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합병 찬성 문제없다' 변명 일관한 국민연금
입력 2016.11.16 07:00|수정 2016.11.17 11:53
    국민연금 정치권 압력에 적극 해명
    금융시장선 '변명 일관' 싸늘한 시선
    "차라리 JY 지배권 안정화 일조했다고 털어놔야"
    • 국민연금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관련 의혹에 대해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의혹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정치권으로 퍼지는 파장을 의식한 듯 조목조목 해명했음에도 불구, "사실상 변명으로만 일관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은 15일 삼성물산 합병 찬성 의결권 행사 의혹 제기 관련 해명자료를 배포, "기금의 수익성과 국내외 관심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책임있게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그룹이 '최순실 게이트'와 연루, 정치권에서 날센 비판이 나오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그간의 태도를 바꾼 것이다.

      ◇ "시장수익률과 비슷하다"...합병비율은 고려안해

      국민연금은 가장 먼저 '2조원 손실설'을 반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 및 주식 가치의 상승 여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했고, 시장 수익률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합병 발표 전일부터 지금까지의 코스피 하락률은 8%, 삼성물산 합병법인 주가 하락률은 8.2%라는 수치를 제시했다.

      이는 합병비율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애초에 문제는 삼성물산이 합병 비율을 1대 0.35로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잡았다는 데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은 리서치 부문에서 적정합병비율을 1대 0.46으로 계산했음에도, 삼성그룹이 제시한 합병비율에 찬성했다.

      그 결과 국민연금은 통합 삼성물산 주식을 덜 배정받았다. 국민연금은 합병시 613만여주의 신주를 받았다. 서울고등법원의 2심에서 판단한 합병비율(1대 0.403)을 적용했다면 705만여주, 적정 합병비율 1대 0.46을 적용했다면 790여만주의 신주를 더 받을 수 있었다. 이 수치는 국민연금의 수익률 계산식에서 빠졌다. 주식을 덜 받은 것 만으로도 500억원에서 1000억여원의 손실을 더 감안해야 한다는 게 금융권의 계산이다.

      합병 시너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모르겠다는 의견이 많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건설 부문이 겹친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로 합병 후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패션 부문과 상사 부문의 시너지도 구체화된 바 없다. 2014년 1조8500억여원이던 패션 부문 매출은 지난해 1조7380억여원으로 역성장했다.

      합병 청사진으로 내놓은 '2020년 패션 부문 매출 10조원 목표'는 합병 전인 2014년 기업공개(IPO) 때에도 나온 말이다. 증권가에서는 "같은 수치를 내놓는 걸 보니 사실상 합병 시너지가 없다는 말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 "지침 의거한 책임있는 판단"...밀실논의는 해명 안돼

      국민연금은 외부자문기구의 반대 권고에도 찬성입장을 밝힌 데 대해서도 해명했다. 외부자문기구는 각 사 주주의 입장에서만 고려하며, 양 사 주식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은 포트폴리오 관리 관점에서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SK(주)와 SK C&C 합병때엔 자문기구의 찬성 권고에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는 사례를 예시로 들기도 했다.

      이는 '일관성과 논리가 있느냐'의 문제를 단순히 '권고에 따랐느냐 따르지 않았느냐'로 치환해버렸다는 평가다.

      SK(주)와 SK C&C 합병 반대때엔 논리가 있었다. 합병비율이 SK C&C에 유리했던데다, 합병 발표 후 자사주 소각 결정을 내리며 비율을 더 왜곡했다. 사업부문의 비전과 옥상옥(屋上屋) 구조 해소라는 긍정적 영향을 더 크게 본 자문기구의 권고를 역행에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삼성물산 합병 때엔 이 같은 논리가 실종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너지 효과와 주식 가치 상승 여지만을 앞세우며 자문기구의 권고를 무시했다는 지적이다.

      이는 방법론과 연계되며 논란을 키웠다. 국민연금은 이 같은 결정을 내리며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통하지 않았다. SK(주)와 SK C&C 땐 전문위원회를 활용했다. '밀실논의'. '밀실행사'라는 부정적 평가가 나온 배경이다.

      국민연금은 이에 대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공단이 결정하고 판단이 곤란한 경우 전문위원회에 요청할 수 있다"며 "(삼성물산 합병은) 종합적으로 감안해 책임 있는 판단 주체로서의 역할을 명시한 지침에 충실하게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합병과 관련한 의결권행사지침은 '주주가치의 훼손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반대한다' 한줄 뿐이다. 합병비율 관련 이슈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SK(주)와 SK C&C 때와는 다른 판단을 내린 배경이 여전히 석연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 "경영진 면담은 일반적"...이 부회장은 '수혜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표결 2일 전 면담을 한 부분도 여전히 논란이다. 국민연금은 합병 등 주요 변동상황과 관련한 기업의 주요 경영진과 면담하는 건 일반적인 검토 과정의 일환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은 합병 당시 제일모직, 삼성물산 그 어느 회사의 경영진도 아니었다. 미등기이사로 삼성전자 업무만 관할했다. 오히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최대주주로서 합병비율의 최대 수혜자였다. 국민연금은 표결 직전 합병의 최대 수혜자를 만나고, 그에 유리한 결정을 내린 것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은 또 다른 주요 주주인 네덜란드연금운용사(APG)도 이 부회장을 면담했다고 적시했다. APG가 이 부회장과 면담한 건 사실이지만, 합병에는 반대했다. 면담 후 수혜자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린 국민연금과 같은 선상에서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차라리 이 부회장의 경영권과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해 안정화된 삼성전자에서 중장기적 이익을 추구했다고 해명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며 "불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솔직한 해명이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