 수 있는 투자는 내년까지 모두 끝낸 상황이고, 결국 쌓아둔 현금을 어떤 M&A에 사용할지에 향배가 걸린 중요한 시기"라며 "황창규 회장 1기를 통해 KT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수준과 재무 상황을 감안하면 2~3조 정도는 M&A에 쓰더라도 신용등급 유지에 전혀 문제가 없는 수준까지 ‘정상화’를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미래 주도권을 두고 본격적인 3사간 M&A 경합이 펼쳐질 2기를 앞두고 고질적 한계인 ‘정경유착’이 부각되고 있는 점은 악재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간 KT의 위치를 공고하게 해준 ‘정부 규제’도 영원할 수 없다. LG유플러스가 케이블 TV 인수에 성공해 유선 사업에서 2위로 성장하면, 당장 SKT의 케이블사 인수를 막을 수 있는 명분은 사라진다.

      기대를 모은 황창규 체제마저 정경유착의 중심에 서면서, KT 내부의 ‘보신주의’의 공기는 더 짙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권에 따라 수장이 바뀌고, 이에 따라 이전 회장의 방향성이 모두 부정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시각이다. 결국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외국에서 CEO와 이사회를 패키지로 수입해 오자“라는 웃지못할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주주와 이사회 권한을 키우면, 지분이 없는 정부의 회사에 이익이 되지 않는 정책·인사 강요가 이처럼 쉽게 통과될 수 있겠냐는 자조섞인 물음이다.

      결국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KT내부에서는 혜안이 담긴 명언으로 작용하고 있다. '황의 법칙'도 'KT의 법칙' 앞에 무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