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하만 인수에서 소외된 국내 M&A업계…'자성론' 대두
입력 2016.11.16 07:00|수정 2016.11.16 07:00
    공공연한 삼성 전장부문 관심에 대안 제시 못해
    해외 IB도 입지 축소…깊은 고민보다 단기 성과만
    존재의미 증명 못하면 배제 경향 빨라질 듯
    • "이번 삼성전자-하만 인수 거래는 국내 인수합병(M&A) 업계에 숙제를 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정보가 기업의 요구 수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겁니다. 삼성전자의 전장 사업에 대한 관심은 누구나 예상했지만 우리가 실천을 못한 것입니다." (국내 증권사 IB 고위 관계자)

      삼성전자가 미국 전장전문기업 하만(Harman)을 80억달러(약 9조3648억원)에 인수하며 국내 M&A 역사를 다시 썼지만, 국내서 활동하는 인수합병(M&A)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거래를 빈 손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기업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자성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14일 삼성전자는 이사회를 열어 커넥티트카(Connected Car)와 오디오 분야 전문기업인 하만 인수를 의결했다. 삼성전자는 자문사로 글로벌 투자기관인 에버코어 파트너스(Evercore Partners)를 고용했고, 하만은 JP모간과 라자드가 참여했다. 삼성전자는 이 전에도 종종 에버코어의 자문을 받아왔다.

      일각에선 거래의 성격에 기인한 것이란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하만은 뉴욕 증시에 상장된 회사로 미국 공시시스템(에드가)를 통해 상당한 정보를 접할 수 있어, 굳이 협상이나 가치 산정을 외부에 맡길 필요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국내 플레이어들의 역량과 역할론, 기업이 느끼는 활용 필요성이 예전만 못하는 점을 지적하는 의견이 많다.

      투자은행(IB)의 경우,  일부 대형 증권사를 제외하면 IB 조직이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해외 지점 역시 네트워크 형성 보다는 브로커리지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올해 에버코어와 전략적 제휴를 맺은 NH투자증권, 계열사인 삼성증권조차 이번 거래에선 빠졌다.

      국내 증권사 고위관계자는 "국내 업계가 공부를 안한 벌을 받은 것"이라며 "삼성이 뭘 사고 싶어하는지, 우리는 무얼 팔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본 곳이 있나 싶다"고 말했다.

      국내 진출한 글로벌 IB라고 해서 사정은 다르지 않다. 대형 거래가 있을 때면 매번 자문을 따내지만 그것도 국내 증권사보다는 나을 거라는 기대감에 기인한 면이 크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기업이 크로스보더딜을 할때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IB의 영업담당(RM)을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며 "국내 IB보다 국내 진출 글로벌 IB의 타격이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갈수록 입지는 좁아지는 반면, 국내에 남은 회사들의 생존 경쟁은 치열해질 전망이다. 기업의 성장 전략을 고민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본연의 역할보다는 눈앞의 성과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는 다시 기업이 원하는 해결책과는 멀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역량이 된다면 기업이 직접 나서는 편이 비용이나 보안유지, 이해도 측면에서 낫다는 평가다.

      글로벌 IB 관계자는 "해외 IB들도 어렵다 보니 오랜 기간 깊이 공부해 기업이 나가갈 방향을 제시하기 보다는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거래자문, 그것도 성사 가능성이 큰 매각 자문에만 목을 매는 분위기"라며 "기업들도 M&A 경험이 쌓이고 자체적으로도 본업과 연관된 다양한 정보를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수박 겉핥기 식 자문에 회의를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M&A 시장의 일각을 담당하고 있는 법무법인과 회계법인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해외 IB가 국내 IB보다는 정보력이 나을 수 있지만 당장 국내 기업인 삼성에 대한 네트워크나 정보력도 부족한 수준이라는 것이 이번 하만 M&A에서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대형 딜에서 국내 플레이어들이 외면받는 트렌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앞으로 더 가속화할 것"이라며 "회계법인은 표준화된 부분이 있고 글로벌 네트워크도 있어 좀 낫지만 IB와 로펌은 타격이 없을 수 없다"고 내다봤다.

      앞으로도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국내 거래 자문에만 그치는 우물안 개구리가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기업과 소통하지 못하는 RM 조직의 무용론도 제기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기업의 욕구를 충족할만한 제안을 직접 초기부터 마련해 제안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거래에서 '자문사'를 제외하는 경향은 더욱 빨라질 것"이라며 "기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 플레이어는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